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우린 못사는 사람들과 살기 싫어"

2010. 11. 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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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육상 기자]

올해는 부동산의 강남불패 신화를 탄생시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현대아파트가 처음 분양된 지 35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0년대에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탄생하면서 강남 특권층, 부동산투기, 8학군 및 위장전입 등 여러 사회문제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현대아파트 35년을 맞아서 압구정동으로 대변되는 강남개발의 역사, 이 지역의 부동산 실태, 현대아파트 재건축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기사는 김준희, 최육상 두 명이 공동 작성, 총 4편으로 구성했으며 각각 교육문화, 사회, 정치, 경제를 중심으로 접근했습니다.... 기자주

압구정초등학교에서 바라본 현대아파트 풍경. 정면에 보이는 '65동'은 현대 브랜드가 아님에도 외부에 별다른 브랜드 표시 없이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 '65동'은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장 큰 평수를 자랑하고 있다.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이처럼 묘한 풍경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 최육상

10조 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자리한 현대아파트 세대 수를 돈으로 환산해 본 액수다. 현재 단지 내에 5층부터 15층까지 군데군데 나뉘어 있는 현대아파트는 대략 5000세대에 달한다. 최소 30평대부터 최대 80평대까지 모두가 중대형인 5000세대를 매매가 평균 20억 원으로만 잡아도 무려 10조 원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부자들은 못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워진 지 어느덧 30여 년이 넘나드는 현대아파트 안에서는 주민들 사이에 재건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몇몇 공인중개사들의 말에 따르면, 몇 년 전에는 실제로 대형건설회사 직원들이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 상주하면서 재건축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50층에 이르는 초고층아파트를 짓겠다는 이야기는 주민들의 반대 때문인지 지금은 많이 수그러든 상태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늘어나는 용적률의 50%는 의무적으로 25평 이하의 소형 아파트로 채워야 한다. 나머지 50%는 최소 50평 이상의 대형 평수가 될 것이고.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내 한 부동산 중개업자 사무실에 구비된 '현대아파트 재건축 설계안'에 따르면 현대아파트는 향후 50층 아파트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최육상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난 A부동산 중개업자는 "현대아파트를 포함한 압구정지구의 재건축비용은 못 잡아도 40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이권이 너무 큰 데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현대아파트 재건축은 정말 힘든 사업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B부동산 중개업자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평수에 따라 위화감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그래서 부자들은 못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좋은 아파트가 있어도 그 안에 못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입주하려고 하지 않는 게 잘 사는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다. 이 중개업자는 "그렇게 되면 그 아파트는 집값이 당연히 떨어진다"며 말을 이었다.

"타워팰리스에서도 30평에 사는 사람들은 숨죽이며 지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요. 왜 잘사는 사람이랑 못사는 사람들을 함께 있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분명히 잘못된 정책입니다."

33년 동안 100배 정도 오른 압구정 현대아파트 매매가

'불황 속의 이변 맨션붐', '분양 계속 호기로 다투어 신축' 등의 내용을 전한 < 매일경제신문 > 1976년 5월 21일자)

ⓒ 매일경제신문

지난 1976년 첫 분양을 시작하며 압구정동에 자리를 잡은 현대아파트는 가장 오래된 것이 어느덧 3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맨 나중에 들어선 것이 1987년 14차였으니까 짧게도 23년을 넘겼다.

"현대그룹의 아파트전문업체인 한국도시개발(주)(대표 이춘림)은 지난해 10월말 착공한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40평형 1백 10가구에 대해 연고분양을 실시, 현재 75%의 분양실적을 보이고 있다. 6일 동사에 의하면 동 소재지 현대아파트의 3차분으로 오는 4월말 입주예정인 이 아파트는 현대그룹 직원들에 의해 지난 12월 12일부터 연고분양을 실시해 왔는데 분양 가격은 1·5층 1천 2백 60만원, 2·4층 1천 3백만원, 3층이 1천 3백 40만원으로 되어 있다."( < 매일경제 > 1977. 01. 06)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 가운데 지난 9월 연고 분양한 6차분(7백 28가구)은 명의변경이 가능한 것은 4백만원까지 프리미엄이 호가되나 매물이 업는 실정"( < 매일경제 > 1977. 12. 13)

1977년 3차분 5층짜리 아파트 33평형(109㎡)은 1·5층 1260만 원, 2·4층 1300만 원, 3층이 1340만 원이었다. 2010년 10월말 현재 같은 아파트의 매매가는 12억 원 내외이다. 33년 동안 100배 정도가 오른 것이다.

C부동산 중개업자는 "현대아파트는 최근 10년간 5배 정도가 오른 셈인데, 지난 2007년을 정점으로 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다"며 "최근 3개월간 거래를 성사시킨 적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거래 자체가 안 이뤄진다는 하소연이었다.

