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영수증이 절세 수단?

김용덕 2016. 2. 2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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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녹취> 이00(소송 의뢰인) : "(이 현금영수증 보셨어요?) 아니요. 이거 못 봤는데요. 간이영수증도 못 받았어요."

<녹취> 모 성형외과 전 직원(대역) : "현금을 유도하고 할인해준다는 식으로... 영수증은 달라는 사람에 한해서 발급해줍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환자들은 할인 받았기 때문에 굳이 달라고 하지 않아요."

<녹취> 김우철(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 "현금 결제를 하게 되고 그 사실을 만약 신고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국세청에서는 탈세 여부를 파악하기 상당히 어렵겠죠."

<오프닝>

제가 이번 달 받은 월급 명세서입니다.

제 소득과 세금이 모두 적혀있는데요.

세금은 원천징수되기 때문에 제가 나라에 직접 낼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 자영업자들은 좀 다릅니다.

이들 스스로 소득을 신고해야 이를 바탕으로 과세할 수 있는 건데요.

현금 수입을 측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표가 현금영수증입니다.

때문에 변호사와 의사 등 직종은 현금영수증을 의무 발급해야 합니다.

그러면 과연 현금영수증이 제대로 발급되고 있을까요?

취재해봤습니다.

<리포트>

법원과 검찰청을 중심으로 수많은 법조인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이곳에 한 변호사 사무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여러 명의 변호사가 있지만 소송 수임은 따로 하는 이른바 '별산제 법무법인'입니다.

이 법무법인의 한 대표 변호사 측이 발행해서 가지고 있는 현금영수증 사본 4백여 장입니다.

통상적으로 현금영수증에는 전화번호나 주민번호 등 개인 정보를 등록합니다.

하지만 이 현금영수증들은 10여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010-000-**** 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전화번호가 적혀있습니다.

왜 이렇게 돼 있을까?

실제 의뢰인들에게 정확하게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사무실의 전직 직원은 말합니다.

<녹취> 변호사 사무실 전 직원 : "실제 현금영수증 번호가 정확하게 나가는 건 몇 건 안 돼요. 그래서 대부분 영수증을 요구한다 그러면 간이영수증(을 주고)"

취재진은 현금 영수증에 적힌 금액이 실제 수임료와 일치하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주 모 씨는 지난 2014년 소송 문제로 해당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착수금은 천만 원, 변호사 측은 이를 반씩 나눠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 씨는 말합니다.

주 씨가 받은 메모입니다.

변호사의 개인 계좌, 또 경리직원의 계좌가 적혀있습니다.

<녹취> 주00(소송 의뢰인) : "따로따로 사무장은 계좌를 써주더라고,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지 뭐. 규칙이 여기서 그런가 보다 하고."

주 씨는 계약 당일 돈을 나눠 입금했습니다.

변호사 측은 다음날 495만 원에 대해서만 현금영수증을 발행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의뢰인 주 씨는 현금영수증을 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녹취> 주00(소송 의뢰인) : "(보신 적 있으세요? 현금영수증?) 이게 누구한테 준 거예요? 그거 나는 본 적도 없고, 나한테 써준 적도 없고…."

또 다른 의뢰인 김 모 씨에게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198만 원짜리 현금 영수증.

그러나 의뢰인 김 씨는 착수금 2백만 원과 성공보수 3백만 원 등 모두 5백만 원을 지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변호사 측으로부터는 현금영수증이 아니라 5백만 원어치의 간이영수증을 발급받았다는 것입니다.

<녹취> 김00(소송 의뢰인) : "해달라 그랬더니 써주더라고요. (간이영수증으로?) 간이영수증인가 뭔가 해주더라고요. (현금영수증 이거 보신 적 있으세요?) 한 번도 못 봤어요."

현금 영수증이 발급된 것으로 돼 있는 다른 의뢰인들에게서도 현금영수증을 받은 적 없다는 증언은 계속됐습니다.

