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폐지 길닦기냐.. 장수中企 육성 묘책이냐

박유연 기자 2011. 10. 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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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를 폐지하기 위한 첫 단계인가, 아니면 장수(長壽) 중소기업을 키우기 위한 것일까?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 가운데 상속세 개편을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자식이 가업을 물려받을 때 재산이 500억원을 넘지 않으면 상속세를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단 상속세를 면제받으려면 가업을 상속받은 후 최대 20년 이상 경영과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의 주인이 바뀌거나 폐업하는 것을 막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들은 장수기업이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며 반기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상속세 폐지를 위한 사전 조치라고 비판한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7 대선을 치르면서 주요 공약의 하나로 '상속세 완화'를 제시했던 점을 상기하면서 결국 내년 세법 개정을 통해 상속세가 폐지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기업인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

지난 2008년 세계 1위의 손톱깎이 제조업체 쓰리세븐(777)의 주인이 제약업체인 중외신약으로 바뀐 일이 있었다.

창업주인 김형주 회장이 타계하면서 유족들이 150억원의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지배 지분을 중외신약에 넘기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유족들이 우여곡절 끝에 경영권을 되찾긴 했지만, 하마터면 상속세 부담 때문에 창업주가 맨손으로 일군 세계 1위 업체를 후손들이 날릴 뻔했다. 당시 산업계에서는 '상속세 부담이 세계 1위 업체를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나왔다.

올해 세법 개정안은 이 같은 논쟁의 연장 선상에 서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9월 7일)되기 전인 지난 8월 말에 '주요국의 상속세 부담 비교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비상장 중소기업을 가업으로 물려받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상속세 부담이 독일의 10배, 일본의 4.5배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100억원 상당의 기업 지분을 물려받을 때 한국에서는 상속세를 25억2000만원 내야 해 독일(2억5000만원)이나 일본(5억6000만원)보다 부담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한상의측은 "외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특정 수준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이 같은 기업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다.

◆외국은 상속세 폐지 추세

상속세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상속세는 대표적인 이중 과세에 해당한다.

선대(先代)에서 재산을 형성할 때 취득세나 소득세 등의 형태로 세금을 냈는데, 후대에서 같은 재산에 대해 상속세로 다시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둘째, 존재 가치가 미미한 상속세를 별도 세금으로 놔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2008년에 우리나라 전체 상속세 수입은 1조1817억원으로 전체 국세(157조 5285억원)의 0.8%에 불과하다.

셋째는 고령화다. 고령화로 인해 수명이 길어지게 되면 가진 재산을 더 오랫동안 쓰게 돼 자식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시점도 늦춰지고, 물려주는 재산이 줄어드는 이중의 효과를 낳는다. 물려줄 재산이 줄어들면서 2세들의 경제 활동 기반도 축소되는 셈이니, 상속세 부담을 낮춰서 경제 활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런 논리에 따라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나라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상속세를 양도소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해법?

기획재정부는 당장 상속세를 폐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1997년 상속세에 대한 위헌 소송이 제기됐을 때 헌법재판소는 "상속세는 국가 재정 수입 확보라는 일차적 목적 외에도 자유시장 경제의 모순을 제거하고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서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소를 각하한 바 있다.

더구나 상속세 폐지는 국민 정서 때문에 선뜻 추진하기 어렵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안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대기업 상속세도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면서 "가업 상속이 안 되면 경제에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얘기하는데, 기업 주인이 바뀌는 것과 사회 전체의 생산성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속세가 사라지면 부의 세습이 이뤄지고 계급이 고착화된다"며 "부잣집 자녀들은 이미 성장 단계에서 교육 등을 통해 충분히 수혜를 입는데 상속세까지 없앤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기획재정부는 상속세를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 일종)로 전환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상속 시점에서 과세하지 않고, 자녀가 재산을 처분해 현금 소득을 얻을 때 과세하는 것이다. 명목상 상속세가 폐지된 것으로 보여 여론의 일시적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지만,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제도의 기본 취지를 살리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금도 상속세보다 더 걷을 수 있다. 현재는 최대 10억원까지의 상속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면제해주는데,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면 자녀들이 물려받은 부모 재산을 처분해서 얻는 모든 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가업을 잇는 부자들의 세 부담은 낮추어주지만 다른 소액 상속인들의 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어서 조세 저항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정부가 선뜻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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