11월 초 찾은 현대아파트 단지 내 텅 비어 있는 놀이터 모습.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현재 재건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 최육상

현재 현대아파트를 비롯해 한양아파트, 미성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는 압구정동은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등 한강변 개발 계획에 따라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전략정비구역에서는 아파트와 상가 등의 외관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서울시는 전략정비구역의 25% 정도에 해당하는 땅을 '기부채납'(사업시행자가 공공 시설물 등을 기부할 경우, 국가나 지자체는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하도록 현대아파트 주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50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재건축을 하는 동안 갈 데도 없지만, 죽기 전에 뚝딱 세워지겠어?"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재건축이 빠른 시간에 이뤄지겠냐"며 이렇게 말했다.

"재건축을 하는 동안 갈 데도 없지만 50층이 죽기 전에 뚝딱 세워지겠어. 돈도 더 내야 되잖아. 그리고 아파트 말고도 한강변에 문화시설 등을 만들면 외지 사람들도 바글거릴 거 아니야. 오세훈 시장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이든 주민들은 대부분 재건축을 반대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힘들 거야."

D부동산 중개업자도 재건축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기부채납 25%도 문제지만,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현대아파트는 특히 상가가 많아서 주민뿐만 아니라 상가 주인 등과 사업 지분 조정하려면 무척 힘들 겁니다. 언젠가는 하긴 하겠지만, 주민들에게 10조 원 가량의 사업비를 기부하라는 이야기인데…. 현대, 삼성 등 이름 있는 건설업자들이 계속 군침을 흘리기는 하지만 요즘은 조금 뜸한 편이에요."

48평형 이하의 절반 정도, 젊은 부부가 전세로 살고 있어

현대아파트 단지 내 상가는 밤 10시가 못돼 대부분 문을 닫는다. 압구정동에서 보기 힘든 낯선 풍경이다.

ⓒ 최육상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현대아파트 안쪽으로 수백 미터 걸어 들어가다 보면 낡은 상가건물들이 나온다. 불황이라서 그런지 비어있는 상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분식집과 그 옆의 카페도 문을 닫았다. E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의하면 10평 남짓 되는 상점의 경우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25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경기가 좋을 때면 몰라도 지금처럼 어려울 때 김밥 팔아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터.

이 불황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E부동산 중개업자의 분석이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버린 것도 한 원인이에요.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하위에 있는 다른 업종들, 예를 들면 인테리어업체나 이사업체 등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부동산 매매가 이뤄져야 이사도 하고 인테리어도 손 볼 것 아니에요. 또한 지자체 입장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통해서 들어오는 세금도 확 줄어들 거고요."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4년째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역시 같은 고민이었다.

"작년에는 실내 인테리어 공사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희 식당에서 하루에 많게는 70~80인분의 식사를 배달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인테리어 공사가 없어요. 저희 매상도 그만큼 떨어진 거죠."

밤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각, 현대아파트 상가의 불빛들은 거의 대부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곳의 상가는 마치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시골 읍내를 닮았다. 거주민 대부분이 부유하지만, 소비를 하는 젊은이들이 머무르지 않기에 밤 10시면 상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압구정동의 낯선 풍경이다.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어서인지 사람 냄새가 안 나"

강남 동호대교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현대아파트는 대교 좌우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 최육상

"다들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인지 정말이지 사람 냄새가 안 나. 배타적이고."

현대아파트에 입주한 지 10년이 조금 안 됐지만 그 자신 역시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듯한 어느 주민의 말이다. 5층짜리 오래된 현대아파트가 됐든, 5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됐든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의 바람은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돈보다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지금,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현실은 30여 년 전 부동산 투기열풍을 일으키며 어마어마한 매매차익을 챙기던 때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인해 현대아파트가 재건축된다고 하더라도 30여 년 전에 챙겼던 것과 같은 개발 수익이 결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경제적 부유층'으로서 자신들의 부를 지키려는 '보수층'이 분명하다.

현대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오다 문득, 15층 아파트의 13층 높이까지 길게 가지를 키워낸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30여 년을 버텨 온 현대아파트의 성공신화도 세월을 이겨 낸 자연 앞에서는 보잘 것 없어 보였다. 30여 년 전에는 아파트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심어졌을 나무들이 이제는 오히려 낡고 빛바랜 회색빛 아파트를 밀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족하리만치 부유(富裕)하지만, 결코 단지 바깥으로는 부유(浮游)하지 않으려는 경제적 부유층인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민들. 이들은 만약 재건축이 된다면 이 나무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8월, 평일 오후였음에도 현대아파트 주차장에는 차들이 넘쳐났다. 아파트 10층 높이 이상 가지를 키워낸 나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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