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5th 커버]슬픈 이카루스 LG,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

김일문 2011. 11. 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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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in |

이 기사는 10월 31일 15시 58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김일문 기자] 이카루스는 어리석음과 과욕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속 인물이다. 왕비의 부정을 도왔다는 이유로 미노스왕에게 미움을 산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혔는데, 새의 깃털과 밀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한 나머지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었고, 태양에 가까워지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이카루스의 추락처럼 LG전자의 등급 강등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1년전 S & P가 LG전자의 등급 전망을 낮출 때부터 실제 등급 하향이 단행될 것이라는 공포가 조금씩 엄습해왔고,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문제는 추락의 속도와 기간이다. 이카루스가 감옥을 떠나 자유를 향해 날았지만 하늘을 품기에는 날개의 힘이 턱없이 미약했듯이 LG전자에 대한 리스크는 단순히 부진한 휴대폰 사업의 개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LG전자 휴대폰 사업 부진은 표면에 드러난 결과 중 하나일 뿐 그룹의 총체적인 경영 전략과 전술을 새로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하더라도 LG전자의 위상이 지금과 같이 떨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하기 힘들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LG전자는 연 평균 13.6%의 매출 성장세를 나타냈고, 2006년 2.5%였던 영업이익률은 2009년에 6%로 오르는 등 그야말로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어닝서프라이즈의 중심에는 휴대폰 사업이 있었다. LG전자 MC사업부는 같은 기간 연평균 23%가 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고, 수익성 역시 9%에 육박할 정도로 알짜 사업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하지만 수익 개선에 기여한 MC사업부는 국내 스마트폰의 보급과 경쟁이 본격화 된 2010년 들어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영업이익률은 곤두박질쳤고, 회사 전체 수익성 악화의 장본인이 돼 버렸다. LG전자의 MC사업부가 불과 1년사이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부서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유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스마트폰 시장의 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LG전자 휴대폰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은 경쟁업체들이 넘볼 수 없는 기술력 보다는 디자인과 마케팅 능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LG전자는 주로 초콜릿폰, 블랙라벨 등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왔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디자인 차별화가 불가능한데다 삼성전자의 아몰레드, 애플의 어플리케이션 등 경쟁사에 대항할 만한 확실한 병기(兵器)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스마트폰의 출발선상에서 완전히 뒤처져 멀찌감치 떨어진 LG전자가 하루아침에 경쟁사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기도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실적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 범용폰의 약발도 떨어져서 3분기와 4분기 수익 뿐만 아니라 마켓쉐어 역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Again 2000년…LG정보통신의 추억

휴대폰 사업의 부진이 LG전자의 신용등급 하락의 촉매제가 된 것은 확실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취약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쟁보다는 인화(人和)를 강조하는 LG그룹의 오너 마인드, 패배를 두려워하는 '2등주의' 경영 전략이 불러온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그 동안 LG전자는 경쟁사 제품에 대한 벤치마크로 성장해 왔다"며"이 같은 '2등주의'는 선발 주자의 강점은 그대로 살리되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지만 시장을 주도할 혁신적이고 일관된 철학이 없다는 점은 LG전자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LG전자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은 최근 10년 동안 5년 정도를 주기로 하락과 상승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난 2000년 LG정보통신이 LG전자에 흡수합병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10년까지 나아지는 모습을 나타낸 바 있고, 최근들어 또 다시 꺾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LG정보통신은 PCS 브랜드 '사이언'의 제조회사로 경영 사정이 여의치 않자 지난 2000년 모회사인 LG전자에 흡수합병됐다. 이 애널리스트는 "LG전자가 이같은 부침(浮沈)을 보이는 이유는 트렌드를 잘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얼마 전 LG전자를 퇴사한 한 연구원이 인터넷에 개재한 글은 회사의 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LG전자 MC사업부에 몸담았었다고 본인을 소개한 전직 연구원은 "3~4개월씩 들어가는 합숙 휴대폰 개발을 마치면 개발자들이 마구 퇴사한다"며 "개발자들이 나가버려 휴대폰을 팔고 난 뒤 사후 지원을 제대로 못하는 게 LG전자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과거에는 회사에서 타사 제품을 쓰지 못하게 해 다른 회사 제품이 얼마나 앞서있고 우월한지 알지도 못했다"며 "눈앞만 보고 이 같은 목소리를 무시하면 LG전자는 앞으로 2년, 3년씩 뒤쳐질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자 계열사로 옮겨붙는 공포

