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습관 버리면 월 120만 원도 충분"

2015. 10. 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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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벌자!” 22년간 기자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는 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들으면 ‘참 배부른 소리’라고 할 만하다. ‘그것도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란 비아냥거림(?)도 적잖이 들었다. 하지만 올해로 4년째, ‘돈 벌기’를 그만두고도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이를 ‘자발적 가난 실험’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 강원도 화천으로 ‘행복 이민’을 택한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장의 이야기다.

‘자발적 가난’ 택한 귀촌

김 소장은 20대 후반 기자를 시작해 세계일보·파이낸셜뉴스·머니투데이 등에서 일했다. 2011년 무렵 그의 나이 딱 만으로 쉰이 되던 해 사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2년 강원도 화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꼬박 22년을 경제 기자로 살면서 ‘시사경제 포인트 따라잡기’ 등 경제 관련 서적도 몇 권 냈다.

“도시에서의 나는 늘 이 사건에서 저 사건, 이 약속에서 저 약속으로 바쁘게 옮겨 다녔지요. 기계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무감각하게 평생을 돌다가 결국 무덤에서 쓰러져 멈추게 될 것이 분명했죠.”

‘불편하고 화려한 옷’을 계속 입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편한 옷 한 벌’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옷 한 벌에 만족한다면 굳이 화려한 옷을 장만하기 위해 돈을 더 벌 필요가 없었다. 김 소장은 본격적인 ‘인생 실험’준비에 돌입했다. 당시 그의 밑천은 5억2000만 원, 그가 평생 직장 생활을 하며 꾸준히 모은 돈이었다. 이 중 4억1000만 원은 아파트 한 채를 팔아 장만했다.

우선 김 소장은 전원주택을 짓는 데 땅값을 포함해 1억8000만 원을 투자했다. 은퇴 후 1년여간 귀촌을 준비하는 데 16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2억5000만 원으로는 오피스텔 두 채를 샀다. 더 이상 벌지 않고 연금처럼 쓸 수 있는 ‘임대료 수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남은 돈 가운데 훗날 아들의 학비를 위해 5400만 원, 또 아들과 함께 배낭여행 할 비용으로 1000만 원을 떼어 놓았다. 1000만 원은 귀촌 후 비상금으로 쟁여 둔 돈이다. 그야말로 ‘돈 한 푼 남기지 않고 죽기 위한’ 인생 계획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버는 법’만 고민합니다. 목숨을 걸고 끝도 없이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은 쓰기 위해 버는 것입니다. 돈을 그만 쓰는 것 또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제 삶의 전략으로 선택한 겁니다.”

김 소장이 새로운 인생 실험을 위해 도시가 아닌 농촌을 선택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소비 시장이다. ‘그만 벌고 그만 쓰는’ 실험을 위해서는 우선 돈 중독, 소비 중독, 물질 중독에서 벗어나야 했다. 자연의 삶은 기본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 진짜로 귀한 것이 다 공짜다.

그중에서도 강원도 화천을 택한 것은 ‘인연’이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화천군에서는 도시민 귀촌 사업으로 전원마을 부지를 조성해 분양했는데, 운 좋게도 2009년 무렵 김 소장이 귀촌을 준비하던 시기와 딱 맞아떨어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1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새로 전원마을을 조성해 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마을 기반 공사 과정이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1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몇 가지 인허가 요건을 놓고 군청과 줄다리기를 벌이는 과정도 힘겨웠다. 마을이 조성되기까지 입주민 20여 명은 3년간 모두 4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쳐야 했다.

집터를 마련하는 것만큼이나 집을 짓는 것 또한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환상을 땅 위에 그대로 실현하려니 돈이 비쌌다. 예산에 맞춰 집을 설계하고 시공하려니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았다. 단가를 아무리 낮추려고 해도 단열재 등 가격은 자꾸만 불어났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고 완성된 집에 김 소장은 ‘태평가(家)’라는 이름을 붙였다.

