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서 환경, 이젠 사회로.. 진화하는 '착한 소비'

2009. 2. 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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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헤리리뷰]

윤리적 소비 서베이역사와 이론

1844년 12월21일, 영국 랭커셔주 로치데일에서 28명의 노동자가 출자한 조그만 가게가 문을 열었다. 이게 바로 처음 윤리적 소비가 나타난 곳, 세계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인 로치데일조합이었다.

그렇게 작게 시작된 윤리적 소비는, 건강·환경·사회 이슈를 모두 포괄하는 '착한 소비'로 떠오르며, 소비시장의 기존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위치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영국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소비환경이었다.

많은 공장주가 월급 대신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을 지급했는데, 이 가게의 식품이 매우 질이 낮고 값이 비쌌다. 밀가루에 잘게 부순 석회암을 섞었고, 맥주에는 아편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공장에 싸가지고 가는 도시락은 식빵 한 조각에 동물 지방을 바른 게 전부였다.

그들과 그 가족들이 심각한 건강문제에 직면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게 로치데일조합이다. 여기서는 유해물질을 섞지 않은 밀가루와 버터, 설탕, 오트밀을 공동구매해 지역 노동자에게 저렴하게 팔았다.

19세기 영국에서는 또 노예노동으로 수확한 설탕 불매운동이나, 시민 투표권 획득을 위한 차티스트운동을 지원하는 지역 상점 제품 구매운동이 벌어진다.

1967년 제3세계의 빈곤문제를 의제로 열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제3세계 대표는 '원조가 아닌 무역'을 통해 빈곤을 극복하자고 선진국에 호소한다. 이때부터 선진국들은 공정한 가격을 지급하는 무역을 통해 제3세계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한 문제 해결 방법이 제시된다. 재활용 및 절약,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소비, 제3세계 생산자를 고려하는 공정무역 등이 이런 방법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며, 현재까지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윤리적 소비 움직임이다.

19세기 영국서 협동조합으로 출발

윤리적 소비란,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믿음에 근거해 내리는 의식적인 소비 선택을 말한다. 즉, 반드시 당장 자신에게 경제적인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이고 이웃을 고려하며 자연환경까지 생각하는 관점에서 내리는 구매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 소비에는 로치데일조합에서처럼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소비자협동조합, 제3세계 국가 생산자의 인권을 고려한 공정무역, 동물학대 제품 불매, 재활용 제품 사용, 우리 고장 물품을 사용하는 로컬푸드 소비, 사회적기업 제품 소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한국에서의 윤리적 소비를 크게 건강, 환경, 사회의 세 영역으로 분류한다.

우선 건강은 '웰빙' 소비 트렌드가 속하는 영역이다. 당장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근시안적 소비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해야 한다는 흐름이다.

환경 영역에는 저탄소·저에너지 제품 사용, 재활용 제품 사용, 동물보호 제품 소비 등 친환경 소비가 속한다. 나의 건강뿐 아니라 자연환경 전체의 건강을 생각하며 소비 의사 결정을 내리는 흐름이다.

사회 영역에는 공정무역 등 인권이나 노동 문제를 고려한 소비가 포함된다. 나의 '웰빙'뿐 아니라 이웃의 '웰빙'까지 생각하며 소비하는 흐름이다.

한국에서 윤리적 소비는 처음 건강 영역에서 제기되었지만, 이미 환경 영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최근 사회 영역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의 열쇳말만 봐도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소비하는 '웰빙'에서,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는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로, 그리고 최근 제3세계 생산자에게 제대로 된 가격을 주고 커피나 초콜릿 등을 수입하는 '공정무역'으로 바뀌고 있다.

'과시적 소비'에서 '이타적 소비'로

소비자는 '효용'(utility)을 얻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경제학 원론에서 가르치는 소비의 본질이다.

