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값 폭등의 경제학

2010. 10. 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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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여간 걱정이 아니다.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2000원 정도로 예년 가격의 4배나 된다. 식당에서 김치 구경하기가 어렵고, 추가로 김치를 먹으려면 돈을 내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배추 값이 너무 비싸 올 김장을 포기해야겠다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 중국에서 배추를 긴급 수입하고, 매점매석을 단속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배추 값이 폭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추가 비싸니 내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배추 값 역시 폭등해서 한 포기에 1만원 가까워 이는 해결책이 못 된다. 대통령의 말은 순수한 걱정에서 나왔겠지만 과거 누군가의 말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혁명 전야에 백성들이 빵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라고 말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다만 왕비가 진짜로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설도 있다)

배추 값 폭등의 원인으로 정부와 여당은 올해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한 흉작을 들고 있는 반면 야당과 일부 농민단체는 4대강 사업 때문에 채소 재배면적이 줄어든 것을 의심하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줄어든 채소 재배면적의 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야당과 농민단체에서는 10~20% 줄었다고 보는 반면 정부와 여당은 1~2% 줄어들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매년 김장철 영남지역에서 소비하는 배추의 30%가 낙동강변에서 재배되었는데, 올해는 4대강 사업으로 몽땅 사라졌다고 하니 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장상환 교수는 이미 지난 4월에 "4대강 사업으로 하천둔치 경작지가 줄면 시설채소 재배 면적이 16.4% 감소해 채소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하니 그 선견지명이 놀랍다. 정부는 그동안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정부가 자연을 거스르는 무모한 사업을 벌이니 이런 재앙이 생기는 게 아닌가.

농산물은 수급의 특성상 가격이 크게 변동하는 성질이 있다. 금방 생산이 가능한 공산품과는 달리 생산기간이 길고 계절을 타므로 공급이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다. 또한 농산물은 생필품이 많아서 수요 역시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다. 가격 비탄력성 때문에 농산물은 작은 공급량 변동에도 가격이 크게 요동치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거미집 이론으로 설명한다. 어떤 해 농산물 가격이 낮으면 다음해 생산 감소를 가져와 다시 가격 앙등을 가져오는 식의 파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2년 전 배추가 너무 싸서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을 정도였으니 그것이 올해의 생산 감소와 가격 폭등의 배경이 된다고 이 이론은 가르친다. 결국 이번 배추 값 폭등은 날씨, 4대강 사업, 거미집 이론으로 설명된다. 정부는 농산물 시장의 이런 특성을 잘 알고 미리 대비했어야 하는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한 뒤에야 비로소 대책을 세우니 사후약방문이 아닌가.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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