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우량인지 부실인지 고객은 모른다..금감원 "105곳 중 102곳 정상"

나현철.권희진.조문규 2011. 1. 1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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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나현철.권희진.조문규]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치의 후폭풍이 거세다. 고객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17일 우량 저축은행에도 전화 문의가 이어졌다. 예금 인출도 잇따랐다. 6개월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 삼화저축은행 서울 신촌점에서 고객들이 예금 지급 등에 관해 문의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26일부터 신청자에 한해 가지급금 1500만원을 우선 지급할 예정이다. [조문규 기자]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시작된 고객들의 불안감이 저축은행을 휩쓸고 있다. 위태롭다고 소문난 부실 저축은행은 물론 우량한 저축은행까지 예금을 빼려는 고객들로 북적인다. 어디가 부실하고 어디가 우량한지 제대로 알기 어려운 고객들이 '일단 돈부터 빼고 보자'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저축은행과 금융당국엔 비상이 걸렸다. 현금을 넉넉히 준비하는 한편 '우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우량하다'며 고객 설득에 나서고 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사대문 안의 한 저축은행 지점. 30여 명의 고객이 좌석을 꽉 채운 채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에 있는 삼화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키자 불안감을 못 이겨 돈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창구 직원의 호출을 받기까진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렸다. 평소보다 손님이 몰려 대기 시간이 두세 배로 늘었다. 5000만원을 인출한 주부 김모(67)씨는 "저축은행들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니 돈을 넣어둘 수가 없다"며 "펀드나 은행 등 안전한 곳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저축은행 최모 과장은 "중도해지가 급증하고 만기가 된 자금도 재유치되지 않고 있다"며 "14일에는 잠잠했는데 오늘부터 사람들이 몰려 오전에만 10억원이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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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의 불똥이 저축은행 전체로 튀었다. "평소 입출금 규모(예금액의 0.1%)의 열다섯 배에 달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런 추세면 얼마나 버틸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달 14일과 17일 이틀 동안 전체 예금액의 1.5%인 200억원을 고객에게 내준 A저축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이 저축은행은 지난해부터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하느라 재무상태가 나빠지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마저 물리면서 '부실 저축은행'으로 지목돼왔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B저축은행은 14일 하루에만 180억원이 빠졌다. 전체예금의 2%다.

 우량 저축은행도 울상이다. 서울에 있는 C저축은행에선 14일 하루 평소의 두 배인 50억원가량의 예금이 인출됐다. 이 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가결산에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20% 중반, 고정 이하 여신비율 2%, 연체율 9%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순이익만 210억원이라는 직원들의 설득도 고객들의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BIS 비율이 10%에 육박하고 2010 회계연도 상반기에만 110억원대의 이익을 올렸던 또 다른 저축은행에서도 14일 하루 35억원이 빠져나갔다. D저축은행도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몰려들면서 계열 저축은행 2곳에서 각각 50억원, 70억원이 인출됐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던 가운데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소식이 전해지자 불안감이 극에 달한 것 같다"며 "한마디로 날벼락"이라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도 수습에 나섰다. 17일 오전 10시30분. 여의도 금융감독원 11층 김종창 원장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예금 인출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 원장은 "일반고객들이 예금을 찾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제대로 알리라"고 지시했다. 저축은행서비스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예금 인출이 벌어지고 있는 저축은행에 유동성 확보를 지시하고 인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느라 부산했다. 예금인출이 불안감을 부르고 다시 인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려해서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이 갑자기 영업정지돼 예금이 묶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예금을 해지하거나 서둘러 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105개 저축은행 중 BIS 비율이 5% 미만이어서 경영개선 권고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곳은 5개다. 이 중 2곳은 사정이 특수해 적기시정조치 대상에서 빠져 있다. 결국 삼화를 포함한 3개만이 영업정지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나머지 2곳 중 한 곳도 외국계 펀드 등과 매각을 위한 예비실사가 진행 중이다. 102곳은 정상영업 중이다. 지난해 6월 부동산 PF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하며 경영개선협약(MOU)을 맺은 61곳의 저축은행을 모두 부실로 보는 것도 오해라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PF 부실채권을 매각한 저축은행은 우량·부실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 MOU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PF 대출 규모가 작은 곳은 부실화될 염려가 적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는 그동안 약속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여러 차례 지키지 못해 취한 최후 수단이었을 뿐 추가로 영업정지를 당할 곳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용환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경영개선 권고를 받아 부실이 확인되더라도 증자나 매각 등 경영 개선 기간을 1년 이상 준 뒤 회생이 어려울 때 영업정지를 시킨다"며 "충분한 시간이 있으므로 우량 저축은행은 물론 부실한 곳에 맡긴 예금도 당장 서둘러 찾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글=나현철·권희진 기자 < tigeracejoongang.co.kr >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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