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도 '엉터리 번역' 수두룩

2011. 3. 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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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재심→검토절차, 오인→실수, 의약품→제품

한글-영문본 동등효력…통상분쟁 부를수도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문본에도 한-유럽연합(EU) 협정문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번역 오류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태로 협정문이 발효될 경우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크고, 특히 대외 조약에 대한 비준을 국회가 동의하면 협정문은 국내 법률로서 효력을 지니는 만큼 관련된 국내 다른 법령과의 충돌이 우려된다.

한-유럽연합 협정문의 번역 오류를 최초로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는 3일 "한-미 협정문 국문본에 정부는 동일한 영어 단어인 'independent review'를 어느 곳에서는 '독립적인 검토 절차'로, 어느 곳에서는 '독립된 재심'으로 번역했다"며 "국내 법률 해석 관행으로는 정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행정심판 성격의 재심과, 권한이 모호한 검토는 전혀 다르게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또 협정문의 제18.8조 특허분야에서 영어 'inequitable conduct'를 '불공정 행위'로 번역한 것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희섭 변리사는 "이는 미국 특허법에서 사용하는 특수 개념으로, 특허 출원인이 기존 기술이나 최선의 발명 형태를 숨기는 행위를 뜻하며 공정거래법과 전혀 상관없는 법률용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조항(제18.9조 제5항)에선 '의약품'을 '제품'으로 번역하는 오류도 발견됐다.

명백한 오타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부속서Ⅲ 금융서비스에 대한 대한민국 유보목록에는 '제13.2조(자율규제기구)'라고 돼 있는데 이는 '제13.2조(내국민 대우)'의 잘못된 표기이다. 자율규제기구는 13.12조이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종훈 명지대 교수(법학)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한글본과 영문본이 동등하기에 협정문의 번역 내용이 다르면 그 자체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정부가 부정확한 번역으로 한글본 협정문의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는 비전문가가 번역한 문항이 눈에 띈다. 특히 우리나라 지적재산권법은 대외 조약이 국내법보다 우선한다는 예외를 두고 있어, 법적 개념과 의미가 명확하지 않으면 법 적용 당사자들에게 큰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8.2조 지리적 표시를 포함한 상표 분야 제8항에 나오는 '실수를 야기하거나'라는 표현이다. 남 변리사는 "'cause mistake'의 'mistake'를 실수라고 직역했는데 이는 '오인'이라고 해야 맞다"고 말했다. 예컨대 인삼이 들어 있지 않은 음료수에 '인삼주스'라는 상표를 사용할 경우 소비자한테 인삼으로 만든 주스로 '오인'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를 소비자의 '실수'를 야기하는 것으로 해석해 버리면 법 적용 범위가 전혀 달라진다는 게 남 변리사의 설명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협정문은 (당사국 간에) 충돌이 없게 하려고 우리말에 의미상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가급적 원문(영어본)에 충실하게 직역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변호사는 "협정이 발효되면 국내법으로 효력을 갖는 것은 한글본 협정문"이라며 "번역 오류투성이이고 국민이 해석할 수도 없으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국회 외통위에서 강행처리한 기존 비준동의안을 정부는 철회하고 재협상 내용과 번역 오류를 바로잡은 새 비준안을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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