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치매 노인에게 후순위채 판 부산저축銀

손진석 기자 2011. 8.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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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감이 치매로 고생하는 여든다섯 늙은이라예. 언제는 저축은행 팀장이라는 여자가 정신 오락가락하는 우리 영감한테 도장 주이소, 통장 주이소 해서 갖다줬더니 여기저기 도장을 찍데예. 말도 제대로 못하는 영감이 후순위채가 뭔지 어떻게 알겠능교. 자식들 돈까지 집안에 있는 돈 5억원을 몽땅 후순위채에 넣었는데 한 푼도 못 건지게 생겼으니 우짜면 좋은교."

남편(85)이 부산저축은행 직원의 부추김에 후순위채를 5억원어치 샀다는 이모(78)씨는 "후순위채가 뭔지 몰랐지만 10년 넘게 거래한 부산저축은행을 믿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발행된 후순위채에 투자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노년층으로 드러나면서, 저축은행들이 후순위채를 잘 모르는 노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팔았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후순위채 피해 신고를 중간 집계한 결과(7월 말 기준), 신고자 806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52.3%에 달했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후순위채 투자자는 2932명(투자액 1259억원)이며, 그중 95.3%는 부산·부산2저축은행 고객이다.

피해 노인들은 후순위채 이자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수입이 끊겼다. 부산 연산동에 사는 양모(82)씨는 60년간 공사판에서 막일하고 고철·폐지를 주워 모은 돈 1억4000만원을 작년 후순위채에 넣었다. 양씨는 "이자 더 주는 예금이라기에 도장 찍었다"며 "(원금을) 못 돌려받는다면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양씨처럼 피해 노인들은 "이자 많이 주는 예금인 줄 알았다" "망했을 때 못 돌려받는 상품이란 설명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박모(69)씨는 "3개월에 한 번 나오는 후순위채 이자 180만원을 생활비로 써왔는데 이젠 돈 나올 곳이 없다"고 했고, 정모(64)씨는 "남편 없이 평생 파출부로 일하며 모은 피 같은 돈 9000만원을 돌려달라"며 흐느꼈다.

저축은행들은 2009년 당시 예금 금리보다 3%포인트가량 높은 연 8.5%가량의 고금리를 제시하며 후순위채를 대거 발행했다. 피해자들은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이 '대한민국이 망해도 업계 1위 부산저축은행은 망하지 않는다' 며 판촉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저축은행들이 저금리 시대에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노인들이 금리 1%에도 민감하다는 점을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달 말까지 피해 접수를 마감한 뒤 후순위채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로 확인되면 일부라도 원금을 돌려주게 할 방침이다. 김태경 금감원 은행중소서민금융팀장은 "불완전 판매를 최대한 가려내 이자로 생활하는 노인들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후순위채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파산했을 때 변제받을 권리가 가장 나중에 돌아오는 채권을 말하며, 주로 금융회사가 발행한다. 다소 위험한 만큼 수익률은 높아 지난 2009년 당시 집중적으로 발행된 저축은행 후순위채의 금리는 연 8%대에 이른다. 통상 만기가 5년 이상이며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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