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전철 밟나](3)불안이 불안을 낳는 사회

도쿄 | 조홍민 특파원 2010. 3. 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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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노인빈곤.. '불안한 국민들' 꿈을 잃다10년전보다 고용 악화 기업 신규채용도 미뤄.. 프리터·니트족 급증

"취직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일본 명문사립 와세다대 4학년생인 가네야마(22·가명)는 지난해 대형 상사와 금융기관 등 20여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모두 낙방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신규채용 계획이 연기됐다"며 면접 일정을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다. 중소기업의 문도 두드려봤지만 '불황'이어서 뽑지 않는다는 소식만 들렸다. 당분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자리를 다시 찾아볼 생각이지만 답답함은 감출 수 없다.

불안한 개인과 꿈을 잃은 젊은이는 2010년 일본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앞은 막막하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전체 실업률의 두 배에 이르는 청년 실업과 갈수록 확대되는 격차, 성장이 멈춰버린 현실 앞에서 갈 곳을 잃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하루 벌이로 먹고사는 '프리터', 직장 잡기를 포기한 '니트족'의 증가는 잠재적 사회 불안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성장기 일본을 이끌었던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고, 벌써부터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장래의 부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자산운용회사인 피델리티투신이 지난 1월 대학생 2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5%는 '장래에 꿈이나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고용 불안이 지속되고 소득이 늘지 않아 윤택한 삶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꽁꽁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상황은 젊은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거품 붕괴의 악몽에서 벗어나 경제가 회복세를 보였던 3~4년 전만 해도 졸업 전 기업들이 인재를 입도선매하는 '나이테이(內定)'가 1990년대 이후 다시 등장하면서 편안히 직장을 잡는 대학생들이 상당수였지만 곧 옛얘기가 돼버렸다.

지난해 말 가와바타 다쓰오 문부과학상은 게이단렌(한국의 전경련에 해당) 간부들에게 "1990년대 취업 빙하기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며 채용을 늘려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기업체들은 불황으로 30~50%가량 채용을 줄일 판이다. 내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22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내년에도 주요 대기업 109곳 중 61%가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동결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조사됐다. 도쿄 마치다에 있는 오비린대의 취업담당 직원은 "기업의 채용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도 도리가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올 봄 대졸예정자의 취업내정률은 80%. 2008년 90% 수준에 비해 10%포인트나 떨어졌다. 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1일 현재 대졸예정자 40만5000여명 중 직장을 구한 사람은 32만5000여명에 그쳤다.

일본에서 15~24세 청년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2배에 달한다. 1990년 4.3%에서 2004년에는 10.1%로 갑절 이상 뛰었다. 1993년 101만명이던 '프리터'도 2003년 208만명을 기록한 이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도 개인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사회비용 증가와 가계수지 악화, 성장률 저하 등 구조적 문제는 불안 탈출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단순한 사회문제를 넘어 근본 해결책을 가로막는 위험요인"(내각부 관계자)이란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후생성 추산에 따르면 출생률이 2008년 수준(1.37)보다 다소 높아지더라도(1.55) 생산활동인구(15~64세)는 2005년 8552만명에서 2030년 6740만명으로 크게 떨어진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2576만명에서 3667만명으로 증가한다. 민주당 정권은 저출산 대책으로 월 2만6000엔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경제적 이유에 따른 만혼(晩婚), 비혼(非婚) 추세가 갈수록 진전되고 있어 적절한 치유책이 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의 효율성이나 일관성도 떨어진다. 정부는 일부 시민단체가 실시하는 저소득층 지원사업에 대해 예산을 삭감하거나 폐지했다. '니트족' 지원을 위한 '자립학원'의 경우,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정부가 지원 예산을 없애기로 했다. 지바현 지원단체 '뉴스타트'에 입소한 스에마사(21)는 "조금씩 사회인으로서 공헌하고 싶다. 직업훈련이 끝나는 대로 취직하라면 (훈련을) 계속할 수 없다"며 정부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 도쿄 | 조홍민 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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