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물가론', 이제 안 통해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2011. 3. 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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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연남동에 사는 주부 하임순씨는 동창 모임을 가졌다. 매번 만나던 단골 순댓국집에서였다. 순댓국이 나오자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째 순댓국에 건져먹을 건더기가 이렇게 없냐?" 평소 안면이 있는 주인은 "그 정도 들어가 있는 게 다행인 줄 알고 드시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구제역 여파로 돼지고기 등 음식 재료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물가 대란 시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웃지 못할 풍경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연말부터 치솟은 물가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가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여러 기관에서 발표한 수치를 보면 물가 상승세는 확연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했다. 특히 신선식품지수의 상승폭이 컸다.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0.2% 상승했고,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17.5% 올랐다. 품목별로 보면 상승세에 '악'소리가 난다. 배추는 1년 전에 비해 151.7%나 올랐다. 파(108.2%), 마늘(82.3%), 배(44.4%), 콩(58.0%), 무(84.95%) 등 과일과 채소의 변동 폭이 컸다(오른쪽 도표 참조). '장 보러 가기 무섭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뉴시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름값 농축산물값 등이 크게 올랐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11년 1월 생필품 가격동향도 마찬가지다. 생필품 가격을 80개 품목별로 분석한 결과, 1월에 가격이 인상된 품목이 53개로 66.3%를 차지했다. 가격이 인상된 품목 수 비중은 지난해 10월 60.0%에서 11월 38.8%로 감소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12월 다시 46.3%로 상승하더니 올 1월 급기야 66.3%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현재 물가가 상승하는 요인으로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외부 변수를 들 수 있다. 2010년 하반기부터 국제적으로 농산물과 금속·에너지 등 원자재 전반에 걸쳐 가파른 가격 상승세가 나타났다. 특히 4분기에 들어서는 3분기에 비해 에너지·금속·농산물 가격이 각각 11.9%, 9.9%, 15.8% 상승했다( < 표2 > 참조). 이에 따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수출 촉진을 위한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원자재의 국제가격 상승이 더 증폭되어 나타난다. 당장 1월 수입 물가지수(한국은행 발표)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1% 오른 것으로 집계되었다. 수입 물가는 2개월째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며 2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 표1 > 참조). 이렇게 수입 물가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생산자 물가와 소비자 물가도 덩달아 상승하게 된다.

ⓒ시사IN 조남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름값 농축산물값 등이 크게 올랐다.

'미꾸라지 물가론'도 안 통해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린 '주범'은 날씨였다. 2010년은 세계적으로 자연재해, 기상이변이 빈번했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 칠레에서 강진이 발생했고, 세계 원료탄 공급의 60%를 차지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지난해 11월 5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석탄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자국 경기를 살리기 위해 풀고 있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돈이 소비와 투자 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대신 원자재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을 부채질했다. 기상이변이 곡물 시장에 미친 영향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46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의 물가 상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외부 변수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발 인플레이션, 이른바 '차이나플레이션'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바로 '미꾸라지 물가론'이었다. 아무리 추어탕을 많이 먹어도 중국산 저가 미꾸라지가 대량으로 수입되는 한 추어탕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산 저가 소비재가 대량 수입되면서 물가가 안정되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중국의 1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2010년 같은 기간에 비해 4.9% 올랐다. 중국 중앙은행이 지난해 10월과 12월, 올해 2월에 기준금리를 각각 0.25% 포인트 인상해야 할 정도로 물가 압박이 컸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 제품을 많이 수입하는 한국에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산 수입은 국내 수입액의 17% 정도를 차지한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제품 가운데 소비재 비중은 34.3%에 달해 소비자 물가 상승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연초부터 물가가 치솟자 정부가 다급해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13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서민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매주 물가안정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탈지분유· 삼겹살 등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또한 물가 대책과는 거리가 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서 가격 담합 조사에 나서고 물가 안정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문제는 물가 안정을 달성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고 내수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면서 대기업은 수출에서 이득을 얻지만 중소기업과 서민은 고물가에 시달린다는 비판이다. 물가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고집하면서 제때 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뾰족한 수 못 찾는 물가 정책

하지만 이런 정책을 바꾼다고 해도 별 효과가 없거나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 또한 제기되고 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 연구위원에 따르면, 고물가는 공급 쪽의 비용 상승이 원인인 '비용상승형 고물가'와 수요 증가가 원인인 '수요증가형 고물가'로 나눌 수 있다. 전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은 수요증가형 고물가일 때 잘 듣는 방법일 뿐 비용상승형 고물가일 때는 별 소용이 없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저환율 정책(원화가치 절상)을 쓰면, 수입 물가가 떨어지면서 국내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물가 인하로 국내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저환율 정책은 보유 외환을 팔아 원화를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 인상 또한 경기 회복세를 꺾고 가계 부채의 부실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성장보다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하지만 그 정책 효과 역시 한계가 많다는 것이다.

당분간 물가 상승세는 지속되리라 보인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에 낸 보고서에서 "현재 원자재 가격의 빠른 상승 추세는 계절적·일시적 측면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겨울철이 지나면서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연구위원은 원자재 가격 추세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높아진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았다.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연간 소비자 물가 전망치를 3% 안팎으로 보았는데, 이를 3% 중반 이상으로 높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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