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76만 원..내가 만든 밥도 돈 내고 먹으래"

2010. 10. 2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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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노동세상 기자]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 서울시 산하 학교급식조리원 5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 노동세상

"월급이 애초에 너무 작아서 올라봤자 만 원 남짓이었는데 그나마도 3년 전부터는 한 푼도 안 오르더군요. 공무원 월급이 안 올라서랍니다. 우리는 공무원도 아닌데 좋은 건 왜 공무원이 아니라 못 해준다고 하고 나쁜 건 공무원 따라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옳소."

"맞아요. 맞아."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함성소리도 우렁찼다. 1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서울지역 학교급식노동자의 일터 이야기'에서다. '기자회견'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수운회관을 가득 메운 500여 학교급식노동자들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 속 이야기를 쏟아내며 눈시울 붉히고, 또 함께 모인 것만으로 기뻐서 웃음 짓던 '부흥회'에 가까웠다.

"우리가 만든 밥 먹는데 밥값 내라니..."

서울시 교육청 산하 학교조리원노동자들은 월급 76만 원에 자신들이 만든 밥을 먹으면서 밥값까지 공제당하고 있다.

ⓒ 노동세상

세 명의 학교급식조리원이 현장증언에 나섰다. 16년째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는 지영숙씨는 "월급이 76만 원인데 얼마 전부터 급여에서 점심값도 떼어가요. 우리가 만든 밥을 먹으면서 밥값을 내라는 말이에요. 버스기사한테 차비 내고 차 타라는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라면서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서울시 교육청 산하 학교에서 일하는 1만 2천여 급식조리원들의 연봉은 950만 원~1030만 원(세금 등 공제 후)이다. 2008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은 적게는 월 4만 원에서 6만 원 가량의 점심값을 공제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관계자는 "인천시교육청 등 대부분의 시, 도교육청에서는 조리원의 식대를 공제하고 있지 않은데 유독 서울시교육청만 공제하고 있습니다"면서 예산지원을 요구했다.

박현숙 조리사는 병가를 썼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사연을 들려줬다.

"아침 8시부터 퇴근시간인 4시까지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어요. 20~30분인 쉬는 시간 동안 점심까지 먹어야 했죠. 그렇게 열심히 4년 동안 일했던 학교에서 학생 수가 줄었다고 감원당했어요. 이 일을 하면서 팔꿈치와 어깨통증으로 고생했어요. 병원에서 '파 한 단도 들지 마라, 걸레도 쥐어짜지 마라'면서 일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동료들 동의 아래 병가를 사용했는데 감원 심사기준을 보니 병가를 썼다는 게 많이 적용됐더라고요. 너무 너무 서글펐어요."

학교는 박씨에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는 감원통보를 받은 날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학교식당은 골병백화점

박씨는 조리사들이 하루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게를 드는지 직접 재봤다고 한다. 2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제육볶음만 해줘도 110kg 이상씩을 조리하고, 10~11kg씩 되는 국통을 37~50여 반으로 옮기는 등 조리사들이 하루에 들었다 놨다하는 무게만 200~230kg이란다.

그가 "칼갈이 기계가 학교에 있지만 칼날이 갈리지 않아요. 5분도 못 가죠. 한 달에 한 번씩만 전문가에게 칼을 맡겨서 갈면 저희 팔이 이렇게 고장나진 않을 텐데요"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동의한다는 답들이 들려왔다.

다시 그가 "가족들과 TV를 보다보면 잘 들리지가 않아 볼륨을 자주 올려요. 그럼 아이들이 '엄마 귀 먹었어?' 하면서 볼륨을 낮추지요. 그럼 전 따로 안방에 들어가 시청하지요. 저만 그럴까요?"라고 물으니 객석에서 일제히 "아니오"란 답을 한다. 학교 식당에서의 소음이 심해 난청에 시달린다는 말이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관계자는 학교 식당을 '골병 백화점'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노동건강연대'가 245명의 학교급식조리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자의 34.2%가 사고를 경험했고, 54.3%가 근골격계 질환의 자각증상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 중 산재와 공상처리를 한 사람은 각 4명, 1명. 나머지 97.8%는 개인부담으로 치료를 했단다. 노조 관계자는 "감전이 됐는데 교장 선생님이 학교 이미지 안 좋아진다고 산재처리 안 해준 학교도 있습니다"고 현실을 전했다.

병가 내려면 대체 인력 직접 구해야 해

'서울지역 학교급식노동자의 일터이야기'에 참석했던 학교급식조리사들이 행사를 마치고 노조 가입서를 작성하고 있다.

ⓒ 노동세상

마지막으로 현장증언을 한 김영숙 조리사는 "몸이 아파 하루쯤 병가를 내고 싶어도 대체 인력을 구할 수가 없어 제대로 쉬지도 못합니다"면서 휴가를 내려면 대체 인력을 직접 구해야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2009년 교육과학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발표한 전국 12개 교육청 학교급식조리원의 휴가사용실태에 따르면, 1인당 휴가사용일수가 연가 0.26일, 병가 1.21일, 보건휴가 0.11일, 공가 0.03일 등으로 대단히 낮았다.

윤선호 서울일반노조 위원장이 학교급식조리원 처우개선 요구안을 설명하면서 "선생님들은 정말 슈퍼우먼이세요"라면서 치켜세우자 객석 어디선가 "숨 쉴 틈도 없어요"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일하다가 학생 수가 줄었다고 어느 날 갑자기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 타고 눈물 나고 억울한" 마음만 갖고 살던 어머니들이 이제 행동으로 나선다고 한다.

오는 11월 7일, 노동조합 준비위원회 결성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선생님'으로 불리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아줌마'로 불리는 조리원 노동자들의 '노동자 선언'이 예정돼 있다. 수운회관을 나서는 학교급식조리원들이 작성한 노동조합 가입서가 통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이들 밥을 챙기기 위해 바삐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조리원들 사이에서 "전남 학교비정규직은 3천명 모였다는데 우리는 더 많이 모여야 하지 않겠어"란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번 부흥회는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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