그런데 여기서 '효용'은 오랫동안 '화폐로 환산될 수 있는 당장의 만족'인 것처럼 해석됐다. 그래서 유통업체들은 가장 싼값에 제품을 들여와 가격경쟁력을 갖추려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비용 절감 경쟁을 벌이다 보니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건강이나 안전 문제가 생기고, 공장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아동 노동이 성행하는 등 인권 및 노동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구도를 바꾼 것이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19세기 당시의 상류사회를 비판하며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과시적 소비란 다른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실제로 필요 없는 제품을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이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부터 사람은 반드시 당장의 경제적 만족 때문에 소비하는 것만은 아니며, 다른 동기에 의해서도 소비한다는 이론이 성립한다. 이는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라고 통칭되며, 소비자는 과시적 동기뿐 아니라 이타적 동기 등 다양한 사회적·도덕적 동기에 따라 소비할 수 있다는 논증의 여지가 열리게 된다.

최근 경영학에서는 이런 소비자 이론에 근거해 '사회 마케팅'(social marketing), '공익 마케팅'(cause-related marketing) 등 이타심에 의거한 다양한 기업 경영 전략을 제시하기도 한다.

건강, 환경, 사회로 이루어진 윤리적 소비의 '삼발이'(triple bottom line)는 미래 경제발전의 모습인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및 미래 경영 모델인 '지속가능 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영은 경제, 환경, 사회의 세 가지 성과를 중심으로 한 성장 모형이다. 여기서 환경과 사회는 말 그대로 윤리적 소비와 직접 맞닿아 있다. 경제는 기업이나 국가의 중장기적 '건강'을 본다는 면에서 윤리적 소비에서의 '건강'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극은 '30:3'?

당신이 소비자 조사원의 전화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윤리적으로 올바른 제품, 예를 들면 제3세계 커피 농가에 제값을 주는 커피나, 장애인이 일하는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사시겠습니까?" 어렵지 않게 '예'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막상 쇼핑에 나선 뒤에 이런 제품 앞에서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다. 물건값이 몇 백 원만 차이가 나도 힘없이 물러서기 마련이다.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대부분의 소비자가 그렇다. 조사에서는 늘 윤리적 소비를 한다는 응답이 나오지만, 실제 윤리적 생산품은 그만큼 팔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가디언>과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칼럼니스트이자 기업책임 컨설팅회사 '콘텍스트'의 이사인 로저 코위는 이런 현상을 '30:3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3분의 1가량의 소비자가 설문에서는 물건을 살 때 제조업체의 사회적 책임 정책과 관행을 고려한다고 응답하지만, 윤리적 생산 제품은 대부분의 시장에서 3% 미만의 점유율만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면 윤리적 소비가 늘고 있다거나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은 틀린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런 현상은, 소비자가 윤리적 생산품을 구매하려면 찾기가 어려워 탐색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일어난다. 윤리적 소비를 일반 할인점이나 마트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추가비용이 낮아져 시장 점유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막상 윤리적 소비를 하려 해도 고민은 깊다. 예를 들면 같은 윤리적 생산 제품끼리의 상충관계도 고민을 던져준다.

선진국의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근처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사 먹는 것이 수입 농산물을 먹는 것보다 윤리적 소비에 가까워 보인다. 가까운 곳의 제품을 사는 것이 수송 과정에서의 탄소배출 등 환경 영향이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가까운 곳에서는 농약 등을 사용하는 기존의 관행 농법을 사용한 농산물만 나오고, 유기농산물은 근처 개발도상국에서 수입한 것을 사 먹어야 한다면? 탄소를 생각한다면 가까운 곳의 농산물이 더 윤리적이지만,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를 돕는다거나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이라는 점에서는 수입 농산물이 나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상반된 가치 또는 겹치는 가치들 사이의 상충관계를 해결하는 소비 형태를 개발해 내는 것은 윤리적 소비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선진국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 사이의 관계에서도 갈등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의 제품이 제값을 받고 선진국에 수입되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윤리적 소비의 또다른 축은, 이제 선진국에서는 소비되지 않는 유해한 제품을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견제다. 선진국은 종종 유해 폐기물을 배출하는 공장이나 제품을 개발도상국으로 옮기며 경제적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윤리적 소비 관점에서 이는 방지되어야 할 행위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일부 국민은 이렇게 원칙을 지키면서는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착한 일'과 '성장' 사이에 상충이 생긴다는 관점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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