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 통닭 사러 7시간 대기? 제대로 낚였네

2010. 12. 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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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5천 원 치킨' 판매가 시작된 9일 오전 11시 롯데마트 영등포점에 예약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 5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김시연

"지금 예약하면 오후 6시에 찾아가실 수 있어요."

동네 치킨집들이 아직 아침잠에 빠진 시간, 롯데마트 치킨 코너엔 불이 났다. '5천 원 치킨' 판매 첫날인 9일 오전 11시쯤 롯데마트 영등포점엔 예약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 5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예약자만 200명을 넘어 7~8시간 기다려야 치킨을 찾아갈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안 일부 고객이 "낚였다"며 자리를 뜨긴 했지만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대기업이 싸게 판다는데"... 7~8시간 대기 감수

개점 시간부터 기다린 덕에 1시간 만에 통닭을 받아든 6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맛이나 양은 봐야 알겠지만 싸다니까 왔다"면서 "동네 치킨은 1만 5000원이나 하는데 많이 싼 거 아니냐"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왔다는 50대 여성 전아무개씨 역시 "어제 뉴스에서 싸고 맛있다고 해서 왔다"면서 "이렇게 기다릴 줄은 몰랐는데, 오후에 치킨을 찾으러 다시 들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마트 피자도 먹어봤다는 전씨는 "유명 브랜드 피자만은 못해도 동네 피자보다는 맛이 있었다"면서 "대기업이 동네 상인들 일에 끼어들어 쩨쩨한 느낌은 들지만 치킨도 대기업에서 만드는 거니까 값이 싸더라도 어느 정도 품질은 보장하지 않겠나"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롯데마트 점장 김영구씨는 "치킨을 찾기엔 이른 시간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몰릴 줄은 몰랐다"면서 "닭 한 마리 튀기는데 15분씩 걸려 점포당 하루에 300마리 밖에 팔 수 없어 예약 판매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이날부터 전국 87개 매장에서 '통큰 치킨' 판매를 시작했다. 보통 1kg 닭을 쓰는 프랜차이즈 치킨만은 못하지만, 900g 국내산 냉장닭을 사용하면서도 가격은 1/3 수준에 불과해 화제가 됐다. 반면 통닭 체인점을 운영하는 중소 자영업자들은 대형슈퍼마켓(SSM), 이마트 피자에 이어 또다시 대기업이 동네 상권 죽이기에 나섰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9일 아침 롯데마트 개점 시간부터 1시간여 기다린 한 고객이 예약한 치킨을 받아가고 있다.

ⓒ 김시연

동네 치킨집 "대기업 싸움에 영세업자들만 손해"

롯데마트에선 오히려 '상생'을 내세운다. 김영구 점장은 "주변 치킨집들이 고생하겠지만 하루 판매량을 300마리로 한정하고 배달도 하지 않는 건 나름 상생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매장당 3대뿐인 튀김기도 늘려 물량 공세를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미끼상품'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마트 피자와 달리 마진이 거의 없어 기존 고객들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이라면서 "새로운 고객을 끌어오기 보단 기존 고객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장 주변 치킨집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대형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자리잡은 롯데마트 영등포점 주변 아파트 상가엔 BBQ치킨, 교촌치킨, 치킨매니아 등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들이 터줏대감처럼 버텨왔다.

영등포점 바로 길 건너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병희씨는 "300마리 한정 판매한다고 해도 우리 상권 안에선 피해가 불가피하다"면서 "우리는 그나마 브랜드 인지도가 있어 피해가 덜하겠지만 6000~7000원 저가로 승부했던 영세 점포들은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배달은 안 한다고 해도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여서 하루 판매 물량 80%를 차지하는 배달 쪽도 안심할 수 없다"면서 "대형마트가 외국처럼 변두리에 있지 않고 도심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롯데마트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치킨을 싸게 파는 건 결국 이마트 피자 때문에 빼앗긴 고객을 되찾아 오겠다는 것"이라면서 "대기업 싸움에 영세업자만 손해"라고 한탄했다.

중소 자영업자가 폭리?... 소비자 '소탐대실' 우려

롯데마트 영등포점 주변 한 동네 치킨집. 치킨 2마리에 1만9900원에 팔고 있다.

ⓒ 김시연

이날 오후 2시 롯데마트 영등포점 앞에선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소속 치킨 가맹점주 50여 명이 모여 롯데마트 치킨 판매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조종민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수석부회장은 "이마트 피자 때문에 주변 피자 가게 매출이 30~40% 줄었는데 치킨집은 피자보다 상권 밀집도가 높아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협회에선 전체 치킨 시장이 어림잡아 5조 원 규모에 점포도 4만 5000~5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매출 감소보다 더 우려하는 건 대기업발 '가격 파괴'에 따른 소비자 신뢰 추락이다. 실제 롯데마트 치킨 등장 이후 소비자들 사이에선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1만 5000원 넘게 파는 건 지나치다는 여론도 끓어 올랐다.

조 부회장은 "소비자들이 보기엔 마치 소상공인들이 폭리를 취하는 걸로 볼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원재료와 부자재 외에 깍두기, 콜라도 제공하고 배달까지 하는 걸 감안하면 1만~1만5000원은 정당한 가격"이라면서 "4000원짜리 닭을 납품 받아 5000원에 파는 건 거의 밑지고 파는 것인데 아무리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이라고 해도 사회적 책임이 있는 대기업이 해선 안 될 부도덕한 행위"라고 따졌다.

SSM 규제 운동을 벌여온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역시 '소탐대실'을 우려했다. 안 팀장은 "대형마트 물건이 무조건 싸지 않다는 게 알려진 마당에 값싼 통닭을 미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면서 "5000원짜리 통닭이 나와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 소비자에게 당장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중소상인들이 무너져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 팀장은 "지금도 슈퍼마켓과 피자집뿐 아니라 꽃집, 서점까지 다 대형마트가 가져가 동네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을 빼고 나면 남아 있는 게 없을 정도"라면서 "치킨집만 아니라 주변 지역 상권이 붕괴돼 국민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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