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에 폭언·욕설 '악마의 전화' 이제 안 봐줘

조선비즈

이동통신사 상담원 A씨는 최근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반말로 "야 이 XX년아, 손가락 잘라버린다"란 폭언을 들었다. 5분간 수십여 차례 "개XX" 등 욕설을 비롯해 부모, 자녀까지 들먹이는 인격모독이 이어졌다. 하지만 A씨는 항의는커녕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란 말밖에 하지 못했다.

한 기업콜센터 상담원 B씨는 최근 한 중년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남성은 술에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성희롱 내용이 담긴 저질 발언을 쏟아냈다. B씨는 "고객의 전화라 마음대로 끊지도 못하고 1분가량 꼼짝없이 들어야 했다"고 했다.

◇악성 고객에 기업들 대응 나서

ARS(자동응답전화) 콜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악성 고객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비스 기업의 특성상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 성희롱과 폭언·협박을 일삼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T의 고객상담과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전담하는 ktis 관계자는 "월평균 1700여건에 달하는 악성 전화 때문에 상담원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퇴근길에 죽여버리겠다'면서 실제로 흉기를 들고 찾아온 고객도 있다"고 했다.

'고객'이란 이름 뒤에 숨어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욕구를 분출하는 악성 고객이 끊이지 않자, 기업들도 하나 둘 대응에 나서고 있다. 4000여명의 상담원이 하루 25만여통의 상담전화를 처리하는 SK텔레콤은 이달부터 악성 고객에게 1차 경고 후, 고발하는 조치를 시작했다. 국내 이동통신사 중 처음이다. KT·LG유플러스는 자칫 고객들에게 밉보일까 단호히 나서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소수의 악성 고객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고객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면서 "다만 계도 성격이 강한 만큼 아직까지 실제 고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상담원의 사기를 살려주기 위해 훈훈한 상담 에피소드를 담은 책자도 이달 중 펴낼 예정이다.

ktis도 올해부터 114 악성 고객에게 3번 경고 후 고소·고발 조치하는 '삼진아웃제'를 시행하고 있다. 소송엽 ktis 정보안내센터장은 "제도 시행 이후, 악성 고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다른 콜센터에서도 제도에 대한 문의전화가 많이 온다"고 했다.

◇고객들은 ARS '뺑뺑이'에 불만

상담원들은 악성 고객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고객들은 긴 대기시간과 콜센터에서 전화를 여기저기로 떠넘기는 이른바 '뺑뺑이'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책임이 없다"거나 "다른 곳에 확인해 보라"며 전화를 여기저기로 돌리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상담원과의 통화를 위해 수분씩 기다리게 하다, 갑자기 '상담이 지연된다'며 뚝 끊어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기업들마다 ARS 메뉴가 제각각인 데다 콜센터에 대한 민원이 잦아지자, 정부는 'ARS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2년 전부터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ARS 각 단계마다 상담원 연결 메뉴 개설 ▲광고성 정보 제공 최소화 ▲ARS 전화요금 사전고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조사 결과, 특히 버스터미널·항공사·택배사·대형병원 등의 ARS 고객 만족도가 70점 안팎으로 평균점(80.8점)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창적 서강대 교수(경영학과)는 "기업들은 콜센터가 단순히 비용을 들여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부서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고객 상담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신제품·서비스 설계, 경영 개선을 도모하는 등 콜센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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