<녹취> 이00(소송 의뢰인) : "(현금영수증 혹시 보셨어요?) 아니요. 이거 못 봤는데요. 간이영수증도 못 받았어요."

<녹취> 고00(소송 의뢰인) : "(현금영수증) 4백만 원 끊었다는 게 참 이해가 안 가는 게 뭐냐면 천만 원 줬는데... (전혀 보신 적 없으세요?) 네 없습니다."

취재진이 의뢰인 8명을 확인해본 결과, 현금 영수증에 등록된 금액은 실제 의뢰인들이 지급했다는 수임료보다 3,250만 원가량 적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 전 직원은 현금으로 수임료를 받아서 수입을 줄여 신고하는 사례가 수시로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녹취> 변호사 사무실 전 직원 : "의뢰인이 '얼마 입금했습니다' 이러면 사무장이 여직원한테 가서 은행에 가서 얼마 찾아와라 이렇게 지시합니다. 그러면 여직원이 사무실 앞에 있는 은행에 가서 5만 원권으로 다 찾아오고 그래서 사무장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사무장이 대표한테 전달하는 방식이죠."

이 과정에서 변호사가 메모 등을 통해 현금영수증을 발행할 금액을 지시했다고 전 직원은 말합니다.

<녹취> 변호사 사무실 전 직원 : "현금을 금고에서 꺼내서 (법인 통장에) 입금을 하고 그 입금된 내역만큼 여직원에게 현금영수증 발행하라. 대부분 다 여직원 통장 혹은 대표 개인 통장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법인 통장에 있는 내역은 대부분 조작된 거죠."

소득세법 시행령은 현금을 받은 날부터 5일 이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회계전문가들은 받은 돈을 나눠서 영수증을 발급할 수 없고 또 법인 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로 대금을 받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경률(공인회계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고 특정 전화번호를 입력하지 않고 010-000-0000으로 하게 되면 (의뢰인은) 자기 금액이 얼마가 됐는지 확인할 수가 없고 전문직 입장에서는 국세청에 신고했다는 어떤 의례를 남기게 되는 거죠."

변호사를 만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녹취> 변호사 : "3년 치 750건 중에서 8건만 해서 지금 이게 문제가 있다 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적절치 않은 것 같고. 탈세하고 일부러 그런 의도도 없었고 실질적으로도 그렇게 안 한다."

또 취재진이 조사한 몇몇 사례 같이 의뢰인들과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 다툼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려고 금액을 나눠 신고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행정비용을 빼고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변호사 : "(직원 통장 사용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이런 얘기를 작년 초엔가 들었어요. 작년에 거의 한 적이 없을 겁니다. 나 없을 때 비용 같은 거 할지는 몰라도 (그 뒤부터) 선임료를 여직원 통장으로 받고 한 적은 없어요."

일부 금액이 누락된 것은 사실이지만 추후 모두 정상 신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메모를 통한 현금영수증 발행 지시는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변호사 : "현금영수증 원해서 해달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거는 신경 안 쓰고 우리는 그냥 가지고 있고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 건지 그런 것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성형외과입니다.

이 병원은 2014년 한 여고생이 수술을 받고 숨진 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등으로부터 수술 의사를 바꿔치기하는 이른바 '유령 수술'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탈세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매출액의 상당액을 줄여서 신고했다는 것입니다.

<녹취> 김선웅(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지난해 12월) : "(성형외과 의사) 두 명이 자기 수술 내역 수술 금액 전화번호 뒷자리 그다음에 주민번호 앞자리 그걸 가지고 나왔어요. 두 명 분량의 2년 치입니다. 그게 110억에서 120억 정도의 매출로 봐요. 1/3 정도만 현금영수증이나 카드로 발행돼 있고 나머지는 다 2/3는 다 누락시킨 걸로 되어있어요."

취재진이 입수한 이 성형외과의 내부 전산망 기록입니다.

