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 - 음식에 죽고 사는 외식경영 전문가

2010. 2. 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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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침에, 그의 머릿속에는 '오늘은 무얼 먹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잡는다. 누가 시킨 것도, 직업상 관련이 있어서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무얼 먹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외식경영 전문가'로 유명한 (주)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 이야기다.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저녁엔 뭘 먹지' 하며 고민한다. 아침나절에 하루 동안 먹을 메뉴가 완벽히 정리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 때문에 계획이 흐트러지면, 찾아오는 손님이 반갑지 않을 정도다. 이쯤 되면 음식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종원(44) 대표는 '식당'에 미친 사람이다.

1993년 서울 논현동에 원조쌈밥집을 오픈하면서 뛰어들게 된 식당 경영. 이후로 탄생한 본가,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해물떡찜0410, 홍콩반점0410, 한국본갈비, 최강집, 행복분식 등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더본코리아에서 론칭한 18개의 식당 브랜드는 모두 그의 기획에서 출발했고, 메뉴 또한 그가 직접 개발했다. 아침에 일어나 '뭘 먹을까'부터 고민하고, 하루 종일 음식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 좋아하는 음식을 바탕으로 메뉴를 내놓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식당들은 거의 대부분 대박집이 되었다. 2005년 무렵부터는 중국의 칭다오를 비롯해 베이징,상하이 등에 진출했고, 작년 3월에는 미국 시장에도 진출해 본가, 홍콩반점0410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요즘 자주 들을 수 있는 '한식의 세계화'를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음식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해외로 나갑니다. 그러던 중, 한식의 위상을 높이고 한식의 세계화에 도움이 되기 위해 중국에 소고기 전문점 본가를 오픈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일했던 중국 교포들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중국으로 추방되었는데, 중국에 매장을 오픈하면서는 한국에서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다시 중국 매장에서 일하게 된 기억도 나는군요. 감회가 새로웠죠."

식당업에 뛰어든 지 20여 년. 얼마 전에는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 식당'과 '무조건 성공하는 전문 식당'이라는 제목의 책도 펴냈다. 자신이 성공한 노하우를 책을 통해 낱낱이 밝힌 것.

"20년 동안 여러 식당을 열었습니다. 크게 성공하기도 했고, 더러는 실패도 맛봤죠. 책을 통해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다양한 메뉴 개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음식점을 열었지만, 방향을 제시해줄 정형화된 지침서가 없었죠. 혼자 고민하고, 외로움도 많이 느꼈어요. 외식업 선배로서, 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고, 실질적인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내놓은 식당 대부분 대박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까다로웠던 미식가 아버지, 요리사 못지않은 실력으로 불평 한 마디 없이 식구들의 밥상을 책임졌던 어머니. 사남매 중 그런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건 셋째인 백 대표였다. 대학 때는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느라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고, 학사장교로 간 군대에서는 본래 보직(포병)을 접어두고 장교식당에서 일하기까지 했다. 제대 후 그가 바로 뛰어든 사업도 역시 식당이었다.

"첫 사업은 인테리어 분야였어요. 근처 부동산에 들러 농담 반, 인사치레 반으로 '사장님, 어디 식당 할 만한 자리 없어요'라고 물은 게 시작이었죠. 마침 좋은 자리가 났다며 끌려 갔는데, 규모가 컸지만 장사는 신통치 않은 집이었어요."

'대구 쌈밥 서울 분점'이라는 이름부터 '원조쌈밥집'으로 바꿨다. 쌈장을 시작으로 음식을 하나씩 업그레이드 하다가 대패삼겹살을 개발해 대박을 냈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방황도 시작됐다.

"스물여덟에 시작해 젊은 나이에 돈을 벌었지만, 식당 주인이라는 게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번듯한 일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 점점 자존심이 상해갔죠."

겉으로는 친절한 사장님이었지만, 아침마다 간과 쓸개를 장롱 속에 넣어두고 출근하는 세월이 이어졌다. 결국 목조 주택과 관련한 자재를 수입하는 것으로 '주인'이 아닌 '사장님' 소리를 듣게 됐다. 커다란 사무실에 인테리어도 그럴듯하게 꾸몄다. 마침 목조주택 붐이 일어 돈도 많이 벌었다. 내친 김에 아예 시공사를 차려 일산에 단독주택 단지를 짓는 욕심까지 부렸다. 남들이 물으면 취미로 큰 한식집을 한다고 둘러댈 정도로 식당 일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한순간에 몰려온 IMF의 파도는 손을 털고 나온 그에게 17억 원의 빚을 남겼다. 그가 돌아갈 곳은 '쌈밥집' 뿐이었다.

"다시 돌아간 식당은 이미 적자가 나는 곳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루에 3~4시간만 자고, 매일 500장이 넘는 전단지를 돌리며 몇 달을 고생했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식당이 안정될 무렵, 후배의 제안으로 '한신포차'를 시작했다. 깨끗하고 대형화된 포장마차에 IMF로 고통 받는 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덕에 빚도 갚을 수 있었다. 더불어 그가 얻은 건 식당이 천직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단순하고 전문화된 메뉴가 성공 부른다수많은 외식 브랜드를 론칭하며 성공을 거둔 백 대표는 모든 브랜드를 '전문화'와 '단순화'라는 말로 묶는다.

"메뉴를 단순화, 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양질의 전문화된 메뉴를 가격 대비 만족도 높게 즐길 수 있죠. 식당은 식당대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즉 재고가 남지 않게 되고, 매일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죠. 예를 들어 '홍콩반점0410'은 짬뽕이라는 하나의 메뉴에 집중하고, 짬뽕만을 위한 신선한 재료를 씁니다. 무엇보다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조리해 신선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죠."

이제 막 '먹는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백 대표는 '식당은 영화와 같다'고 말한다. 영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즐기기 위해선 우선 관객(손님)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 문제점을 찾고 성공 요인을 분석하려는 감독(주인)의 입장에선 제대로 영화(식당)를 즐길 수 없다는 뜻이다.

"대박 식당과 소문난 맛집을 순례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메뉴는 뭔지, 그릇은 어떤지, 서비스나 청결 상태는 좋은지 분석하려 하죠. 이런 방법으로는 그 식당의 성공 아이템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보통의 손님이 되어 음식을 먹고 즐겨야 장단점을 알게 되는 거죠."

백 대표는 더불어 '절대로 서두르지 말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정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은 예비 창업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자나 깨나 음식과 식당만 생각하는 그의 꿈은 레스토랑을 갖춘 한식 전문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곳에서 배출된 인력들을 모두 채용할 수 있도록 유명한 외식 브랜드를 앞으로 50개, 점포도 3000개까지 늘려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식당을 머릿속에서 지었다 허무는 열정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글 장진원 기자Ⅰ사진제공 더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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