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7월1일 잠정발효' 알고보니 '구두합의'

2011. 3. 1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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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제법 구속력 없어

비준일정 압박 입법권 침해

법조계 "감사원 조사 요청"

정부가 유럽연합(EU) 쪽과 합의했다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7월1일 잠정 발효가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구두 합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입법권이 없는 행정부의 대표가 조약 발효 시점을 다른 나라와 합의하고, 이를 근거로 국회의 비준동의 일정을 압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어, 법조계에서 경위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이 오는 7월1일 잠정 발효되므로, 그 전에 국회가 비준동의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14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9년 9월) 한-유럽연합 통상장관회담과 한-벨기에(의장국) 통상장관회담 등의 협의를 거쳐, 두 나라는 입법부의 동의 절차 완료를 전제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2011년 7월1일 잠정 발효 추진을 구두로 합의"했다고 돼 있다.

잠정 발효는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 쪽이 회원국별 비준 절차 탓에 협정의 정식 발효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독특한 정책이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제15.10조 제5항)에서는 양쪽이 각자의 내부 절차를 완료하고 서로 통보하면 다음달 첫째일부터 잠정적으로 협정을 적용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잠정 발효일이 협정문에 나와 있지는 않다.

'7월1일 잠정 발효'는 유럽연합 내 입법기구인 '특별 외교이사회'의 결정사항이다. 외교이사회는 집행위원회에서 교섭한 통상협정에 대해 승인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 지난해 9월16일 한-유럽연합 협정의 2011년 7월1일 잠정 발효를 결정한 바 있다. 유럽의회는 일반 국가의 의회와 달리, 자문 및 감독기관 구실만 맡고 있어 외교이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다. 잠정 발효를 위해 유럽의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지난 2월 동의 절차를 밟았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7월1일 잠정 발효에 대해 국회에 미리 보고하거나 사전 동의를 받은 적이 없다. 지난해 9월 김종훈 본부장이 유럽연합 통상당국과 만나 국회의 비준동의를 전제로 잠정 발효일을 구두로 합의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7월1일 잠정 발효하도록 돼 있다. 비준안을 통과시킨 이후에도 11개 이행법률안을 개정해야 하므로 이번 회기 내에 비준동의안을 처리해야 시한을 맞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정부 대표가 국회의 조약 심사 시한을 다른 나라와 합의할 아무런 법적 근거와 권한이 없어, 이는 국회 비준동의권을 제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조약을 비준동의할지, 언제 할지는 전적으로 국회가 결정할 몫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잠정 발효 일자를 정하고 이를 강제한다면 국회의 입법권, 국민의 주권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선수 회장은 "감사원에 그 경위 조사를 정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두 나라 통상장관의 합의는 입법부 동의 절차 완료를 전제로 하고 법적 구속력도 없어 국회 권한 침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해명대로라면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오는 7월1일부터 발효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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