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수출 아니면 죽는다"..과장·왜곡된 정부논리

2009. 3. 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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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부- (2) 미국처럼 잘 살게된다 한·미FTA의 환상과 허구

시기별 등락은 있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찬성 여론은 일정수준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는 한국인이 열등감 속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 개방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부도 한·미 FTA의 필요성을 홍보할 때 이런 한국인의 고정관념을 적극 활용해 미국, 개방은 선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대미인식, 개방 이데올로기 자극해 찬성론 유도

정부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각종 수출품에 대한 관세장벽이 철폐되거나 낮아져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미국과의 무역과 투자 확대를 통해 국민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무역에서 FTA와 같은 지역협정 체결국 간 교역비중이 50%가 넘고,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26%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FTA가 체결되면 투자·금융·법률·지적재산권 등 각종 제도와 서비스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올라설 것이라는 '제도 선진화론'도 거론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만큼이나 개방 이데올로기 선전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정부는 개방과 경쟁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는 점을 중점 부각시켰다. 역사적으로 개방을 거부해 성공한 나라가 없다, 정부는 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는 조선말 쇄국정책으로 근대화가 늦어지면서 민족 수난사가 이어졌던 역사를 동원해 '한·미 FTA=개방=발전'이라는 인식의 틀(프레임)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수출 길이 막히면 대책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2006.3.22 '특별기획-일류국가를 향하여' 한·미 FTA 국정브리핑)

쇄국이냐, 개방이냐의 극단 논리

"구한말 우리는 도도한 세계의 조류에 애써 눈을 감고 쇄국이라는 순간적인 만족에 젖어 을사늑약이라는 치욕적인 변화를 강요당했다. 100여년 전 역사의 교훈을 잊고 또다시 변화를 강요당하겠는가 아니면 우리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가겠는가."(2006.6.21 김현종 당시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파이낸셜뉴스 기고문)

정부는 또 한·미 FTA가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대미종속적 성격을 은혜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미국과의 FTA가 체결되면 한·미관계는 외교, 군사, 경제 등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동맹관계로 발전되며, 동아시아에서의 지역경제, 전략적 구도에서 한국 비중이 그만큼 커질 것."(2006.2 이태식 당시 주미대사, 매일경제 기고문) 이러한 논리는 한·미동맹을 중요시하는 계층의 마음을 파고드는 데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정부·여당은 한·미 FTA의 조기 비준을 주장하기 위해 '경제위기 돌파론'을 내세웠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서비스시장 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과 고용 증가, 비준의 불확실성 제거로 외국인투자가 늘고 우리 경제의 투명성이 높아져 실물경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정부는 지난해 말 일간신문과 무가지에 '향후 10년간 연평균 최대 32억달러의 외국인투자 추가유입-세계 일류로 가는 고속도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과장과 왜곡 많아

이러한 정부의 논리는 한·미 FTA 찬성 여론을 이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지만, 과장과 왜곡의 경계를 오락가락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한·미 FTA를 개방이냐 폐쇄냐, 수출시장을 넓힐 것이냐 말 것이냐는 식의 흑백논리·이분법에 의존하고 있지만 준비된 개방이냐, 졸속 개방이냐, 불안한 수출 의존형을 지속할 것인가, 내수시장 확대 노력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다른 인식의 틀은 무시하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미 FTA 협정 내용을 반대한다고 해서 개방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또 개방을 찬성한다고 해서 한·미 FTA 협정 내용을 전부 찬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FTA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방 이데올로기는 무분별한 개방으로 외환위기가 초래되고, 미국 모델을 추종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아이슬란드의 예를 간과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허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제조물품의 경우 이미 상당 부분 낮은 관세를 적용받고 있어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미국 관세의 인하폭은 크지 않다. 추가적 수출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미 FTA 내용 중 우리 측에 가장 유리한 부분으로 꼽히는 자동차만 하더라도 당장 철폐될 미국 자동차 관세는 2.5%에 불과한 데다 미국 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수출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식의 환상에 빠져 있는 한국인

또한 정부는 '미국식 제도 도입=선진화'라는 논리만 강조하고 있을 뿐 새로운 제도와 서비스가 몰고올 위험성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당장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재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투기성이 강한 고위험 파생상품이 대거 들어올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대거 가입했던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가 가져온 피해를 목격한 상황에서 자본시장 개방에 대한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는 미국계 국제금융자본에 포위돼 있으며, 세계는 지금 한·미 FTA와는 매우 다른 국제금융 규제를 모색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개방론자가 되려면 한 입으로 한·미 FTA 추진과 새로운 국제금융규제를 같이 말하는 위선을 먼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한·미 FTA 찬성론은 개방 이데올로기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허위의식을 벗기고 나면 미국이 한국을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한국인이 드러날 것이다.

< 이주영기자 young78@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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