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과잉시대> ①강남불패 무너지나

2010. 4. 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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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빌딩 공실률 15%..중대형 아파트는 가격 속락"강남 빌딩ㆍ중대형 아파트 모두 공급과잉"(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1. 강남에서 한 작은 빌딩의 관리소장 박모(49)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그가 관리하는 10층짜리 빌딩의 3개 층이 장기간 비어 있기 때문이다. 3개 층 모두 6개월 이상 비어 있고 그중 1개 층은 벌써 1년째 공실로 남아있다.

"주변 빌딩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공실률이 20% 안 되는 곳이 별로 없죠. 우리 빌딩도 테헤란로 뒤 이면도로에 있고 지은 지 6년 밖에 안돼 그리 낡은 건물이 아닌데도 이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그 빌딩 주변에는 새 빌딩 2채가 지어지고 있다. 인근 부동산에 확인하니 그중 하나인 11층짜리 빌딩은 8월 완공을 앞두고도 임대 계약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사실 공실이 이 정도면 임대료를 낮추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빌딩 주인들은 공실 생기는 것보다 빌딩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일정 수준 이하로는 절대 안 낮추려고 하죠"

#2. A씨는 2007년 잠실 롯데캐슬골드 76평형(251㎡)을 사들였다. 이 아파트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강남 아파트 중 하나였다. 2002년 분양 당시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경쟁률이 300대 1을 넘었다.

하지만, 대출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파트를 살 때 은행에서 대출받은 금액이 무려 15억 원이었다.

연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이자에 시달리던 A씨는 아파트를 처분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남 중대형 아파트 시장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거래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 아파트는 지난해 말 경매에 부쳐졌다. 그러나 28억 원에 달하는 감정가에 선뜻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3차례 유찰된 아파트의 입찰가는 14억 원대까지 내려갔다.

다음 달 초 예정된 4번째 입찰에서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입찰가는 11억 원대로 내려가게 된다. 2002년 분양 당시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10억 원에 가까웠다.

◇ 강남 빌딩들, 좋은 시절은 가고..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불패'는 하나의 금언처럼 통한다.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10년 이상 이어온 강남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는 `강남 부동산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를 낳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다. 그것도 강남 부자들의 재산 목록 1순위인 중대형 아파트와 중소형 빌딩 시장에서 `불길한'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먼저 문제가 불거진 곳은 중소형 빌딩 시장이다.다국적 부동산기업인 ERA코리아는 최근 강남 빌딩시장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강남 역세권 빌딩 389곳의 임대 현황을 조사했더니 공실률이 12%에 달했다. 연면적 3천305㎡(1천평) 이하 중소형 빌딩의 공실률은 무려 15%였다. 이 빌딩들의 경우 지하철 역세권이라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비역세권의 경우 공실률이 20%를 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ERA코리아의 장진택 이사는 "공실률이 이 정도라면 상당수 중소형 빌딩은 예금 수익률에도 못 미치는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은행 대출이 많은 신축 빌딩은 이자 부담에 힘겨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공실이 많아 수익성 악화로 은행 빚을 갚지 못한 강남 빌딩들이 잇따라 경매시장에 나오고 있다.

◇ 남은 건 `공급과잉'과의 사투문제는 강남 빌딩의 공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미 수년 전부터 강남의 비싼 임대료를 견디다 못한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탈(脫) 강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LG텔레콤, STX그룹, 팬택, LS그룹, 우리카드, LG카드 등의 대기업이 최근 2년 동안 강남을 떠나 중구, 마포, 구로 등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시내 곳곳에 지어질 대형 빌딩들을 고려하면 `탈 강남'은 아직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용산 드림타워, 상암동 DMC타워, 뚝섬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등 초대형 빌딩들이 앞으로 수년 내 지어진다. 2015년까지 서울시내에 지어지는 빌딩의 총 연면적은 무려 1천500만㎡에 달한다.

이중 절반만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750만㎡에 이른다. 수년 내 63빌딩(연면적 17만㎡) 수십 개가 서울시내에 들어서는 셈이다.

종합부동산관리기업인 교보리얼코의 박종헌 투자자문팀장은 "강남을 대체할 만한 오피스빌딩 지구가 용산, 여의도, 뚝섬 등에 속속 들어선다는 것을 고려하면 강남 중소형 빌딩의 상황은 앞으로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중대형 아파트 3년 새 10% 이상 하락중소형 빌딩과 함께 강남 부동산 시장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곳은 바로 중대형 아파트 시장이다.

국내 부동산정보 사이트 중 매물 수가 가장 많은 부동산114에 나온 아파트 호가를 분석해 보면 뜻밖의 사실을 알 수 있다.

2006년 말 강남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이르렀던 때와 비교해 시세가 10% 이상 떨어진 중대형 아파트가 부지기수인 것. 20% 이상 떨어진 아파트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개포 우성, 역삼동 아이파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등 강남을 대표하는 고급 아파트 일부 평형은 정점에 비해 가격이 5억 원 이상 떨어졌다. `강남불패'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경매시장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도곡동 타워팰리스는 현재 3채가 경매시장에 나와 있다. 잠실 롯데캐슬골드는 지난해부터 무려 10채가 경매시장에 쏟아졌다. 그것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2~3차례씩 유찰된 끝에 입찰가가 시세의 51~64%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경매시장에 나온 전용면적 132㎡(40평) 이상 강남권 중대형 아파트는 143채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급강하했던 2008년 4분기 당시보다 많은 수다.

지지옥션의 강은 팀장은 "대출이 많이 끼어 있는 중대형 아파트는 전세로 들어오려는 사람마저도 구하기 어려워 이자 부담과 함께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무조건 강남', `무조건 중대형'이 화근전문가들은 강남 중소형 빌딩과 중대형 아파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강남에 투자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강남불패 신화를 맹신한 데 있었다고 지적한다.

교보리얼코 집계 결과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서울시내에는 총 연면적 489만㎡의 빌딩이 세워졌다. 이중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 세워진 빌딩이 무려 42%를 차지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의 김선덕 소장은 "강남, 강남 하지만 강남권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공급이 지나치게 많으면 수요가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중대형 아파트도 마찬가지다.2005년부터 올해까지 강남구에 들어선 아파트의 전체 가구 중 132㎡(40평) 이상 중대형 아파트가 차지한 비중은 37%에 달한다. 서초구는 그 비중이 무려 44%에 이른다.

하지만, 인구 추이는 거꾸로 가고 있다. 1990년 3.8명이었던 가구당 인구 수는 2000년 3.2명으로 줄어들더니 올해는 2.8명까지 감소했다. 중대형의 수요는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은퇴를 앞둔 50대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중대형 아파트를 처분하고 작은 아파트로 옮기려는 `홈 다운사이징(Home Downsizing)'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의 윤송희 애널리스트는 "2000년대 중반 중대형 열풍이 불면서 건설사마다 중대형 아파트 짓기에 바빴고, 수요자들도 강남권 중대형에 열광했다. 그 때의 열풍이 지금은 공급과잉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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