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빚꾸러기' 샀나? 국민은행 미스터리

이종태 기자 2010. 12. 11. 11: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국민은행 임원 88명을 징계한 'BCC 인수합병' 건의 내막이 자세히 밝혀졌다. 당시 국민은행 경영진의 행태를 보면 카자흐스탄의 부실 금융기관을 '비싸게' 인수하려고 몸부림쳤다.

무릇 ‘거래’라는 행위에서 매입자는 싸게 사려 하고, 매도자는 비싸게 팔려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매입자가 ‘물건’의 흠까지 애써 은폐하며 비싸게 사려 했다면,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며 배후의 의도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 전·현직 임원 88명을 징계했다. 지난 1월 KB금융지주와 자회사 국민은행을 종합 검사한 결과다. 단일 은행에 이 정도 규모의 징계가 내려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특히 강정원 국민은행 전 행장은 이후 3년간 금융기관 취업이 금지되었다. 다만 형사책임은 면했다.

ⓒ뉴시스 올해 7월13일 취임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왼쪽 사진 오른쪽)이 강정원 KB국민은행장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핵심 징계 사유는 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 금융기관 BCC(센터크레딧 은행)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상황들이다. 〈시사IN〉이 이성남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금감원의 〈국민은행 종합검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은행 경영진은 BCC의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은폐하며 비싸게 인수하려고 몸부림쳤다.

BCC 인수에 따른 손실 4000억원

2008년 3월, 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에서 자산 규모 5~6위 은행인 BCC에 대한 인수합병 계약을 발표한다. BCC 지분 중 30%를 6억3000만 달러(약 7249억원)에 사들이는 조건이었다. 또한 당시로부터 30개월 이내에 BCC의 지분 20.1%를 추가 매입해서(이 경우 국민은행 지분은 50.1%) 경영권을 장악하기로 했다.

당시는 2007년 여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조짐으로 해외 은행 인수가 매우 위험하다는 분위기였다. 카자흐스탄 은행권 역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 와중에 BCC 인수자로 나선 국민은행은 연이어 드러나는 BCC의 부실을 ‘미래의 오너’로서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를 타개하려고 2009년 가을에는 세계은행 산하 투자기관인 IFC(국제투자공사)까지 끌어들인다. 결국 올해 2월 국민은행의 BCC 지분은 41.9%에 이른다. IFC도 BCC의 지분 10%를 매입했다(국민은행은 2013년 이후 IFC의 BCC 지분 10%를 사들여야 한다). 국민은행이 2008년 3월 이후 사들인 BCC 지분은 모두 9392억원인데, 이에 따른 손실이 3997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금감원은 추정한다.

금감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은행 경영진은 BCC(주식)의 매입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산정하려 했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의 매입 가격은 해당 은행의 재무 상태와 수익성을 기반으로 산정한다. 물론 매도 은행 측(여기서는 BCC)에서 현재와 미래의 재무 상태 및 수익성 자료를 제출하지만, 이는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경우가 많다. 매도하는 쪽에서는 가능하면 비싸게 팔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입하는 쪽에서는 기업가치 평가 전문기관을 자문사로 두고, 이도 모자라 직접 실사까지 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사IN 윤무영 국민은행 본점 모습.

국민은행과 BCC가 인수합병 계약을 맺기 직전인 2007년 말, 자문사인 ‘바이저 캐피털(Visor Capital)’은 BCC가 제공한 ‘낙관적 자료’에 기반한 매입 가격을 한 주당 1715~2269텡게(카자흐스탄 화폐 단위·약 1만3300~1만7600원)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와 함께 BCC의 수익성이 나빠질 경우를 반영한 매입 가격도 내놓았다. 562~1092텡게(약 4360~8460원)로 ‘낙관적 평가 가격’보다 훨씬 싸다. 그러나 국민은행 경영진은 낙관적으로 산정된 평가 가격만 이사회에 보고했다.

‘자금 상황 경고’가 ‘유동성 양호’로 둔갑

또한 BCC의 문제점은 의도적으로 은폐했다. 금감원 ‘종합검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은행 경영진은 2007년 말 현장실사 보고서에 “(BCC의 경우) 대규모 부채상환이 예정되어 있어 자금 조달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기록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사회에는 “유동성이 매우 양호하다”라고 보고했다. 또한 2007년 10월 작성한 ‘투자 제안서 검토 보고서’에는 “순이자 마진(순수익을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의 하락이 지속되고 있어 향후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는데, 이사회에는 ‘순이자 마진이 안정적’이라고 보고했다.

