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금이 스위스산 금괴로 둔갑

2009. 6. 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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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산 금괴가 아니라고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스위스에서 무관세로 금괴를 수입해오던 국내 주요 시중은행과 수입 업체들이 원산지 규정 위반으로 수백억 원대 과세 처분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이들 업체는 원산지 증명 의무가 수출업자에게 있다는 FTA 규정에 따라 스위스 수출 기업들을 믿고 수입했다 뒤늦게 스위스산 금괴가 아님을 알게 됐다며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관세청과 기획재정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관세청은 최근 신한은행 기업은행 삼성물산 등 서울 지역 기업 5곳과 대구 지역 기업 5곳 등 총 10개 기업에 대해 총 과세 대상 수입액 2657억원어치에 대해 원산지 규정 위반을 통보했다.

이들 기업은 과징금 80억원과 가산세 등을 포함해 총 150억원대 세금 부과 예고 처분(과세 전 통보)을 받게 됐다.

세관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들 10개 기업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3월 사이 UBS은행과 스위스금융그룹 자회사인 메탈로, 팜프, 헤라우스 등에서 '스위스산'으로 표시된 금괴를 수입했다. 그러나 최근 스위스 세관당국과 공조해 단속한 결과 이 금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제3국산 금괴로 스위스에서 정련 작업만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스위스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 아이슬란드 등 4개국 연합체인 유럽무역연합(EFTA)과 2006년 9월 1일부터 FTA를 발효해 이들 국가에서 수입되는 금괴에 대해 관세 3%를 면제해주고 있다.

이때 적용되는 원산지 규정이란 FTA 체결국 내에서 일정 수준 이상 가공ㆍ변형 과정을 거쳐야만 해당 지역 생산품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로 우리나라와 EFTA 사이에는 품목 분류번호 6단위가 달라진 금괴만 혜택을 볼 수 있다.

FTA 체결로 2005년 전체 금괴 수입액 가운데 3%에 불과하던 스위스산 금괴 반입량은 2007년 44%까지 급등했다.

2006년부터 2008년 초까지 스위스에서 가져온 금괴는 총 4700억여 원어치. 이번 원산지 위반처분 대상 금액에다 지난해 4월 중소 금괴 수입 업체를 대상으로 한 원산지 위반 적발금액(1800억원)까지 합치면 사실상 스위스산 금괴 전량이 원산지 위반인 셈이다.

이 같은 세금 탈루에 대해 업계에서는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의도적인 관세포탈이라기보다는 사전 인지 부족과 제도적인 결함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업체들은 권위 있는 스위스은행에서 '스위스산'으로 명시된 금괴를 수입했고, 이들 회사 역시 이 금괴를 스위스산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스크랩 금으로 만든 금괴는 스위스산으로 인정되지만 저순도 금으로 만든 금괴는 스위스산으로 인정되지 않는 지나치게 엄격한 FTA 규정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도 스크랩 금과 저순도 금을 섞지 않고 만든 금괴는 없다"며 "스위스금융그룹이나 UBS은행조차 스위스산이라는 점에 문제가 없다며 스위스 관세 당국과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내에서조차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임에도 우리 세관당국이 세금을 부과한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과 FTA가 동시다발적으로 발효됐을 때 협정국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 때문에 이 같은 혼란이 증폭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스파게티볼 효과'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런 염려 때문에 당국이 기업들을 상대로 수출업자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 '원산지 규정 위반 시 배상청구를 받을 수 있다'는 등 문구를 넣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세금 부과 처분 통보를 받은 기업들은 한 달 내에 소명자료를 제출한 뒤 과세 전 적부심 절차를 밟게 된다.

한편 지난해 4월 1800억원대 가짜 스위스산 금괴 수입으로 59억원 과세 처분을 받은 기업들은 과세 전 적부심을 거친 뒤에도 애초 통보대로 세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김태근 기자 / 김은정 기자 /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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