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고객 리볼빙', 카드사에 낚이면 당합니다

입력 2011. 1. 5. 10:19 수정 2011. 1. 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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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종호 기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안녕하세요, 고객님. ○○카드사의 ○○○입니다. 고객님 카드 이용하시다 보면 가끔 결제일을 깜빡 잊거나 통장에 돈이 없어서 결제를 제날짜에 못 하실 때가 있잖아요. 결제금이 제날짜에 들어오지 않으면 연체됩니다. 고객님 신용등급도 떨어지고 높은 연체이자도 물고 신용카드도 정지되는데요. 그래서 저희가 우량고객님들만 특별히 결제금의 일부만 결제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있습니다. 평소처럼 결제하시다가 혹시 통장에 미처 결제금을 넣어두지 못했을 때는 최소금액만 결제해도 연체가 되지 않도록 해 드리고 있습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카드사로부터 이런 전화를 한두 번쯤은 받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카드사는 마치 내 주머니 상황이나 결제일을 깜빡할 것을 우려해서 나를 위해 해주는 서비스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런 서비스는 나처럼 신용등급이 좋은 우량 고객만 해주는 서비스라는 것도 잊지 않고 이야기해준다.

우량고객만을 위한 서비스이고 연체 걱정 없이 쓸 수 있다는 말에 26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들의 이용금액은 5조2000억 원(2010년 6월말 기준)에 달한다. 카드사는 우량고객을 위한 혜택이라는 이 서비스만 가지고 2009년 한 해 1조2483억3400만 원이라는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였다. 이는 2009년 현금서비스 수익인 2조2772억6800만 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작년에는 상반기에만 6134억7400만 원의 수익을 올려 지난해 역시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말한 서비스의 이름은 '리볼빙(revolving)'이다. 리볼빙을 이용하면 신용카드 결제금을 전부 상환하지 않고 일부만 상환해도 된다. 나머지 결제금액은 자동으로 대출형태로 전환되어 상환이 연장되고 장기간에 걸쳐 자율적으로 나눠 갚을 수 있도록 해준다. 부담스러운 카드 결제금을 나눠서 상환해도 되니 카드 이용자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카드사는 이런 서비스를 선의로 아무 대가 없이 해주지 않는다.

리볼링 서비스를 통한 카드사의 수익이 매년 조 단위를 넘어가게 되는 것은 리볼빙 이용의 대가로 현금서비스 수준의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자율이 높은데다 매달 사용하는 결제금까지 원금에 추가되다 보니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원금을 갚아도 원금이 잘 줄어들지 않게 된다.

문제는 리볼빙에 대해서 무슨 혜택처럼 안내를 하다 보니 상당수의 사람이 높은 수수료율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신용카드 청구서에 표시해놓았다고 하지만 청구서 맨 앞장도 아닌 거의 맨 뒷장에 작게 표기된 문구까지 꼼꼼히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용카드 청구서를 확인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상당수의 사람은 서비스를 신청하고 한참 지난 후에야 결제금액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량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해서 가입했는데 현금서비스 수준의 높은 이자를 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리볼빙은 사실상의 대출상품이다. 그렇다면 최초 가입 시에 이용할 때의 금리나 수수료 조건에 대해서 명확히 고지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출상품을 판매하면서 사전에 금리를 명확하게 고지하지 않는 것은 물건을 팔면서 물건 가격은 나중에 청구서 보내면 그때 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연체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하지만 리볼빙 역시 신용등급과 무관하지 않다. 리볼빙을 사용할 경우 현금서비스를 사용한 것과 동일하게 인식되어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친다. 마음놓고 리볼빙 서비스를 쓰라는 말에 정말 마음 놓고 쓰다가는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고객을 게으르게 만들어 돈 버는 카드사

평소라면 높은 이자가 아까워서 현금서비스나 할부구매를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도 리볼빙은 혜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용하게 된다. 결제일을 꼬박꼬박 챙기던 사람들도 리볼빙 서비스로 인해 결제일을 지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리볼링을 이용하지 않을 때는 결제금이 부족하거나 카드결제일을 깜빡했을 때 카드사에서 전화와 문자로 안내를 해줘 바로 결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볼빙을 신청하게 되면 카드 결제대금에서 10원이라도 부족할 경우 리볼빙 최소결제금액인 카드결제금의 10% 정도만 빼가고 나머지 90%는 다음 달로 이월시켜 버린다. 카드결제금이 부족하다는 전화나 문자는 없다. 다만, 다음달 청구서에 고금리의 이자를 청구할 뿐이다.

고객이 높은 이자를 부담하는 서비스임에도 카드사 입장에서는 기존 회원들을 대상으로 혜택을 더 준다는 전화 한 통이면 손쉽게 이용자 수를 늘릴 수 있다. 고금리 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카드사 수익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익성이 높다 보니 카드사는 리볼빙 서비스 모집을 위한 전문 텔레마케터를 별도로 고용하기도 한다.

카드사들이 리볼빙에 적극적인 것은 높은 수익성 때문만은 아니다. 리볼빙은 연체가 아니므로 카드 회원의 연체율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볼빙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전 업계 카드사들의 연체율은 2005년 말 10.06%에서 2010년 9월 말 1.86%로 급격히 줄어 카드 사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체율이 줄어서 카드사의 건전성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리볼빙으로 이월된 결제금은 사실상 대출형태이기 때문에 매월 꼬박꼬박 결제금을 결제하는 사람들에 비해 부실화될 위험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리볼빙은 현금서비스와 달리 회수 불능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쌓을 필요도 없다.

카드사의 주목적은 고객의 편리가 아니라 수익추구다. 카드사는 이자 수익, 수수료 수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객들이 바로바로 결제해주기보다 가급적 결제일을 잊고 고객이 돈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길 원한다. 리볼빙 서비스에 높은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서비스의 명칭도 페이플랜이나 자유결제 등으로 교묘하게 바꿔 마치 새로운 서비스인 듯 홍보한다.

카드사는 고객들이 리볼빙을 시작하면 중도상환을 잘 신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번 가입만 시켜놓으면 연체 안내를 할 필요도, 출금시도를 여러 번 하지 않아도 된다. 결제액이 지속적으로 이월되기 때문에 꾸준히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금융비용을 자꾸 내게 되는 것이다.

카드사는 고객들에게 늘 혜택만 강조할 뿐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부분은 지나친다. 신규발급 때부터 각종 할인혜택을 강조하지만 사용실적 조건이나 할인 한도 등은 그냥 흘려버린다. 카드론에 대해서도 저금리라고만 하지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이나 신용등급 하락 위험 등은 고지하지 않는다. 이런 카드사의 영업행태는 리볼빙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카드사들의 이런 마케팅은 결국 고객의 결제부담을 늘려 가정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킨다. 이는 결국 카드사의 재무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혜택만 강조하는 무분별한 카드사 마케팅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상담원을 믿고 가입하는 고객들을 나무랄 순 없다. 금융당국의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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