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몇개 들고가면 아이스크림 받아오던 시절 있었는데..

2012. 12. 10.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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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순환협회, 대형마트 12곳에 회수센터 설치

[동아일보]

한 대형마트에 설치된 빈병보증금환불센터에서 한 고객이 소주병을 직원에게 반환하고 있다. 빈병 재사용을 활성화하려면 보증금 대상 품목을 늘리고 액수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단법인 한국용기순환협회 제공

유럽의 선진국 가정도 한국처럼 매주 한 번씩 집 근처 마트를 찾아 장 보는 것이 일상적이다. 부부가 자녀의 손을 잡고 마트에 가는 모습까지는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 마트에 가는 가족의 손에는 대부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가 들려 있다. 박스 안에는 다양한 유리병이 들어 있다. 모두 빈병이다.

이들이 마트에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빈병 회수기계(RVM·Reverse Vending Machine) 앞이다. 대부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찾기 쉽다. 빈병을 투입구에 넣으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영수증이 발급된다. 독일에선 빈병 종류에 따라 개당 최고 465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핀란드는 최고 744원, 노르웨이는 최고 450원이다. 3, 4개 정도만 반환해도 간단한 식료품이나 아이들 과자를 살 수 있다.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대부분 분리배출은 잘 알지만 빈병 반환은 자세히 모른다. 그만큼 빈병 반환 절차가 복잡한 데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판매자·소비자 한목소리로 '불편'

국내 빈병보증금제도(정식 명칭은 '빈용기보증금제도')는 1985년 식품위생법에 음료수병에 대한 관련 근거가 마련되면서 도입됐다. 이어 국세청 고시로 소주병 및 맥주병 보증금 규정이 생겼다. 이후 2002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관련 규정이 신설되면서 경제성보다는 재사용을 통한 환경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업무도 환경부로 일원화됐다.

2008년에는 3R 원칙에 입각한 자원순환정책이 관련법에 규정됐다. 3R는 Reduce(발생 억제), Reuse(재사용), Recycling(재활용)을 일컫는 표현. 자원순환의 효율성 크기를 비교하면 'Reduce > Reuse > Recycling'의 순서다. 이 중에서 재사용은 현실적으로 가장 환경적이고 경제성이 높은 자원순환 정책이다.

그러나 재사용 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11년 기준 국내 빈병 회수율은 98.5%. 하지만 분리배출을 통해 회수된 것이 많다 보니 실제 재사용률은 80%에 그친다. 20% 가까운 빈병이 분리배출 과정에서 깨지거나 내부가 심하게 오염돼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분리배출 대신 빈병 반환 절차를 통해 회수하면 파손 우려가 거의 없어 재사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보증금제도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 빈병 반환 보증금은 적게는 20원에서 많게는 300원.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소주병 및 맥주병은 각각 40원과 50원에 불과하다. 힘들게 빈병을 모아 근처 소매점에 가져가도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다. 대부분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회수를 거부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48)는 "이 작은 편의점에서 빈병까지 받으면 매장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며 "몇십 원 때문에 빈병 가져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현실적으로 소매점에서 회수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 '쉽고 즐거운' 반환제도 필요

국내 빈병보증금제도는 1985년 도입 이후 여러 차례 개선됐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는다. 우선 대상 품목이 지나치게 적다. 현재 국내에서는 술병이나 청량음료병만 반환이 가능하다. 다른 용도의 병이나 수입제품은 불가능하다. 주류의 경우 증류주 발효주 등 대부분 종류의 병이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생산자가 보증금 제도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거의 전 품목을 반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커피나 스포츠음료, 생수는 물론이고 수입제품이나 일회용 병도 반환하고 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

보증금 액수도 선진국에 비해 낮다. 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용량의 맥주병을 기준으로 독일의 보증금은 149원, 핀란드 186원, 노르웨이 180원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50원에 불과하다. 제도 도입 초기 수준(맥주병 40원)과 큰 차이가 없다. 인구 10만 명 안팎의 작은 나라인 미크로네시아(72원)나 키리바시(38원) 등도 한국과 비슷하거나 많다.

빈병 반환 활성화를 위해 사단법인 한국용기순환협회(회장 손봉수)는 올해 서울 경기 충남 제주 등지의 대형마트 12곳에 빈병보증금환불센터를 설치했다. 다른 마트에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장 보러 오가면서 쉽고 편리하게 빈병을 반환하고 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상 품목을 늘리고 액수를 높이는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반환하는 소비자와 회수하는 사업자 모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은 "과거 소주병 2개를 반환하면 아이스크림 1개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살 수 없다"며 "보증금과 소매점의 취급수수료를 올려줘야 빈병 반환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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