더 큰 문제는 LG전자의 등급 하락이 사정이 좋지 않은 다른 전자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으로 전이되면서 그룹 전체의 크레딧 리스크로 확대,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LG전자에 대한 매출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LG이노텍에게 캡티브 마켓의 불황은 곧 수익 악화와 재무구조 악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LG이노텍의 실적은 작년 말을 기점으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작년 4분기 360억원의 영업손실과 196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각각 기록한 바 있는 LG이노텍은 올 상반기 현재까지 영업손실 14억원, 순손실 165억원으로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장사가 제대로 안되니 재무구조 역시 나아질 리 없다. 빚은 늘고, 현금은 줄면서 같은 기간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LG디스플레이 회사채 발행과정에서 나타난 에피소드는 LG그룹 전자계열사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담고 있다. 총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시장 수요 조사를 진행했던 LG디스플레이는 생각보다 수요처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금리를 높여줘도 선뜻 투자에 나서겠다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핑 기간이 늘어지면서 다급해진 LG디스플레이는 금리와 발행규모를 조정한 뒤에야 어렵사리 발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AA급 회사채 발행이 이토록 난항을 겪은 것은 흔치 않은 일. LG전자의 등급 강등이 현실화 되면서 크레딧 리스크가 고스란히 LG디스플레이로 옮겨 붙어버린 셈이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LG디스플레이의 경우 단순한 업황 사이클상으로 겪게 되는 침체라기 보다는 수요의 구조적 변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낙폭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LG전자의 수요 비중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최대 주주라는 점에서 등급 강등의 여파는 불가피 할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룹에 발목잡힌 LG화학

그룹 리스크에 발목을 잡힌 또다른 회사는 LG화학이다. LG화학은 최근 호남석유화학의 등급 상향이 단행되면서 같은 화학업종 내 등급 재조정 대상으로 꼽혔지만 LG전자를 필두로 LG그룹 계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등급 상향이 무산된 케이스다. 작년 말을 기준으로 LG화학의 매출 규모는 19조4700억원. EBITDA는 3조5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호남석유화학의 경우 매출은 12조4000억원, EBITDA는 1조5000억원 수준이다.

따라서 얼마전 등급이 `AA+`로 오른 호남석유화학과 같은 등급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등급 상향 시점이었던 지난 2009년 3월 이후 수익성이 나아지고, 재무구조 개선은 물론 회사의 규모도 커진만큼 시기적으로도 충분히 등급이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시장은 예상했다. 하지만 증폭되고 있는 계열 리스크는 LG화학의 등급 상향 논거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LG화학이 전자 계열사들의 크레딧 리스크에 영향을 받을만한 요인은 상대적으로 적다. LG이노텍처럼 LG전자쪽 매출이 절대적인 경우 전방 산업 악화에 직격탄을 맞는다는 점에서 계열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이 크지만 LG화학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전자 계열의 비중은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화학의 등급 상향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는 등급 평정의 한 요건인 그룹의 계열 지원 가능성 항목 때문이다.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전자 계열이 LG그룹의 주축이었던 만큼 이들의 리스크 확대는 결국 LG화학을 비롯한 다른 계열사로 전이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흐름으로 봤을 때 LG그룹내 계열 지원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1%의 가능성도 등급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은 LG화학의 등급 상향이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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