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주권 높인다더니.. 가격만 높아졌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 2011. 5. 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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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프라이스' 7월1일로 도입 1년.. 효과는 ?

오는 7월1일로 의류 전 품목과 라면·과자·아이스크림·빙과류 등 4종에 오픈 프라이스 제도를 도입한 지 1년을 앞두고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 오히려 소비자 주권은 약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돼 주목된다. 오픈 프라이스는 제조업체가 정하는 권장소비자 가격을 폐지하고 최종 판매업자(주로 유통업체)가 판매가격을 정하는 제도이다. 1999년 TV 등에 도입해 업체 간 자율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 효과를 톡톡히 거둔 뒤 가공식품 등으로 확대했지만 유통, 제조사조차 '유명무실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가격은 ↑ 소비자 주권은 ↓ = 문화일보가 지난 23∼26일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편의점·슈퍼마켓 등 10개 점포를 취재한 결과 오픈 프라이스 시행 전 권장소비자 가격 1500원이던 월드콘은 현재 1200원(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2000원(신사동 A슈퍼)에 판매되고 있었다. 시행 전에 600원(전통시장)∼1500원(편의점)에 판매되던 것에 비하면 수십%의 인상률을 보였다. 새우깡 역시 오픈 프라이스제 시행 전 460원(대형마트)에서 800원(편의점)에 팔던 것이 현재 630원(이마트 용산점)에서 900원(편의점, 슈퍼)으로 크게 올랐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37)씨는 "이 제도가 시행되고 소비자들만 오히려 더 불편하다"며 "예전엔 물건을 보고 가격을 확인했는데 물건에 가격이 안 쓰여 있으니 계속 점원에게 가격을 물어본다"고 밝혔다.

실제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냉랭했다. 대형마트에서 만난 채은희(여·52)씨는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가격만 오른 것 같다"며 "과거엔 권장소비자 가격이 찍혀 있으니 마트의 마진이 얼마인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가격을 '오픈'한다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들이 정확한 물건 가격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대형마트에서 가격을 정하면 소비자는 알아서 따라가야 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나종현(30)씨도 "도대체 정가를 알 수가 없으니 어디가 얼마나 비싸게 받는지, 내가 정말 싸게 사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혼란스럽다"며 "제도 시행 후에도 가격이 낮아졌다는 느낌은 전혀 못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제도 시행도 잘 안 돼 = 취재 결과 유통 현장에서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시스템도 확립되지 못했다. 가공식품과 함께 오픈 프라이스제도를 시행한 의류의 경우 주로 특정매입(백화점 내 일정 구역에 브랜드의 박스매장 등을 설치하고 브랜드 판매사원이 상주하며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백화점은 브랜드에서 판매한 매출금에 대해 백화점의 마진을 제외하고 브랜드에 입금시켜주는 구조) 형태라 실제 가격 결정권이 제조업체에 있다.

편의점 역시 각 가맹점 대신 본사가 제조업체와 직접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전 제품 가격표가 전산을 통해 내려온다. 대형마트는 제도 시행 전부터 권장소비자 가격 대신 인근 점포와의 가격비교가 더 중요한 가격 결정요인이었고, 동네 슈퍼마켓의 경우에도 암암리에 물건을 납품하는 제조업체가 가격을 넌지시 정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애초 대형마트는 저가에 물량을 공급하기 때문에 권장소비자 가격이 의미가 없었고, 편의점 역시 가격결정권이 개별 점포보다는 본사에 있고 24시간 운영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고가에 판매하기 때문에 오픈 프라이스제도 도입과 맞지 않는 유통 형태"라고 밝혔다.

◆국가 판매가격 통계는 '유명무실' = 이에 대해 업계는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핑퐁게임'만 벌이고 있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오픈 프라이스 도입 취지 자체가 식품업체의 가격 결정권을 유통업체에 넘겨주는 것으로, 유통업체가 가격 결정권을 움켜쥐고 소비자에게 가야 할 혜택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얼마 전 과자 가격 인상에서도 드러났듯 우리는 생산업체가 올린 가격 그대로만 더 받았다"며 "우리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주요 식품의 경우 오히려 식품업체의 파워가 더 막강한 경우도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제도의 성공을 위해선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보도 미흡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소비자원의 '티프라이스' 서비스의 경우, 품목 자체가 매우 제한적인 데다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유명무실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미 시장에 안착한 TV 등 가전 시장과 식품 시장은 특성이 전혀 다르다"며 "10%만 저렴해도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의 이득을 볼 수 있는 TV 시장의 경우 소비자들이 최저가를 찾아 발품을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데다 인터넷 가격 검색을 통해 최저가 상품을 파는 곳으로 몰리게 되는 반면, 식품 시장은 가격 자체가 소액이어서 몇백원 아끼려 먼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데다 각종 판촉 행사로 가격이 들쑥날쑥해 가격 정보 자체가 있으나 마나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병기·노기섭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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