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이익 극대화, 부담은 오롯이 국민들 몫

2016. 8. 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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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근 5대 공기업 영업이익 3배 급증
한전 이익률, 삼성전자·현대차 웃돌아
주주·임직원 등엔 배당·성과급 잔치
공익적 의무·사회공헌은 흐지부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낮은 인식 탓
구성원 자발성·이해개선 절실
중립적 지속가능경영 감시기구 필요
효율 위주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을 지나던 시민이 건물 외벽에 촘촘히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공기업은 공공(일반대중)이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이다. 공기업은 국가의 지원과 관리, 보호 속에 영업활동을 하는 만큼 일반회사처럼 이윤 극대화만 추구해선 안 된다. 공기업의 이윤 극대화는 공공의 부담 최대화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공기업에는 일반기업보다 더 엄격한 사회책임경영(CSR)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주요 공기업들은 사회책임경영은커녕 이윤과 효율의 논리에만 빠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까닭도 바로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주요 공기업들의 재무적 성과는 뚜렷하게 좋아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매출액 기준 5대 공기업(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가스공사)의 2013년 이후 영업이익(연결 기준)을 보면, 가스공사와 수자원공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특히, 한전의 영업이익은 2013년 1조5190억원에서 2015년 11조3467억원으로 2년 만에 무려 7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전이 기록한 2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13.16%), 현대자동차(6.91%), 에스케이텔레콤(9.97%) 등 재벌 대기업에 견줘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막대한 이익이 경영 효율화나 서비스 개선에 따른 수요 증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독점이윤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이 합리적이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공기업 본래의 설립 목적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6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공공임대주택의 사업 승인 건수가 2013년 2만2000여건에서 2015년 4700여건으로 대폭 줄었다고 밝혔다. 정부의 부채비율 축소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공공주택 공급이라는 목적 사업을 등한시했다는 방증이다. 철도공사의 경우 2014년 케이티엑스(KTX) 주중 할인(7%)과 역방향 할인(8%)제를 폐지했다. 2013년에는 포인트 적립제도를 유효기간 3개월짜리 쿠폰 발급으로 대체하면서 장기이용객에게 사실상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이런 변칙적인 요금 인상으로 철도공사의 영업이익은 2013년 2천억원에 가까운 적자에서 2014년 1천억원을 살짝 넘는 흑자로 급반전했다.

지난해 한전이 거둔 막대한 이익도 25%에 이르는 전기판매 마진율이 결정적이었다. 한전은 지난해 발전자회사와 민간 발전회사로부터 킬로와트(㎾)당 84원에 구입한 전기를 소비자에겐 평균 112원에 판매했다. 유가 및 원재료 가격 하락 등에 따른 요금 인하 여력은 그 어느 때보다 충분한데도 한전이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요금은 요지부동이다.

공기업들은 성과를 배분하는 과정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외면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최근 3년간 5대 공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배당과 성과급 등 주주와 임직원에게 배분된 경제적 가치에 견줘 지역사회나 취약계층을 위한 지출엔 인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전은 지난해 약 2조원을 정부와 외국인 투자자 등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줬다. 한전의 지난해 시가배당률은 무려 6.2%로, 시중 예금금리의 3배가 넘는 고배당이었다. 임직원들에게도 풍성한 뭉칫돈이 돌아갔다. 지난해 한전은 성과급으로만 무려 3600여억원을 풀었다. 하지만 한전의 사회공헌활동 지출은 연평균 300억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토지주택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1조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거두면서도 사회공헌활동 지출은 연평균 60억~70억원 선에 그쳤다. 이는 매출이나 자산 규모에서 비슷한 민간 대기업에 견줘 매우 적은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간하는 ‘기업·기업재단 사회공헌활동 백서’를 보면, 영리 대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세전이익의 3%가량을 사회공헌활동에 지출한다.

이처럼 국가의 기본적인 서비스를 독점대행하는 공기업들이 정작 자신들의 사명인 공익 활동엔 소극적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경쟁과 효율만 강조하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 기조에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확 달라진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뒤부터이다. 정부는 기획재정부 주도로 공공기관 민영화, 통폐합과 효율화, 기능 재조정 등을 담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2008년 선포하고, 2009년부터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공공기관 선진화 및 경영효율화 추진관리 항목’이란 것을 신설해 효율과 수익성 지표를 개선한 곳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겨 인사와 예산 배정에 혜택을 줬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 기조도 다르지 않다. 공공기관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그 내용은 부채를 줄이고, 효율성과 이익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기업들이 사기업 못지않게 돈벌이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공기업들의 낮은 인식 수준도 공공성 강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국제적 표준으로 강화되는 추세인데, 국내 공기업들은 거꾸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이 내놓은 ‘201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현황’을 보면, 지난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공공기관은 24곳에 그쳤다. 2010년 이후 줄곧 35곳 안팎의 공공기관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것과 견줘 약 30% 줄어든 수치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재무제표처럼 공시 의무는 없지만,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해당 기업의 경제 및 사회적 활동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매체다. 보고서 발간이 줄었다는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의지와 사회적 책임 의식이 미약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공공기관조차도 국제표준에 걸맞은 내용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일반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성을 반영한 ‘공공기관 보조지표’(Public Agency Supplement)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데, 지난해 국내 공공기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가운데 이를 보고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공기업이 공공성을 추구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영이 이뤄지도록 하려면, 우선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경영에 공공의 이익이 반영되려면 사회적 견제와 감시가 보장되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공기업 경영진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기업 내부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대표하는 독립기구의 설치를 제안한다. 박기찬 인하대 교수(경영학)는 “해당 공공기관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컨트롤타워, 즉 사회책임경영을 살피는 거버넌스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영진 교체가 잦은 공공기관의 여건상 조직 내부에 이런 상설기구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정부나 공기업 경영진의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경영진의 치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동욱 한국표준협회 선임연구원은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의 내부 구성원들이 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경영 활동으로 구현했을 때 의미를 갖는다”며 “따라서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의 자발성과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CSR팀장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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