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자영업자 부채 무섭게 늘고 있다

차형석 기자 2012. 1. 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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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안 아무개씨는 이따금 국민은행 부동산 시세를 들여다본다. 그가 사는 112㎡(34평) 아파트 가격이 4억원가량 된다. "그러면 뭐 하나? 거래가 안 되는데…." 안씨는 2004년에 3억1000만원에 집을 샀다. 대출받은 돈은 1억8000만원. 집을 사고서 근 2년 동안 집값이 올라갔다. 5억원 가까이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집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집 사고 3년이 지나면 양도세가 면제되니까, 그 후 팔려고 했다." 막상 3년이 지나고 나자, 부동산 거래가 뚝 끊겼다. '급매'로 수천만원을 내려서야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어찌될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예 잊고 산다"라고 말했다. 변동금리로 20년 원금이자 분할 상환해 한 달에 120만~130만원씩 은행에 갚아 나가면서. 맞벌이를 해서 조금 여유가 있다지만, 은행 대출금은 그에게 짐처럼 남아 있다.

ⓒ시사IN 윤무영 빚을 갚기 힘든 저소득층은 점점 비은행 금융기관에 의지하고 있다.

안씨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에 속한다. 하우스 푸어는 주택을 보유했고, 거주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으며,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껴 실제로 가계지출을 줄이는 가구를 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하우스 푸어를 '보유 주택이 1채이고,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10% 이상인 가구'로 정의했는데, 안씨와 같은 하우스 푸어가 108만여 가구, 374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5월, 현대경제연구원은 '하우스 푸어 중 35만 가구가 2010년에 부채가 증가했고,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구도 22만 가구에 이른다'고 내다보았다.

이처럼 하우스 푸어 같은 서민의 가계부채 문제가 2012년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어가고 있다. 가계부채는 2011년 6월 말 한국은행 가계신용 기준으로 876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최근 2~3년간 증가세를 보여 지금 추세대로라면 2013년 992조원에 이르러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처하게 된다(2006년 599조원→2007년 657조원→2008년 717조원→2009년 779조원→2010년 846조원).

상환 능력은 계속 떨어져

많은 경제 전문가가 2012년 한국 경제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가계부채를 꼽는다. 가계부채 총액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가계부채 문제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 흔히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든다. 2010년 한국은 이 비율이 155.5%에 이르렀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영국(183.6%)과 미국(137.8%)의 중간 수준이다. 또 1990년대 초반 가계부채 부실로 금융위기를 겪었던 스웨덴의 수치(134%)보다 높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정책 지표로 삼아 이 비율을 서서히 낮추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빚이 늘어나는데 가계의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경기 확장기에는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수축기에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경기 확장기가 아님에도 가계부채가 높은 증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0%였다. 가계부채의 질과 구조도 더 나빠지고 있다. 저소득층 대출이 늘어나고, 대출 구성도 주택 구입과 같은 고정비 성격의 대출보다 생계비 등 경상지출을 위한 대출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2009년 상반기만 해도 주택 구입 이외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한다는 이가 42.1%였는데, 2011년 상반기에는 48.4%로 증가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늘어난 가계대출 총액 중 소득수준별 구간이 차지한 비중을 보면, 연 소득 3000만원 미만 계층의 비중이 37%로 가장 높았고, 연 소득 6000만원 이상의 비중은 3%에 그쳤다. 저소득층 대출이 늘어난 이유는 경기 둔화로 소득이 줄어든 데다 전세 등 임대료를 비롯한 각종 가계지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신용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영업자 부채 비중이 전체의 절반(49%)을 차지하는 것도 위험 요소 중 하나다.

원금 상환 능력이 부족해 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새로운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대출 만기나 거치기간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옮아가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가계대출에서 비은행 예금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02년만 해도 11.7%였는데, 2011년 2분기에는 21%로 증가했다. 당시 전체 가계대출 826조원 가운데 173조원에 달한다. 은행권보다는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신협 같은 제2금융권이 가계대출의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012년을 가계부채 문제의 원년이라고 꼽는 또 다른 이유는 부채 만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의 26.6%가 부채상환능력 취약대출(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납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중 대출 규모가 소득 및 담보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서 상환에 어려움이 큰 대출)로 파악되고 있는데, 2012년에 취약 대출 21%가량의 만기가 돌아온다. 은행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거치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치기간 종료 이후 10개월 동안에 전체 연체의 절반가량인 45.6%가 발생한다. 결국 만기 도래가 많은 2012년이 국내 가계부채 문제의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면 가계부채 문제가 시한폭탄 수준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0.87%여서 미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안정돼 있고, 주택담보대출의 LTV, 즉 '주택담보인정가격 대비 대출액 비율'이 47%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게 그 근거이다. 가계부채의 총액이 많긴 하지만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가계부채가 한국의 서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가계대출의 질 악화가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 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와 일자리 부족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기 어려운 현재 실물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대출 구조 악화에 따른 원리금 부담 증가가 소비 위축과 경기 회복세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2012년은 가계로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한 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가계 쪽을 주목해야 한다. 돈을 빌려준 은행에 대한 구제책만 말할 것이 아니다. 은행 구제를 한다면 취약 계층에 대한 구제책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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