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나를 그의 길로 이끌었다"

이숙이 기자 2011. 6. 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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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팬덤'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6월15일 펴낸 < 문재인의 운명 > (가교출판)은 출간 사흘 만에 3쇄 제작에 들어갔다.

문 이사장이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3위권에 진입했다는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동안 문 이사장을 '비정치인'으로만 분류하던 여론의 시선이 서서히 바뀌는 양상이다.

정치권도 긴장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 사이에서는 요즘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라는, < 문재인의 운명 > 맨 마지막 문장에 대한 '의미 찾기'가 한창이다. 그 뜻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문 이사장의 향후 행보가 가늠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문재인 이사장이 드디어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라고 과감하게 단정한다. '정치'의 '정'자만 나와도 진저리를 치던 그가 이 정도로 자기 속살을 드러냈다는 건 이미 작심을 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참여정부 비사뿐 아니라 '문재인 개인사'도 상당 부분 들어 있다. 문 이사장의 부모님 고향이 함경남도 함흥이고, 1950년 12월 '함흥 철수' 때 거제로 내려와 문 이사장을 낳았으며, 대학 때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가 감옥에 갔고, 그 때문에 강제 징집되어 특전사에서 근무했고, 사법연수원 차석까지 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안 되었으며, 그로 인해 변호사 노무현을 만났다 따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문재인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사람사는-세상 제공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 문재인의 운명 > 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헌정하고 있다.

'대권 간다' '아니다' 설왕설래

게다가 참여정부 내내(잠깐 물러나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고)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비서실장 등 중책을 수행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각 분야 핵심 정책과 국가 운용에 대한 자기 의견도 꼼꼼하게 정리해놓고 있어서, 읽다보면 마치 잘 다듬어진 '출사표'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대권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정도지, 문 이사장이 직접 주자로 뛰어들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주변에서 문 이사장에게 '정치 안 한다고 너무 딱 잘라 말하면 야권이나 친노 진영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뜻을 전했다. 이를 의식해 문 이사장이 여지를 열어두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의 '거의 비슷한' 인터뷰를 놓고 언론 매체마다 '여지를 열어놓았다'와 '역할에 한계를 두었다'고 정반대 해석을 하는 것도 각자 설정한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자론'을 펴는 쪽이든, '메이커론'을 펴는 쪽이든 동의하는 대목이 있다. 첫째, 문재인의 '상품성'이 좋다는 점, 둘째, 야권에 아직 압도적인 주자가 없다는 점, 셋째, 최소한 검찰 개혁과 야권 통합에 대해서만은 문 이사장이 계속해서 발언하리라는 점이다. 문재인 이사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문 이사장이 '역할론'을 고민하게 된 건 (2010년 8월에 나온)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차명 계좌' 발언이 계기가 됐다. 반드시 집권을 해서 검찰·경찰을 바로세워야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안 나온다는 생각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거듭 설전을 벌이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따라서 '상품성 있는' 문 이사장이, 검찰 개혁과 야권 통합을 외치다가 야권의 유력 주자로 급부상하는 그림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 문재인의 운명 > 에 나온 몇 대목을 소개한다.

노무현과의 첫 만남

:1982년 8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면서 판사를 지망했다. 성적이 차석이어서 법무부장관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판에 판사 임용이 안 된다고 했다. 유신 반대 전력이 결격 사유가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김앤장을 비롯해 괜찮은 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국제변호사나 기업 전문 변호사는 뭔가 내키지 않았다. 보통 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게 노무현 변호사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사람은 내 사법고시 동기이자 후임 민정수석을 한 박정규였다.

인권변호사의 길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건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열심히 변론했다. 차츰 우리(문재인·노무현)는 부산 지역 노동인권 변론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됐다. 노 변호사는 당신의 삶 자체를 민중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싼 음식과 비싼 술을 피했고, 좋아하던 요트 스포츠도 그만뒀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골프를 시작하지 못했다.

동지

:나 혼자 참여한 분야가 딱 한 군데 있었다. 천주교 쪽 운동단체였다. 신자가 된 지는 오래됐지만 성당에 잘 나가지도 않는 터에 천주교 단체 직책을 맡으려니 민망했다. 하지만 변호사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해 고사할 수도 없었다. 그런 인연으로 청와대에 있을 때 천주교와의 창구 역할을 했다.

6월항쟁

:6월항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나는 그 운동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부산에서 제일 먼저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을 결성했고,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돼 타 지역 시위가 급격히 위축됐을 때 부산에서 더 많은 시민이 나와 항쟁의 불꽃을 되살렸다.

공수부대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관등 성명부터 외게 했는데 '여단장 준장 전두환' '대대장 중령 장세동'이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정학을 당하기도 하고 대학 때는 급기야 제적되고 구속됐다. 그런데 군대에 가보니 군대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당히 잘해내는 편이었다. 사격, 수류탄 던지기, 전투수영 등 생전 처음 하는 일을 내가 잘하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아내가 면회를 왔다. 그 시절 군대 면회는 무조건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먹을 건 하나도 없이 안개꽃만 한 아름 들고 왔다. 아무리 오빠가 없어도 그렇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였다. 동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참여정부 조각 뒷얘기

:이용섭 전 관세청장을 초대 국세청장에 발탁한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그는 우리와 전혀 인연이 없었고, 나하고도 모르는 사이였다. 개인 업무평가와 부처 혁신평가가 대단히 좋았다. 반대로 추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에 당시 MBC 앵커로 활약 중이던 박영선 기자를 추천했다. 그러나 다른 여성이 발탁됐다. 그런데 그는 노 대통령을 너무 몰랐다.

탄핵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인용' 의견을 가진 헌법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헌법재판관을 선출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꼭 대한민국 최고의 재판관인 것만도 아니다. 9명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인은 대통령이 임명하니 적어도 6명은 정치적으로 임명된다. 헌법재판관 임명제도는 정말 위험하다.

퇴임

:부산보다는 부산 근처 시골 마을로 가고 싶었다. 워낙 지치기도 했고 마음도 많이 상했다. 경제적 사정도 있었다. 원래 저축해놓은 게 많지도 않았지만 청와대에 있는 동안 다 까먹었다. 변호사도 당분간 그만두고 싶었지만 생활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고른 곳이 지금 사는 양산 매곡이다. 헌 집을 하나 샀다. 그림과 조각을 하는 분이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라 주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마당이 널찍해서 좋고, 주위 환경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운명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적당히 도우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이숙이 기자 /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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