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일하면 천국" 대기업-중기의 '상생경영'

2010. 7. 2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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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전자부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A사는 수년 전부터 미국 애플사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당시엔 큰 기회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애플과 일하게 된 것을 '큰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의 성공으로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그보다 동종 업계의 우리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A사 영업·구매담당자 김준형(가명) 씨는 "애플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갑을 관계상 을이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대우해줬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하는 애플 =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 부품 중 40% 이상은 벤처기업이 만든다. 그만큼 대기업에 중소기업은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라는 얘기다.

김 씨는 "애플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파트너로 인정했으며 파트너가 기분 좋게 일해야 좋은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과 A사의 거래 방식을 살펴보면 우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을 위해 배워야 할 점을 시사받을 수 있다. 애플이 A사와 연간 수십억원짜리 계약을 맺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애플의 엔지니어가 이메일을 보내 A사가 원하는 품질의 제품을 원하는 만큼 만들 능력이 있는지를 문의했다. 이 과정에서 부품 도면을 제출할 필요도, 거래처 목록을 건넬 필요도, 인맥을 동원해 로비할 필요도 없었다.

애플 직원이 실사를 나오거나 납품업체 등록을 위한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애플에서 OK 사인이 나자 회사 연락처와 직원 수, 환경정책 정도를 이메일로 보내 회사 등록절차를 마쳤다.

애플의 구매담당자와 만나 단가를 논의할 때도 대등한 관계에서 합리적인 협상이 이뤄졌다. 우리 대기업들이 흔히 하는 '단가 후려치기'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A사 담당자는 "신모델 개발을 위해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조금 높은 수준에 맞춰 단가를 불렀지만, 애플 담당자는 합리적인 이유가 된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거래가 시작되자 애플사에서는 매주 자동으로 이메일을 발송했다. 단가를 비롯해 제품이나 회사의 정보 등에 변화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의도를 가지고 보내는 메일이 아니라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A사에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국내 원청업체들이 단가 인하 압력을 넣으려 연락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A사 담당자는 "'애플이랑 일하면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거래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단가를 알아서 낮춰 제출하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과 거래하면 흔히 경험하는 구두 발주와 구두 취소 또한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애플은 매주 발송하는 이메일을 통해 앞으로 6개월치 구매예정 수량을 미리 알려왔다. '예정 수량은 발주로 간주하지 말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수량이 미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수량을 감산할 땐 최소 3개월 전에 이메일을 통해 정중하게 변동 사항을알려줬다. 언제나 앞으로 3개월분의 생산 물량은 예측할 수 있었고, 덕분에 부지런히 3개월치 제품을 만들어 놓고 전 직원이 2개월 동안 유급 휴가를 다녀오는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

▶ 협력업체 존중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문화 = 애플과의 거래에 고무된 A사 담당자가 하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무작위로 이메일을 보내봤다. 간단한 A사 소개와 제품 정보를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회사 이메일 주소로 보냈더니 3일 뒤 한곳에서 답장 메일이 왔다.

A사 담당자는 메일을 읽으며 그들의 정중함에 감탄했다. 비록 거래를 하자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우리 담당자가 메일을 체크하지 못해 당신이 보낸 메일이 사흘 동안 방치됐다. 답변을 기다렸을텐데 늦어져서 정말 미안하다. 좋은 제품 같지만, 검토 결과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 나중에 기회가되면 꼭 같이 일해보자"는 내용이었다.

A사 담당자는 "국내에선 대부분 바로 메일 휴지통에 버리거나 무시해버리는데, 정중한 답장 메일에 적잖이 놀랐다"면서 "그들이 우리를 대등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우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수직적인 관계가 보편화된 우리 대기업-중소기업관계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좋은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협력업체를 인정하고 대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 전문가들 "우리도 건강한 기업생태계 만들어야" = 전문가들은 어렵사리 장악한 제조업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고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주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정당한 수익을 보장받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적정한 납품단가를 인정하는 등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원가계산서 요구와 특허를 가로채는 행위, 구두 발주와 구두 취소, 보복 행위 등 불법적인 관행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며 합리적인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기업 임직원들이 승진을 위해서는 원가 절감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하청 중소기업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다.

이 기업호민관은 따라서 "대기업 내부적으로도 원가 절감을 임직원 평가 기준으로 삼기보다 혁신지수를 도입하는 등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생태계의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공공재에해당한다"며 "대·중소기업 간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세계적 기준의 공정거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미 문제도 알고 있고 답도 많이 나와있다"며"어떻게 실행하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 재벌그룹 오너들이 나서야 할 때 =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 12일 광화문 사옥 올레스퀘어에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한 '3불정책'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 자원의 낭비 방지, 기술개발 아이디어 가로채지 않기, 중소기업과 경쟁환경 조성하지 않기 등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KT는 이미 작년 6월29일 최저가 입찰 폐해 방지, 유지보수비 지급 확대, 경쟁력있는 중소기업 자립기반 강화, 현금 결제 및 금융지원 확대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 회장의 이번 선포는 중소기업과 함께 사는 '상생협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반성장'을 하겠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셈이다.

포스코와 한국전력, 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도 중소기업과의 상생과 협력을 강조하며 실천 방안을 하나 둘 내놓고 있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은 "주요 재벌그룹 오너들이 자발적으로 중소기업과의 상생경영 선포에 나설 시점이 됐다"고 역설했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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