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눈물의 땡처리'중

2008. 10. 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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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원 넘었던 블라우스를 3만원에 판매해도 사려는 손님이 없습니다" 22일 백화점, 쇼핑몰, 단독매장 등에서 만나 본 의류업체 점원들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경기가 나빠질 수 있나", "미국이 망한다고 하더니 남 얘기가 아니었다", "IMF 때는 정말 난리라는 분위기가 확연했는데, 이번에는 소리소문 없이 망하는 업체들이 줄잇고 있다" 등등 하소연을 쏟아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꼭 1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위기 때 횡횡했던 속칭 '땡처리'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금융위기에 이은 실물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의류업계는 '폐기 처분'만이라도 막아보려고 애간장을 태우고 있고, 건설사들은 미분양 아파트를 처분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년전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매장에 누워있는 고급 의류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 '특별전', '최종가전', '이월상품전', '초대전'이라도 쓰인 현수막이 백화점을 도배하듯 걸려 있다. 특히 여성정장 매장이 있던 3층은 아예 파격세일 행사에 공간을 반 이상 내주고 있었다. 사계절 옷들이 손질되지 않은 채 널려 있는 매장에서 고급스런 백화점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가장 비싼 코트가 10만원을 넘지 않았지만 고객들은 한번 걸쳐만 보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서울 롯데백화점 노원점에서는 남성정장, 점퍼 등을 70~80% 할인가격에 팔고 있었다. 오후 몇 시간에 걸쳐 반짝세일 형식으로 진행하는 '시한부 땡처리'다. 엠비오, 인터메조 등 세일없는 브랜드 매장에는 당연히 점원만 서성거렸다. 한 남성복 매장의 40대 여성점원은 "제품정가가 낮아졌고, 이 가격에서 다시 대폭 세일을 하는데도 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형편없다"고 말했다. 땡처리를 해도 물건이 빠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유명브랜드 폐업선언 고별세일소비자들이 지퍼를 잠그면서 잘나가던 유명 브랜드들은 속속 '폐업'을 선언하고, 눈물의 '고별 정리'을 진행중이다.

지난 달 6일 부도를 맞은 '패션네트'는 곳곳에서 자사 브랜드 마리끌레르, 이지엔느의 '고별 최종가전'을 벌이고 있다. 재킷 및 점퍼 3만원, 스커트와 바지 2만원, 겨울 코트류 5만원 등 사계절 품목을 원단 값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땡처리'했다. 그 옆에선 린, 쿠가이 등의 브랜드가 '특별초대전'이란 이름을 달고 이월상품을 팔고 있었다. 역시 가격은 10만원을 넘지 않지만 찾는 사람은 드물다.

한 판매직원은 가을용 원피스를 가리키며 "원래 45만원에 팔았던 것인데 매장 철수 결정이 나면서 세 차례 가격할인을 하다가 결국 8만원으로 내렸다"며 "가격을 묻는 손님만 몇 있을 뿐 5만원이 넘는 품목은 보지도 않고 간다"고 말했다.

다음달에 브랜드 사업을 종료할 예정인 아동복 브랜드 '이솝'도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등에서 4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마지막 선을 보이고 있지만 찾는 발길은 뜸한 상태였다.

▶명품도 파격세일수입명품도 자존심을 접고 세일에 돌입했다. 캘빈 클라인, DKNY, 베르사체 등의 넥타이, 스카프, 와이셔츠 등이 정상가의 10~50%인 3만~14만원 가격에 걸렸다. 이 정도면 명품치곤 땡처리 수준이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명품은 불황을 안탄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매장을 둘러보던 박지민(38.여.서대문구 서교동)씨는 "요즘은 너도나도 세일을 하는 통에 수입명품이 세일이라고 해도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며 발길을 돌렸다.

롯데백화점 본점 영업담당자는 "백화점의 경우 주로 이월상품을 대폭 할인해 처분한다. 땡처리는 아니다"며 땡처리라는 표현에 민감해 했다.

▶셔터내린 단독매장서민들을 상대하는 단독의류매장은 멀쩡한 신상품을 땡처리하다가 이제는 아예 셔터문을 내리고 폐업을 하는 곳이 속출했다.

패션 1번지 서울 명동에 들어서자마자 '가을 신상품 전품목 70% 세일'이란 문구가 들어온다. 의류브랜드 H업체는 상품을 하나 구입하면 다른 상품을 공짜로 주는 끼워팔기를 하고 있다. 한 매장의 판매사원은 "신상품 70% 세일이면 정말 남는 게 없는 장사다"면서 "그렇게 써 붙여도 들어와서 보고 가는 손님이 없다"며 한탄했다.

서울 노원역 인근의 한 쇼핑몰은 2층 183개 점포 가운데 30여개가, 3층 186개 점포 가운데 150여개가 비어 있었다.

서울 불광역 인근의 쇼핑몰도 사정은 마찬가지. 의류매장들이 입점해 있는 이 건물의 3, 4층에는 손님 숫자보다 매장직원 수가 더 많았다.

이 곳에서 만난 주부 문모(36)씨는 "최근 폐업한 한 여성브랜드 점퍼가 70% 할인한 7만원 가격이 붙어 있길래 골랐는데, 점원은 5만원에 주겠다고 했다"며 의아해 하기도 했다.

▶'아파트 땡처리', 큰 장 섰다아파트 땡처리도 낯설지 않다. 한푼이 아쉬운 건설사들은 헐값에라도 넘기고 유동성을 확보하려 혈안이 돼 있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 A사는 최근 부산에 지은 아파트 200여 가구를 분양가의 70% 가격에 분양대행업체에 통째로 넘겼다.

올들어 요진산업, 대동종합건설, 청광건설 등 중소 건설사들은 물론 두산건설, 코오롱건설 등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까지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가보다 20~30% 싼 가격으로 주택공사에 땡처리했다.

주택공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중인데 지금까지 매입을 완료했거나 올해까지 매입할 물량은 총 5000가구, 약 1조원에 달한다. 더 다급한 곳은 미분양 아파트 펀드를 찾는다. 현재 이런 펀드에 의뢰가 들어온 미분양 아파트도 2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불황이 시작도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밑바닥 경제는 도산, 사업정리, 매장철수 등 슬픈 풍경이 속출하고 있었다.

유지현-김수한 기자/ prodigy@heraldm.com-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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