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10년전 환란' 보는 듯

2008. 9. 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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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약이 무효다. 구제금융 합의라는 미국발 호재도 국내 외환시장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정부의 강도높은 시장개입으로 환율은 1200원을 뚫지 못했지만 1200원 돌파는 시간문제며, 1300원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여전하고 경상수지 악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패닉현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환란 당시 방불한 외환시장=29일 환율은 지난 26일보다 무려 30원 이상 올라 장중 1200원까지 갔다가 다시 1180원대로 하락하는 등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오전 한때 상승세를 보였던 주식시장도 환율급등으로 19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환율이 개장 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오후 한때 1200원을 기록하자 달러화 매수를 원하는 기업들의 주문 전화가 각 은행 딜링룸에 빗발쳤다. 환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자 당국은 구두개입에 이어 '실탄' 개입을 했으며 그 규모는 최대 20억달러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딜러는 "마치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던 상황이 재현된 듯했다"고 말했다.

◇회의론 확산되는 미 구제금융 효과=전날 미국의 구제금융 합의 소식이 전혀 시장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 데에는 합의 이후 상황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와 의회가 구제금융안에 합의한 것은 이미 시장에 선반영된데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구제금융안이 나오더라도 실제 부실채권을 사는 것은 가격산정 등 복잡한 실행과정을 거쳐야 한다. 파생상품에 따른 위기인 만큼 또다른 부실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경제상황과 여건에 대한 우려도 환율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선임연구원은 "최근의 유가 안정에도 불구하고 세계경기 위축 현상으로 경상수지 개선이 어려워지면서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개방도가 높고 외국 자본이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구조로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며 "이 상황에서 무역수지 적자와 국내 금융의 부실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함께 제기되면서 현저한 원화약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불신=시장의 정부 불신도 위험수위다. 고환율→환율안정→고환율 묵인 등 일관되지 못한 정책 움직임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7월에 취해진 15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개입과 최근 정부가 달러기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10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 투입 방침에도 환율이 오름세를 보이는 것은 정부가 시장에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백약이 무효=정부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달러 매도 개입이 있을 수 있지만 개입의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을 축내기가 쉽지 않다. 눈 올 때 마당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가용 실탄도 많지 않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2432억달러지만 1년 이내 만기가 돌아오는 이른바 '유동외채'가 2223억달러에 달한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이들 외채가 전부 기간 연장이 안되진 않겠지만 한국금융시장이 계속 불안하면 현 외환보유액이 충분치만은 않다"고 경고했다. 정부로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해법이 가닥을 잡고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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