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890에 약한 증시..ELS가 원흉?

2004. 12. 24.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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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일한기자] 주식시장이 종합주가지수 890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종합지수는 10월 이후 12월초까지 3번이나 890에서 돌파하지 못하고 이내 하락세로 돌아서는 고배를 마셨다. 연말 4번째 진행중인 돌파시도 역시 수난 그 자체다. 22, 23일 장중 고점이 각각 890.81, 890.32이다. 900도 아니고 890에만 가면 이내 아래쪽으로 방향을 튼다.

890이 저항선이 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지수를 이처럼 묶어버린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와관련 지난해부터 인기를 끈 주가연계증권(증권사의 ELS, 은행의 ELD)이 주가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형태는 지수(코스피200)와 연계된 녹아웃(Knock-out) 형으로, 지수가 배리어(목표지수)를 넘게되면 수익률이 고정되는 구조를 갖는다. 배리어는 20~30%가 대부분이다.

지수연계 녹아웃형은 원금보장을 추구하기 위해 자산의 95% 안팎을 채권에 투자하며 이자로 콜옵션 매수포지션을 구성해 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올들어서는 지수뿐 아니라 삼성전자 국민은행 LG화학 등 개별종목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상품도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상품구조도 녹아웃형에서 임의상환형(콜러블형, Callable), 조기상환형 등으로 다양해졌다.

동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12월13일까지 증권사가 발행한 ELS는 7조6000억원에 육박한다. 은행권에서는 더 많은 ELD가 팔렸다. MMF와 맞먹는 인기를 끌며 수십조원의 자금이 주가연계증권으로 몰렸다.

LG증권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7~8월에만 팔린 지수 연계형 ELS 상품만 5900억원에 이른다. 또 청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수연계형 ELS는 880~900에 가장 많은 배리어를 갖고 있다.

ELS가 지수 상승을 막는 구도는 크게 두 가지 절차를 거친다. 녹아웃형의 경우 장외에서 발행한 콜옵션 매도포지션은 지수가 오르면 손실위험이 증가한다. 이를 위해 옵션을 매도한 외국인으로서는 장내에서 선물매수를 통해 헤지(hedge)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지수가 배리어에 접근할수록 헤지 비용이 높아지게 된다.

100% 헤지를 해놓으면 지수변화에 대해 옵션 매도의 손익이 변하지 않지만 이는 이론적인 설명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 올해 한 외국계증권사는 만기가 임박한 녹아웃형 ELS가 배리어 수준으로 오르자 이에 대해 긴박한 헤지를 실행했고 이 과정에서 200억원 정도를 손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비용을 줄이려면 지수가 배리어 근처에 도달하는 것을 막거나 아예 지수가 급등해 배리어를 넘겨야한다.

대규모 장외 옵션을 매도해 둔 외국인으로서는 주가 상승이 반가울 리 없고 따라서 특정한 수준(배리어 890 안팎)으로 지수가 오르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펴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개별주식을 기초자산으로하는 ELS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삼성전자 콜러블 ELS의 경우 설계된 이론 가격에 따라 삼성전자 주식을 사고 팔면서 헤지(ELS내 주식비중 조절)를 실행한다. 주가등락에 수익이 변함이 없는 "델타 제로(0)"를 맞춰야하는데 이론 가격을 ?i아가기 위해서는 주가가 오를수록 주식편입을 줄여야하는 구조를 갖는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삼성전자 편입을 늘려야한다. 종가를 기준으로 "고점 매도, 저점매수(high sell, low buy)"를 반복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박스권에 갇히기 마련이다. 최근 설정된 국민은행 ELS에는 20만주가 편입되는 등 ELS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 지수연계형과 달리 개별종목을 기초자산으로하는 ELS는 주식편입 비중이 매우 높다.

실제 삼성전자 국민은행 LG화학 등 ELS의 기초자산으로 폭넓게 이용된 대형주는 포스코 한국전력 KT 등 ELS와 연계성이 적은 종목에 비해 상승폭이 크게 제한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막히면 지수도 탄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옵션 매도에 따른 매수헤지의 후유증이 지목된다. 지수 녹아웃형의 경우 콜옵션을 매도한 외국인은 대부분 선물매수를 통해 헤지를 한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물매수포지션은 지수가 배리어를 넘어 녹아웃되거나 만기가 되면 일제히 매도로 청산된다. 개별 주식도 마찬가지, 특정 시점에서 청산돼 매물 부담이 된다.

최근 외국인의 선물매수포지션이 단기 급증해 누적 순매수가 2만계약을 넘어섰는데 이중 절반 가량은 ELS와 연관된 매수헤지로 추정된다. 연이은 선물매수에도 미결제약정이 9만계약을 채 넘지 못했고 지수가 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것이 근거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23일 외국인이 3800계약 가량의 선물 순매도로 돌아선 것은 차익실현과 함께 매수헤지의 청산으로도 파악된다.

최창규 LG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지수나 개별 종목 주가가 배리어를 넘어 ELS가 녹아웃되면 옵션을 발행한 외국인으로서도 옵션매도와 선물매수 포지션을 정리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주가 상승을 막을 만한 이유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위원도 "외국인의 대규모 선물매수와 강도 높은 프로그램매수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890에서 번번히 막히는 것은 시장이 저항선을 뚫을 만한 모멘텀이 없기 때문"이라며 "ELS가 주가 상승을 막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동희 한투증권 마케팅전략부 연구위원은 "대규모 장외옵션을 발행한 외국인은 제로섬(Zero Sum) 게임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옵션 행사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펼 수 밖에 없다"며 "지수가 890에서 수차례 밀리는 것은 지수나 대형주 주가급등이 반갑지 않은 대규모 ELS도 한몫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한국 거래소시장은 세계 43개(세계거래소연맹(WEF) 회원국 기준) 주요 시장중 상승률 상위 31위를 기록했다. 극심한 부진이다. ELS의 선풍적인 인기는 다른 어떤 시장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시장만의 기현상이다.

유일한기자 onlyyou@moneytoday.co.kr<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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