메모란에 적힌 '카취현'은 '카드 취소 현금', 즉 카드로 결제된 계약금을 취소하고 현금으로 다시 결제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현금을 가져오도록 안내하라는 지시도 적혀있습니다.

<녹취> 성형외과 전 직원(대역) : "현금을 유도하고 할인해준다는 식으로... 영수증은 달라는 사람에 한해서 발급해줍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환자들은 할인 받았기 때문에 굳이 달라고 하지 않아요. 현금을 찾아오라고 해요. 그러니까 200만 원, 300만 원을 가서 옆의 은행이나 이런 곳에 가서 다 찾아서 오세요."

검찰은 이 성형외과에 대해 '유령 수술'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벌여 지난해 초 세금 추징 결정을 내렸습니다.

<녹취> 김선웅(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 : "'한국형 공장형 유령수술실' 맨 마지막에는 결국 탈세가 가능하기 때문에 책임도 안 지는 일까지 벌어지죠. 차트는 어차피 진료기록부는 완전히 다 없앨 수 있죠."

그러나 성형외과측은 병원에 대해 제기된 모든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세금을 추징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모두 끝난 일이라며 상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추징 부분은 행정 착오나 실수에 따른 부분으로 소득 탈루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근의 또 다른 성형외과도 탈세 의혹이 제기돼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경찰도 지난해 말 병원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섰습니다.

이 병원의 매출 일계표입니다.

곳곳에 알파벳 Z 표시가 눈에 띕니다.

중국인 환자를 데려온 여행 가이드에게 지급한 소개비를 의미한다고 이 병원의 전 직원은 주장합니다.

<녹취> △△ 성형외과 전 직원 : "(가이드에게) 50%를 주고도 병원에서 이윤을 남겨야 하니 세금은 탈세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금액은 올릴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시술 비용을 현금으로 받거나 중국 환전상이 사용하는 카드 단말기를 이용해 수입을 누락시키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 성형외과 전 직원 : "환전상이 그 기계를 갖다놔요. 한 개를. 그리고 금고에 2억 원 정도를 예치해놔요. 그러면 수수료가 7%에요. 만약 5천만 원을 카드를 긁었다 그러면 2억 원에서 7%를 뺀 금액을 대표 원장이 가져가는 거죠."

성형외과측은 세무조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답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변호사나 병원이 차명 계좌로 현금을 받아 현금 영수증 액수를 줄이거나 미발행하는 방식으로 탈세를 하는 것은 매우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합니다.

<녹취> 김경률(공인회계사) : "없는 비용을 올리는 것은 쉽게 발각될 수 있으니까 수익 금액을 누락하는 건데, 이런 변호사분들이나 의사 분들의 이런 수법, 차명계좌를 통한 이와 같은 현금 수임 누락은 아주 전형적인 수법인거죠."

그러나 이런 사실이 드러나 세무조사 결과 추징을 당하더라도 형사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법률상 국세청 고발 없이는 검찰의 기소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2014년 전체 세무조사 건수 1만 7천여 건 가운데 고발로 이어진 경우는 2.2%인 386건에 불과합니다.

<녹취> 김우철(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 "탈세를 여전히 할 수도 있는데 걸리면 운이 없는 것 이런 어떤 잘못된 인식 때문에 세무행정도 약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 미국의 경우는 한국과 달리 예외 없이 처벌하고 처벌당하면 대가는 매우 혹독합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선언했습니다.

<녹취> 박근혜 대통령(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2013년 9월) : "특히 탈세는 대한민국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나만 잘살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로 뿌리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국세청은 이듬해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 270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1,232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년간 추징액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고소득 자영업자 전체에 대한 세무조사 추징액이 2.5배 증가한 것과 비교한다면 낮은 수준입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한지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금 영수증 축소 발급을 이용한 변호사나 의사들의 탈세 의혹은 여전합니다.

탈루 세금을 추징하는 것 뿐 아니라 가산세나 형사 처벌 강화 처럼 실질적으로 탈세 시도를 막을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김용덕기자 (kospiri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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