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아이폰을 만들 수 없는 이유

2010. 4. 19. 10: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기두 기자]

애플의 아이폰

ⓒ 애플

며칠 전 정용진 신세계백화점 부회장이 '삼성이 아이폰을 이기는 솔루션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기계 파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고 발언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핸드폰 시장 점유율에서 노키아에 이어서 세계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 엘지가 핸드폰을 제조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애플에게 스마트폰 시장의 50%를 내줬으니, 분발해야 하는 것도 사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삼성에게 쓴소리를 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스마트폰 제조가 과연 삼성과 같은 가전 제조업체의 영역인가?

미국은 컴퓨터산업 주도권 놓은 적 없다

스마트폰은 삼성·엘지·소니·파나소닉·필립스 등이 포진하고 있는 소비 가전의 영역도 아니고, 노키아·모토로라·소니 에릭슨이 포진한 통신기기 영역도 아니다. 스마트폰 제조는 IBM·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 등이 포진하고 있는 컴퓨터 정보 산업의 영역이다. 따라서, 삼성에게 아이폰을 만들라는 것은 조선회사에게 자동차를 만들라는 것처럼 무리한 요구다.

전자산업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1880년대부터 시작되는데, 이후 소비 가전 산업과 컴퓨터 산업으로 나누어진다. 가전 산업은 GE와 RCA같은 회사들이 TV·냉장고·세탁기 등을 제조하면서 발전했고, 컴퓨터 산업은 IBM·인텔 등이 메인프레임 컴퓨터·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를 만들면서 주도했다.

가전산업은 1970년대 RCA가 일본 가전사들에게 TV·라디오 등의 라이센스를 허락한 이후, 그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결국 80년대 미국 가전산업은 전멸하고 만다( < 전자산업 100년사-소비자 전자산업 및 컴퓨터 산업의 발전사 > 알버레드 챈들러·베리타스). 하지만 컴퓨터 산업은 1880년대 이후 한 번도 미국이 주도권을 놓은 적이 없다.

메인프레임 컴퓨터·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퍼스널 컴퓨터의 탄생까지 컴퓨터 산업의 역사는 모두 미국 내에서 이루어졌고, IBM·인텔·애플·MS·HP 등 유수의 컴퓨터 기업은 모두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컴퓨터 산업은 우주산업·군수·항공기 제조산업 등 미국을 이끌고 있는 최첨단 산업의 밑바탕이 되었고 90년대 중반 야후·구글 등의 인터넷 기반 회사들이 세계 인터넷 산업의 주도권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컴퓨터 산업과 가전 산업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집합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가전제품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컴퓨터산업의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MP3플레이어였다. 기존 CD라는 물리적 매체로 음악을 듣던 사람들이 파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우아하게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는 휴대기기를 원하기 시작한다. 소니 등 일본 기업은 불법 파일 재생 기기를 만들어서 미국과 유럽 음반사들과 부딪히는 것을 우려했고, 한국 중소기업들은 너도나도 이 시장에 뛰어들지만, 우아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실패한다.

애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디지털 음원 플레이어 아이팟을 내놓는다. 아이팟, 컴퓨터회사의 소비가전산업 진출 신호탄아이팟의 등장은 여러가지 큰 의미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컴퓨터 회사의 소비가전산업 진출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가전이라고 여겨졌던 디지털 음원 플레이어를 가전사가 아닌 컴퓨터 회사인 애플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 아이팟의 등장은 가전산업이 컴퓨터 산업으로 편입되기 시작하는 패러다임 변화의 시작이었다. 애플은 기존 소비 가전 산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가전 산업을 컴퓨터 산업으로 시프트 시킨 것이었다. 아이팟은 소형 컴퓨터였고, 아이튠은 음악을 우아하게 듣게 해주는 OS였다.

디지털 음원플레이어 시장을 접수한 애플은 또다른 성장엔진을 찾는데, 그것이 모바일폰 제조 사업이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하자 애플은 모바일폰으로 우아하게 사진을 찍고, 이메일을 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만드고 이에 적당한 OS를 개발한다. 거기다가 간단한 어플리케이션까지 실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이폰은 전화할 수 있는 컴퓨터가 아니라, 컴퓨터인데 전화까지 가능한 제품이 된다.

반면 삼성은 한 번도 컴퓨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IBM 스팩의 PC 조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IBM처럼 PC의 플랫폼을 만들던지, MS나 애플처럼 PC의 OS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순수한 소비가전 제조업체이다. 제조업계는 표준화된 스펙의 제품을 누가 가장 효율적으로 제조하느냐가 생명인 업계이다. 며칠 전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절대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명인 업계다.

"어떻게 하면 가장 우아하게 디지털 음원을 듣게 해 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장 우아하게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게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애초에 삼성의 직무 영역이 아니다.

컴퓨터산업과 가전산업의 컨버전스, 삼성의 선택은?

문제는 앞으로 컴퓨터산업과 소비가전산업이 더더욱 컨버전스될 것이라는 점이다. MP3P·MobilePhone·e-Book에 이어서 TV·냉장고·세탁기·커피포트·프린터 등의 가전제품은 점점 더 컴퓨터화되고 다기능화될 것이다. 애플이나 다른 컴퓨터 회사들이 이런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이폰은 100년간 이어온 미국 컴퓨터 산업의 끝에 서있는 디바이스다. 쿵후로 치자면 마치 1000년을 이어온 소림사의 비법으로 완성된 새로운 필살기 같은 디바이스다. 스마트폰 제조 때문에 겨우 '컴퓨터 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한 삼성에게 아이폰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요구이며 가능하지도 않다.

당장 삼성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보인다. 당분간은 안드로이드폰과 윈도즈폰 제조에 집중하면서, 아이폰의 점유율을 낮추는 데 협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향후 사업분야를 컴퓨터 산업 쪽으로 확장해 갈 것인지, 아니면 대규모 OEM 제조업으로 만족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