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때는 급성질환.. 지금의 경제 위기는 만성질환

양모듬 기자 2015. 12. 1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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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위기 경보] [下] - IMF 때와 같은점 외환위기 직전엔 기업부채.. 지금은 가계부채가 한계치 中·日에 끼인채 개혁 지체 - 다른점 1997년 외환보유액 바닥.. 2015년 3696억달러 보유 "만성질환이 치유 더 어려워"

최근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 상황이 1997년 외환 위기 직전과 흡사하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엔저 공세로 기업의 수출 경쟁력과 채산성이 약화되고, 부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외환 위기 직전엔 기업 부채가, 현재는 가계 부채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각종 개혁이 지체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1996년에는 국제 기준에 맞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총파업 등 혼란이 있었다. 지금은 노동개혁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 등 구조 개혁 법안이 야당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한국 경제의 처지도 닮았다. 1997년 처음 등장한 단어 '넛 크래커(선진국에 밀리고 중국에 쫓기는 상황을 빗댄 표현)'는 최근 중국이 우리와 기술 격차를 좁혀오자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1997년 같은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에 빠질 가능성을 거론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위기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현재 위기의 본질은 일본이 1990년대 초반 겪었던 것과 같은 장기 불황과 저성장이란 구조적 위기"라며 "연쇄적인 부실기업 부도로 금융시장에 신용 경색이 발생했던 1997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1997년 외환시장 불안이란 바이러스가 아시아를 휩쓸 때 상대적으로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약했던 한국이 쉽게 쓰러진 것"이라며 "지금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급성장해온 한국 경제에 조로(早老)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이어서 위기의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 위기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외환시장의 급한 불을 끌 실탄(외환보유액)이 부족해 발생했다. 외환 위기가 발발하기 직전인 1994~1996년 3년간 한국은 총 390억달러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불황인데도 경상수지 흑자는 넘쳐나 경제 체력에 비해 원화 가치가 고평가되는 걸 걱정하는 상황이다. 46개월 연속 무역 흑자, 사상 최대 무역 흑자 기록을 써나가는 중이다. 10월 현재 3696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도 전 세계 6~7위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 외환보유액이 332억달러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달러 곳간이 든든해졌다.

무리하게 빚을 내서 사업하던 기업 경영 풍토도 크게 달라졌다. 1996년 기업의 자산 대비 부채 정도를 나타내는 기업부채비율은 335.61%까지 치솟았고 외환 위기가 발생한 1997년에는 424.64%까지 올라갔다. 당시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이 519%에 달했다. 2014년 현재 기업부채비율은 134%, 차입금 의존도는 32.2%로 떨어졌다. 그 덕에 바깥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20년 전에는 외신들이 한국 경제의 취약점을 거론하며 외환 위기 가능성을 집중 제기한 반면, 현재는 글로벌 위기에도 비교적 선방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근본적 차이에도 20년 전과 비교해서 한국 경제 위기론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만성 질환에 무뎌진 위기 불감증을 심각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가 깔려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외환 위기가 급성질환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사람으로 치면 비만이나 성인병 같은 만성질환이어서 20년 전처럼 순식간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치유는 지금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경제 상황은 외환 위기 당시처럼 실물경제가 단기간에 충격받고 크게 쪼그라드는 위기는 아니지만 경제 청사진을 그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의 위기"라면서 "외환 위기 당시에는 '극복하면 밝은 미래가 온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희망이 부족한 시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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