더욱이 카자흐스탄의 은행 관련 제도에 따라 국민은행이 이후 엄청난 재산 피해를 당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카자흐스탄 은행법에 따르면, 지분율이 25%를 넘는 대주주는 해당 은행이 곤경에 빠져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경우 무조건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 증자를 거부할 경우, 아무리 주가가 낮은 수준이라도 강제로 소유 지분을 팔아야 하는 매각 명령이 떨어진다. 실제로 BCC의 지분 80% 이상을 보유했던 카자흐스탄의 백만장자이자 정치인인 바이세토프가 국민은행의 인수합병 건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은행 경영진은 이런 법률적 리스크를 이사회에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증자 참여 여부의 선택권이 있다”라고 보고했다.

더욱이 BCC는 당시 백만장자 바이세토프의 지분율이 80% 이상인데도 51%로 공시할 정도로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은행이었다. 국민은행 경영진은 이런 문제도 숨겼다. 심지어 재무실사를 통해 BCC의 순자산가치를 4억4500만 달러(약 5120억원, 2007년 9월 말 기준)로 평가하고도 BCC가 자체 산정한 5억7500만 달러(약 6616억원)를 그대로 적용했다. 파는 쪽이 원하는 대로 주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행태다.

ⓒ국민은행 카자흐스탄에 있는 BCC 지점(위 왼쪽). 위 오른쪽은 2008년 3월 강정원 국민은행장(오른쪽)과 바이세토프 BCC 이사회 의장(왼쪽)이 주식매매 약정서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상황이 이러했으니 당연히 사고가 터진다. BCC가 2008년 한 해 동안 외부에 갚아야 할 돈은 17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BCC가 국민은행 측에 이 사실을 알린 것은 인수합병 계약 직전인 2008년 2월이었다. 국민은행 측이 예상한 규모(5억1200만 달러)의 3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경영진은 “BCC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양호한 건전성을 실현하고 있다”라고 이사회에 보고했다.

더욱이 2008년 초 BCC의 건설·부동산 대출 부문에서도 거품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부실이 발생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금융감독 당국이 같은 해 10월 이 부분에 대한 충당금(대출금의 일정 비율을 은행 내부에 비축해둬야 하는 제도) 비율을 9.4%에서 61.8%로 올릴 정도였다. 예컨대 BCC가 건설사에 대출해준 100만 텡게에 대해 은행이 보유해야 하는 충당금이 9만4000텡게에서 61만8000텡게로 7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4억3500만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가 필요한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시점에서 국민은행은 인수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매입가를 재협상해야 옳았을 것이다. 더욱이 2008년 3월의 인수합병 계약에 따르면, 은행 부실로 감독당국의 증자 요구를 받는 경우 기존 대주주(바이세토프)만 증자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감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은행만 단독으로 증자에 참여’했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하다가 추가 손실을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해외 은행의 최다 출자자가 되면 관련 규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은행은 2008년 3월 30%를 취득한 이후 10%만 더 획득하고, 나머지 10%는 IFC가 매입하도록 했다. 2013년 이후 IFC로부터 BCC 지분 10%를 되사는 조건이었다. 문제는 IFC가 자신이 매입한 가격(주당 610텡게·약 4730원)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다.

ⓒ뉴시스 금감원은 올해 8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국민은행 임원 88명을 징계했지만, 형사고발은 안 했다.
MB 정부 ‘자원 외교’의 대가인가

이처럼 국민은행은 BCC를 비싸게 인수한 뒤 향후 발생할 부실마저 모두 책임지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갔다. 이를 위해 이사회도 속였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정반대 상황을 겪은 바 있다. 1999년 말 제일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투자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은 정부(예금보험공사)로부터 충당금 지원은 물론 인수 이후 부실이 드러나는 경우 전액 보상받는 풋백옵션까지 보장받았다. 정부는 2001년까지 모두 5조1000억원을 제일은행에 추가 투입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국민은행 경영진이 이런 무리한 인수합병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또한 이사회에 거짓 보고해 수천억원 규모의 손실을 내게 했다는 조사 결과에 비하면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징계 수준도 결코 높은 수위가 아니다. 배임 혐의 등으로 형사 고발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성남 의원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카자흐스탄에 대한 자원 외교의 반대급부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BCC를 지원한 것이 아니냐”라며 의혹을 제기한다. 이명박 정부가 공들여 추진 중인 자원 외교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민간 금융기관’에 모종의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의혹은 의혹일 뿐, 금감원 조사는 ‘이상한 인수합병’의 의도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