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쌀 대책] '米路' 쌀 재고 급증·값 폭락.. 처분 해법이 없다

2010. 7. 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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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검토만 하고 있습니다." 19일 농림수산식품부 한 직원이 푸념을 늘어놨다.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이 지난 6일 "2005년 생산된 묵은쌀(古米)을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농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삼았던 쌀을 돼지나 소 등 가축용 사료로 내놓으면 쌀값이 더 내려갈 것에 대한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연간 수백억원의 보관료를 들여 남아도는 쌀을 쟁여둘 수도 없다는 게 농식품부의 고민이다.

◇예산낭비 어쩌나=정부가 사료용으로 만들겠다는 쌀은 2005년산 비축분이다. 현재 전국 4800개 정부 양곡 보관창고에 11만t 정도가 쌓여있다. 묵은쌀은 냄새가 나고 맛이 없기 때문에 ㎏당 200∼22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팔아 막걸리 등 술 제조용으로 돌리거나 지난해부터는 떡 등 가공식품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2005년산 쌀로는 불가능해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만 5년이 된 쌀을 심리테스트 해봤더니 냄새가 너무 심해 밥을 짓는 원료뿐 아니라 가공용으로도 못 쓸 정도"라고 전했다.

쌀 재고는 적정량(72만t)의 2배인 140만t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쌀값도 1년 새 15%나 폭락했다. 최근 풍년과 함께 음식 소비 패턴이 밥보다는 빵과 면으로 바뀌면서 쌀 재고량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오래된 쌀을 처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그래도 남는 쌀'은 사료용으로 처분하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과 중국 등도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은 2004∼2007년까지 30만t 이상을, 중국은 현재 전체 쌀 소비량의 11%정도를 사료로 전환했다.

재고 쌀을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농식품부가 '쌀 사료화' 방안을 꺼내든 이유다. 2005년산 쌀을 훈정하고 유지, 보관하는 비용만 연간 31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쌀을 사료용으로 공급하면 ㎏당 200∼250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 700∼800원하는 2005년산 쌀은 매년 300원씩 가격이 더 떨어져 가치가 하락한다"며 "대신 사료용으로 사용하면 외국에서 들여오는 옥수수 사료 등 수입도 줄어들고 보관료 등의 재정 손실도 적어져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인공노할 일"=묵은쌀 사료화 방안 발표 직후 정치권과 농민들의 반대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동물 사료용으로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논리다. 또 2007년 이후 끊긴 대북지원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북한은 올해도 100만∼130만t가량 쌀이 부족한 상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성을 다해 재배한 쌀을 개, 돼지 사료로 내준다는 건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며 "천인공노할 쌀 사료 계획을 중단하라"는 반대 성명을 냈다.

또 지난 14일에는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 35개 단체와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5개 야당이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다시 시작하자는 취지였다. 대북 쌀 지원 중단은 연간 25만∼40만t의 소비처가 사라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올 작황도 평년작을 기록하면 쌀 대란은 더욱 심각할 것이란 우려가 담겼다.

위두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개, 돼지에게 퍼준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며 "정부는 남는 쌀을 북한에 제공하는 방안을 인도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천안함 사건 등으로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대북지원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데다 지원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2005년산 쌀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북지원용 쌀은 구곡이라도 만 4년 이상된 쌀은 보낸 적이 없다"며 "때문에 북한 측에서 먹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다시 우리나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05년산 쌀은 좋은 일 하고도 욕먹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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