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채소값만 잡고.. 정유사들 좋겠네"치솟는 경유값.. 정부 "대책 아직 안 세웠다"

2008. 4. 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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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철 기자]

"정말, 이러다 우리만 다 죽게 생겼어요···"

4일 낮 12시 서울 가락동 가락시장. 배달업자 이상용(59)씨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옆에는 야채 박스가 가득 쌓인 1톤 트럭이 서 있다. 이내 깊은 연기를 내뿜던 그에게 "경유 값이 많이 올랐죠?"라고 묻자 한 동안 말이 없다.

이씨는 이날 새벽 6시에 가락시장으로 나와 도매로 산 야채를 성남의 음식점으로 팔러 나가려던 참이다. 그는 "작년 1달에 40만원 들던 경유값이 이젠 60만원이나 된다"고 말했다. 요즘 한달 일해 그가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는 "1~2년 전 (1ℓ에) 1100원 하던 경유값이 현재는 1550~1580원 한다, 휘발유 값과 100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이어 "휘발유 값이 오르면 자가용 운전자들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되지만, 우리 같은 생계형 운전자는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씨는 "목구멍에 겨우 풀칠할 정도다, 적자가 안 나면 다행이다"며 "요샌 일 나가면 밥도 못 먹고 빵만 사먹는다"고 답답해 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담배를 끄면서 "1년 넘게 끊은 담배를 두달 전에 다시 피우게됐다"고 말했다.

4일 낮 12시 서울 가락동 가락시장에서 만난 배달업자 이상용(59)씨는 "밑바닥 서민들 다 죽는다, 경유 값을 내려 달라"고 말했다.

ⓒ 선대식

격앙된 생계형 운전자들 "정유사 뱃속만 채우는것 아니냐"

새벽 가락시장에서 산 야채 등을 서울 서초동으로 팔러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홍용의(51)씨. 그는 비싸진 경유 값에 대해 "정유사가 많이 남겨먹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 선대식

이번엔 '경유 파동'이다. 최근새 국제 경유 가격 상승세가 휘발유를 앞지르면서,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 일부 주유소의 경우 아예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추월한 곳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경유 가격 상승은 화물차로 생계를 이어가는 자영업자에겐 '직격탄'이 된다는 점. 특히 이씨와 같이 유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비영업용 화물차를 운전하는 이들은 "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말이 없다.

다시 가락시장. 이 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크게 격양돼 있었다. "이렇게 힘든데,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 이들은 한결같이 경유 가격을 포함해 새 정부의 물가대책 전반에 불만을 쏟아냈다.

오후 1시 가락시장 내 청과시장. 바나나를 가득 실은 1톤 트럭이 보였다. 트럭에는 '1송이 1000원'이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트럭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상인에게 다가가 경유 가격 상승에 대해 물었다.

길거리에서 바나나 장사를 한다는 서성일(33)씨는 "몇달 전 1ℓ에 1300원 하던 경유 가격이 1600원대로 올랐다, 하루에 2만원 들던 기름값이 2만 5000원이 됐다"고 말했다. 하루에 많이 벌어야 5만원을 번다는 그에게 경유값 상승은 큰 부담이었다.

인근 농산물시장에서는 한 상인이 1톤 트럭에 쌓인 각종 야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매일 새벽 야채를 도매로 산 다음 오후에 서초동의 음식점으로 팔러나간다는 홍용의(51)씨는 "정유사가 많이 남겨먹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기름값이 오를 땐 팍 올리고, 내릴 땐 몇십원 내리는 정유사가 요즘 재미가 좋을 것"이라고 착잡하게 말했다. 이어 "정부가 우리 같은 차량에도 유가를 보조해주거나, 세금을 내려 가격을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역시 1톤 트럭 운전사 송아무개(51)씨는 경유값 상승에 대해 묻자 대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정유사는 그렇게 많이 벌고 있는데, 이 대통령은 채소값 잡겠다고 난리다"며 "서민은 죽어나는데, 1% 대기업만을 위한다"고 강조했다.

유가 보조금 받아도 힘들긴 마찬가지 "일 있어도 못 나가"

오후 2시, 가락시장 한 편에는 1톤 트럭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유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단 용달차들이었다. 운전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트럭 화물칸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창 운행을 나가야 할 시간인데도 말이다.

김아무개(59)씨 역시 자신의 1.4톤 화물차 화물칸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에게 많이 오른 경유 가격에 대해 물었다. 김씨는 "3년 전 2만원어치 기름 넣고 20만원까지 벌어봤지만, 이젠 2만원 기름 넣고 고작 5만원도 벌지 못한다"며 긴 넋두리를 내놓았다.

김씨는 이날 새벽 5시부터 지금껏 화물차를 움직이지 못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경기가 망쳐서(안 좋아) 앉아만 있다"며 "여기에 기름값도 올라, 일이 있어도 타산이 안 맞아 멀리 못 간다"고 말했다.

그는 "37년째 화물차를 운전하는데,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며 "70년 말 오일쇼크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에서 역시 운행을 나가지 못한 화물차 운전사 김충남(68)씨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전했다.

4일 오후 서울 서초동의 한 주유소에서 경유값이 휘발유와 6원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경유 가격이 급등하는 이유는 석유제품 가격에 연동된 싱가포르 국제 경유 시세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박지호

대형 트럭 운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아침 인천에서 수입한 당근을 싣고 방금 가락시장에 도착했다는 5톤 트럭 운전사 김경범(53)씨는 "유가 보조금이 340원(1ℓ당)에서 280원으로 내려갔는데, 기름 값은 1300원대에서 1600원대로 올랐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인천에서 안성까지 왕복 202㎞를 달리면 14만원을 받는데, 기름값과 톨게이트 비 합쳐 10만원이 넘는다"며 "요샌 술도 못 먹고, 집에서 삼겹살이나 구워먹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가 넘어서자 많은 화물차들이 야채·과일 등을 잔뜩 싣고 가락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운전사는 담배를 물었고, 또 다른 사람은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다. 인근 주유소에선 경유 값이 휘발유 값을 위협하고 있었다.

한달새 휘발유보다 5배 폭등... 정부는 묵묵부답

이같은 경유 값 폭등은 실제 정부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휘발유와 경유의 전국 주유소 평균 가격은 지난 2월 넷째 주에 각각 1ℓ에 1662.72원, 1468.15원이었다.

4월 첫째 주 같은조사에서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은 각각 1681.93원, 1580.75원을 기록했다. 101.18원 차이다. 휘발유 값이 한달여 동안 19.21원 오르는 사이, 경유 값은 112.6원나 올랐다. 경유 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휘발유 값의 93.98%까지 근접했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은 각각 1729.74원, 1648.10원으로, 불과 81.64원 차이를 보였다. 경유값이 휘발유 값 대비 95.28%까지 상승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7월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을 100:85로 맞추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오히려, 일부 주유소의 경우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비싼 곳도 나왔다.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제 경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국내에서도 연동돼서 오른 것 같다"면서 "사태 추이를 보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별다른 대책은 아직 세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휘발유에 매기는 세금 10%를 내렸던 정부였지만, 경유에 붙는 세금인하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식사업체로 등록된 버스와 트럭에 적용되는 유가보조금도 앞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의 고통과 한숨은 더 커지고,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락시장을 살리겠다"는 한 국회의원 후보자의 확성기 목소리와 서민들의 마음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듯 했다.

4일 오후 2시, 유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단 용달차 운전자들이 한창 운행을 나가야 할 시간인데도, 화물칸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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