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노무현이 올렸나 이명박이 올렸나

2011. 6. 4. 09: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분석] 가계부채 폭탄돌리기, MB정부 아킬레스건 된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이명박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폭탄이 터지는 시점을 다음 정권으로 미루려고 하겠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래 표를 보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비교한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양도세와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끌어올렸습니다. 전매 제한을 강화했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고요. 재건축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반면, 이 대통령은 그런 규제를 모두 풀었거나 추가로 풀 예정입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 부채 비율. 한국은행+대신경제연구소.

흥미로운 건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내내 오르기만 했다는 겁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을 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요지부동이고요. 노 전 대통령 시절, 보수·경제지들은 과도한 규제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다고 비판하곤 했습니다. 시장에 맡겨두면 공급이 늘어나서 가격이 안정될 거라는 논리였죠. 실제로 그 신문들이 가격 안정을 진심으로 바랐는지는 의문입니다만.

그렇다면 집값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오른 걸까요?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오른 걸까요?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공급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펼치면서 거품을 키웠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뛴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공급이 부족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투기적 가수요에 있었습니다. 집값이 계속 뛰고 있는데 공급을 늘렸으니 불난 데 기름을 부은 셈이었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급을 늘리되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방법으로 투기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양원가 공개를 미루고 건설회사의 폭리구조를 방치하면서 집값이 계속 뛰기 시작했죠. 세금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부동산은 최고의 자산증식 수단이었습니다. 늦기 전에 이제라도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확산됐고 실제로 너도나도 빚을 내 집을 사기 시작했죠.

애초에 반값 이하의 공공 임대주택을 늘려 나가면서 대안을 제시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장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건설회사의 반발도 꺾지 못했고요. 집값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공급을 늘리면서 투기를 억누르면 집값이 안정을 찾게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집값 급등은 건설회사들의 분양가 부풀리기와 빚을 내서라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심리, 그리고 지금 안 사면 나중에 더 비싸게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조장했던 정부와 금융회사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부동산이 최고의 재테크라며 부동산 불패 신화를 확산시켰던 언론 역시 마찬가지일 거고요.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이 주춤한 건 첫째, 집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고 둘째, 빚을 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비 집을 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기대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리 규제를 풀고 투기를 부추긴다 하더라도 머지 않아 거품이 꺼질 게 확실하다면, 이 상황에서 손해를 자초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집값이 빠지기 시작하면 기득권 계급의 반발이 엄청날 테니까요. 지난 10년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는 무렵에 대통령이 돼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도 집값을 떠받치는데 실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임기 말까지 최대한 미루려고 하겠지만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할까요.

무엇보다도 가계부채가 큰 걱정거리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 금융부채가 무려 937조원,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146.3%나 됩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세요. 소득이 늘어나는 것보다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문제는 부동산 관련 대출이 60%를 웃도는데다 변동 금리형 대출이 90%에 육박한다는데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거나 부동산 가격이 고꾸라질 경우 이자 상환 압박이 엄청나게 늘어날 거라는 거죠.

주택담보재출 상환방식 비율. 한국은행+대신경제연구소.

이명박 정부는 금리 인상을 미루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집값을 떠받쳐 왔습니다. 대출 쉽게 받게 해줄 테니 집을 사라는 거죠. 덕분에 2007년 이후 일부 지역에서 추락하던 집값이 잠깐 반등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연체가 늘어나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이 불가피합니다. 거품이 빠지는 시점을 미루면 미룰수록 충격이 더욱 커질 겁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세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했더니 대출 증가율이 확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7월 DTI 규제를 완화한 뒤로 증가율이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꺼져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고 가계부채 급증을 조장한 셈이죠. 그렇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폭탄 돌리기의 끝이 임박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부동산 가격 추이. 한국은행+대신경제연구소.

지난 2000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0.5배 정도였습니다. 지난해에는 0.8배로 늘어났습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0.8배에서 1.46배로 늘어났습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각각 0.69배와 1.36배입니다. 더 놀라운 건 주택담보 대출 가운데 원금 분할 상환의 비율이 21.6% 밖에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78.4%는 원금 상환을 유예하면서 이자만 지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뺄 시기를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을 제한할 경우 가계 부실이 금융권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그렇다고 가계부채 문제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 대통령은 과연 이 아슬아슬한 폭탄 돌리기를 다음 정권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도박입니다. 이 대통령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