‘태평가’가 완공되고 2012년 이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김 소장은 올해로 귀촌 4년 차를 맞았다. 그는 이곳에서 ‘한 달 120만 원’에 모든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오피스텔 두 채에서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임대료가 바로 그의 생활비 전부인 셈이다.

한 달 120만 원, 행복한 백수의 삶

처음엔 곧잘 삐걱대던 ‘한 달 120만 원으로 살기’도 4년이 지나고 보니 이젠 꽤 익숙해졌다. 김 소장은 여동생과 둘이 산다. 건강보험료 15만 원을 내고 남은 105만 원을 여동생 45만 원, 김 소장 60만 원으로 나눈다. 45만 원은 장을 보고 밥상을 차리고 생활용품을 사는 집안 살림 비용이다. 김 소장의 몫인 60만 원 중 15만 원은 공과금이다. 상수도·전기·인터넷·휴대전화 요금이 포함된다. 남은 45만 원으로 난방을 하고, 자동차를 굴리고 명절을 지내고 경조사비를 내고 용돈을 쓴다.

“처음엔 120만 원 예산을 맞추지 못할까 싶어 마음 졸이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몸에 밴 ‘도시적 소비 습관’을 버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거든요. 생활 습관들을 바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무난히 맞춰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 지 4년이 됐는데 아직까지 적자를 낸 적이 없거든요.”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자동차였다. 기름값은 아끼고 아껴 한 달 5만 원인데 자동차 보험료, 환경 부담금, 정비료 등등 유지비가 15만 원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었다. 경조사 비용도 예상치 못한 지출을 부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은 그 비용을 많이 줄였지만 초창기만 하더라도 경조사비는 그에게 수시로 예상치 못한 지출을 안기는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이처럼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김 소장이 얻은 것은 ‘시간’이다. 화천에서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엔 요가 수업을 듣고 글을 쓴다. 저녁에는 집 근처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걷는다. 그 외의 시간엔 책을 읽는다. 걷고 쓰고 읽고, 그의 하루는 이 ‘삼박자’로 굴러간다.

“도시에서 하루 열 가지 일을 했다면 시골에선 한두 가지면 됩니다. 시골에 와서도 일 중독증을 버리지 못해 틈만 나면 일을 벌이고 일이 없으면 심심해 어쩔 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나니 내 삶은 한가해졌는데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삶에서 일을 빼고 나니 공백이 컸죠. 하지만 요즘엔 일이 없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우리 마을 최고의 한량입니다. 하하.”

그는 기자의 삶은 은퇴했지만 요즘에도 꾸준히 칼럼과 책을 쓰고 있다. 머니투데이에 10년 넘게 ‘웰빙 에세이’를 연재 중이며 귀촌 이후 3년간 ‘삶에게 묻지 말고 삶의 물음에 답하라’, ‘어느 날 나는 그만 벌기로 결심했다’, ‘윌든처럼’이라는 세 권의 책을 펴냈다. 대부분이 그의 행복 철학과 인생 실험을 담은 글이다.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래 찌질하게 살아야 할까(omps***)”라는 댓글이 달리면 그 아래 “찌질한 게 아니라 검소한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vemp**)”라는 반박 댓글이 따라붙는다. ‘120만 원으로 한 달을 사는’ 인생 실험 자체가 수많은 논쟁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김 소장은 어떨까. 지금의 귀촌 생활에서 그가 원하는 행복을 찾는 데 성공했을까.

“물론 더 행복하지요. 100점은 아니지만 90점은 됩니다. 저는 제 ‘삶의 철학’을 따라 귀촌을 선택했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마음가짐 그대로 시골로 오면 적응하지 못합니다. 모든 게 불편하고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고민만 더 깊어지는 이들을 적잖이 봤거든요. 그러니 자연 속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겠다는 다짐,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삶을 누리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철학의 전환’이 없으면 귀촌은 필패입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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