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백수오 파동 1년 .. 애꿎은 중소 건강식품 회사들만 눈물
1년 전인 지난해 4월22일.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하나가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시장을 발칵 뒤집어놨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백수오 상품의 90%가 가짜고, 백수오와 비슷하지만 인체에 해로운 이엽우피소가 섞였다는 내용이었다. 백수오는 여성 갱년기 증상에 효과가 좋다고 해서 인기가 대단했다. 이걸 먹거나 선물한 소비자들은 난리가 났다. 백수오 원료를 공급했던 내츄럴엔도텍 주가는 사태 직전 8만6600원(4월21일)에서 8610원(5월18일)으로 10분의1토막이 났다. 개미 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1년. 백수오 사태는 당사자는 사라지고 엉뚱한 조연들만 피해를 보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츄럴엔도텍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사 결과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나와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무혐의. 이엽우피소가 들어 있긴 했지만 고의로 섞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 와중에 내츄럴엔도텍은 유럽·중동 등지에 수출 계약을 맺고 주가도 2만원대를 회복했다. 또 지난 3월 허위 과장광고로 영업정지를 받았지만 불복소송을 냈다. ‘마이웨이’다.
또 다른 당사자인 소비자원은 결국 이엽우피소가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식약처도 이제서야 “이엽우피소 독성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큰 혼란이 야기됐지만 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게 없다.
이제부터 피해자를 살펴보자. 우선 홈쇼핑 업계다. 취재 결과 홈앤쇼핑(180억원)·롯데홈쇼핑(110억원)·현대홈쇼핑(88억원)·CJ홈쇼핑(40억원)·GS홈쇼핑(33억원)·NS홈쇼핑(3억3000만원) 등 6개사가 이미 판매한 백수오 상품을 환불하는데 455억원을 썼다. 지난해 영업이익의 10%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창고엔 백수오 제품이 수북이 쌓여있고 아직도 쇼호스트, MD(상품기획자)가 돌아가며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백수오는 우리에게 악몽”이라고 했다.
최대 피해자는 중소 건기식 업체들이다. 건기식의 80%는 홈쇼핑에서 팔린다. 그런데 자라보고 놀란 홈쇼핑사들이 중기 제품 판매를 부담스러워 하면서 판로가 끊겼다. 실제 홈앤쇼핑의 건기식 취급액은 백수오 사태 직전 월평균 140억원이었지만 5월 이후 80억원으로 40%넘게 줄었다. 정관장 등 대기업 제품만 러브콜을 받는다. 이에 따라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새로운 건기식을 연구·개발하는 대신 해외 건기식이나 수퍼푸드(귀리·렌틸콩 등 영양가 높은 곡물)를 들여오는 수입상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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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백수오 제품 먹으란 건지 말란 건지 … 불안 키운 식약처
팜스빌의 이병욱 대표는 “건기식은 중소기업이 특화해서 하기 적합한 분야다. 외국은 건기식 하나로 매출 1조원을 하는 곳이 수두룩한데 우리는 하나의 사건으로 모든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세계 건기식 시장은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연평균 20%씩 성장하고 있다. 규모만 128조원에 달하는 시장에서 우리만 수출과 성장 양쪽 날개가 꺾일 위기에 놓였다.
백수오 사태는 업체의 허술한 제조 공정, 소비자원의 무책임한 발표, 식약처의 관리감독 부실이 빚어낸 뼈아픈 사례다. 그렇다고 정부의 해결책이 규제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결론지어져선 안된다. 오히려 건기식이란 무궁무진한 성장 분야에서 히든챔피언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안전성 검증은 철저히 하되 케이스별 효능을 인정하고 해외 인증 취득도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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