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서민경제..실태와 해법 ① 체감경기

2010. 7.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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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나라"..절망감 느끼는 무기력 서민들호황 지표 속에 개점휴업이나 폐업 상인들 속출중산층 붕괴..한국 '20대 80의 사회'로 나눠져"기존 대책 재탕해서는 서민 체감경기 못살려"※ 편집자 주 = 최근 정부가 발표하는 화려한 경제지표와는 달리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사회 안정과 국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들이 겪고 있는 체감경기의 실태를 살펴보고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7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정부나 언론에서는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저희한테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아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역 앞 택시 승차장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정형기(59) 씨는 10여 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요즘 경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손님들이 너무 많아 합승까지 해야만 했던 호경기를 경험한 택시운전사들은 운전 도중 경제가 좋아졌다는 뉴스가 나오면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들은 "낮에는 손님이 없어 낮잠 자는 것 외에 할 일이 없고 신참 기사들은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며칠 만에 일을 그만둔다"면서 "좋아지기는 뭐가 좋아졌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출구전략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일 23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궤도에 올랐다는 신호탄이다. 경기 회복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막아보겠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 대기업 실적은 '맑음'..지표경기 호황실제로 정부가 내놓는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경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의 경우 올해 1분기 수치가 8.1%를 기록해 분기 기준으로는 7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취업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취업자 수는 정부의 공공근로사업인 희망근로가 크게 줄었는데도 31만4천명이나 늘었다.

올해 상반기 내내 취업자 수가 계속 늘어나 민간을 중심으로 고용의 자생력이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소득도 회복세다.고용노동부가 6월 발표한 1분기 상용근로자(근로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241만6천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3.2%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분기 만에 증가세로 반전한 것이다.반면 물가는 안정적이다.지난달까지 소비자물가는 5개월째 2%대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모양새다.국내총생산(GDP)이 늘고 일자리나 소득 사정도 좋아지는 가운데 물가는 요동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대기업들의 실적도 이런 숫자를 뒷받침한다.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4∼6월) 국내외 사업장을 합한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인 5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포스코도 2분기 영업이익이 1조8천360억원으로 사상 두 번째 수준이라고 발표했다.증시에서도 21일 코스피지수가 1,748.78로 장을 마감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다.

누가 봐도 완연한 경기회복 국면이다.◇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먹구름'그러나 실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런 수치들과 동떨어져 있다.남대문시장에서 4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주선(62)씨는 "상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가장 바닥 상태"라고 털어놨다.

김씨는 "가게 운영 경비조차 나오지 않는다"면서 "하던 일이니까 마지못해 가게 문을 열어놓는 거지...경기회복은 무슨 경기회복"이냐고 말했다.

역시 남대문시장에서 27년째 옷가게를 운영했다는 이성철(59)씨도 "30년 가까이 장사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가 됐다"면서 "지금은 장사를 접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윤을중(55)씨는 "국가에선 경제가 좋다고, 풀렸다고 하는데 서민층에선 아직 느낌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손님요? 오히려 줄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전엔 밤 11시부터 2시까지는 피크(정점)였는데 요즘엔 거리가 아주 조용해요"라고 말했다.

또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청년 실업률만큼은 치솟고 있다.한양대학교 경영학과 1학년생인 윤모군은 "지금은 20%의 엘리트가 80%를 먹여 살리는 사회가 된 것 같다"면서 "20% 엘리트 집단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기 위해 일단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지만 주부들은 아우성이다.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영숙(41)씨는 "경제적으로 소비를 해보려고 카드도 없앴어요"라며 "오늘 딱 10만원 들고 왔는데 뭘 사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다 올 4월에 결국 접었다.김씨는 "인건비, 물가, 재료비가 너무 오르니까 이윤이 너무 작아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경기 괴리 현상' 구조적 문제로 정착이는 지표 경기와 서민들의 체감 경기가 따로 노는, 이른바 '경기의 괴리 현상'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당장 지표의 기저 효과가 언급된다.경기가 바닥을 쳤던 작년과 비교하다 보니 실제 경제 상황 이상으로 지표가 좋게 보이는 착시 현상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 수출기업 같은 경제의 '아랫목'에서 시작된 온기가 중소기업, 서민 등 경제의 윗목까지 퍼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좀 더 본질적으로 이런 괴리 현상이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 경공업 위주의 수출 구조였던 한국 경제가 대기업, 고부가가치 산업 수출 중심으로 바뀌면서 경제 성장이 내수 활성화와 고용 창출로 직결되지 않는 일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엔 경제가 성장하면 그 성장이 고용으로 연결되고 이를 통해 분배가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였는데 90년대 초반부터 이런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 수출기업에 편중되면서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에게는 온기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경제의 세계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결고리가 많이 약화됐고,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 저소득층으로 확산되는 '트리클다운 이펙트(낙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구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양분이러다 보니 서민들에게 경기 회복은 남의 나라 얘기다. 경제가 성장해도 중산층이나 서민에겐 그 과실이 잘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중산층 감소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 사회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양분화되고 있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중반까지는 중산층이 늘었지만 외환위기 이후론 중산층 가구 비중이 줄면서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중산층을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소득 수준이 맨 가운데인 가구의 소득)의 50∼150% 수준인 가구로 규정할 때 중산층의 비중은 96년 68.5%에서 2009년 56.7%로 쪼그라들었다.

유경준 KDI 연구위원은 "이 기간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이동한 가구는 약 3.9%포인트, 빈곤층으로 옮긴 가구는 약 7.9%포인트"라며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유입되는 빈곤가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의 먹구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서민경제 살리기 정책을 손질하는 수준의 재탕성 대책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은 사실상 대기업의 성장을 지원해 그 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게 한다는 트리클다운 효과에 기반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경제는 트리클다운 효과가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구조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체감경기와 지표경기의 괴리 현상은 경제의 세계화 효과 때문이며 지금 서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외환위기 직후보다도 더 힘들 것"이라며 "정부 당국자들의 근본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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