쌍용차 노동자 "눈 밖에 나면 일자리 잃는다" 살벌

평택 | 정제혁기자 2009. 9. 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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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협' 간데 없고 불안감 팽배 "로봇 수준"사측, 노조사무실 폐쇄.. '노조 옹호'는 금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평택공장 농성 파업이 끝난 지 8일로 한 달을 맞았다. 7일 저녁 평택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의 저녁식사에 동석했다. 이들은 파업이 마무리된 이후 공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회사 눈 밖에 나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고 했다. 대기 중인 수백명의 직원들이 언제든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8일 낮 평택공장에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를 묻는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회사 관리자들은 "불만 있으면 나가라.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태도다. ㄱ씨는 "가급적 관리자들 눈에 안 띄려고 조심한다. 눈을 마주치기도 두렵다"고 말했다.

동료들과의 유대관계도 허물어졌다. 서로를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는 탓이다. 그는 "예전에는 형, 동생 하면서 고민을 쉽게 얘기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동료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서로가 눈치를 보며 지낸다"면서 "더 이상 활기와 동료애를 찾아보기 힘들다. 공장이 웃음을 잃었다"고 말했다.

노동강도는 훨씬 세졌다. ㅇ씨는 "팀별로 사정이 다르지만 일감이 많은 팀은 작업 효율이 90%까지 올라간다"고 전했다. 회사는 작업자의 움직임을 1초 단위까지 계산해 최적의 동선을 짜는데, 이를 기준으로 효율을 따진다. 효율 100%는 회사가 정한 동선에서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작업을 한다는 의미다.

ㅈ씨는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몸 상태에 따라 작업 효율이 떨어질 때도 있다"며 "작업 효율 90%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로봇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무릎 관절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최근 부쩍 늘었다.

잔업과 특근도 달라졌다. 종전에는 선택사항이었다면 이제 필수항목이 됐다. 회사가 잔업·특근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회사에 밉보일까 두려워 빠지고 싶어도 말을 못한다. 조퇴는 생각도 못한다. 예전에는 불만이 있으면 노조 대의원을 통해 시정을 요구했다. 지금은 다르다. ㄱ씨는 "노조가 무력화되면서 불만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노조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금기가 됐다고 한다. 노조에 대한 사측의 적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해 '부당노동행위' 논란을 빚었다.

파업기간 회사편에 섰던 노동자들의 적대감은 여전하다. ㅈ씨는 "사측 직원들은 '민주노총을 탈퇴해야 한다' '노조는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며 "얼마 전 관리자가 이들에게 '어용이라도 노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웃으며 말하더라"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금속노조 탈퇴건을 논의하기 위한 총회 소집 요구에 조합원 2904명 중 1983명(68%)이 서명한 것은 이런 기류의 반영이다. 사측은 노조의 사무실을 폐쇄했다.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는 경찰이 압수해갔고 집기는 모두 박살났다. ㅈ씨는 "회사가 교육 시간마다 파업 조합원들의 폭력을 강조하며 노·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노사 대타협 당시 양측은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노사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서 노사는 "대타협의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 쌍용차의 회생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타협의 정신'은 한 달 만에 자취를 감췄다.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 44명은 구속 상태다. 조합원과 노조 간부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고발은 아직 취하되지 않았다.

합의서 이행을 위한 노사 간 후속 교섭은 정체 상태다. ㄱ씨는 "함께 살기 위해 대타협을 했으면 합의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노사가 서로를 인정하며 협력하는 진정한 상생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평택 | 정제혁기자 jhjung@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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