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획·1인 편집 '독립출판'시대 온다 - 거리공연 노하우·회사 잘 그만두는 법 등 소개.. 책 크기·디자인 내 맘대로 하는 인디 출판

권벼리 인턴기자·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2015. 7. 3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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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번 책을 내 볼까?" 직장인 정인성(29)씨는 평소 30살이 되기 전 20대 때 추억을 담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형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것은 유명 작가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방문한 연남동의 한 서점 별책부록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월간 잉여>, <두 번째 퇴사>, <비밀기지 만들기> 등 톡톡 튀는 이름의 책들은 유명 작가와는 거리가 먼 일반인들이 낸 것이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독특하고 다양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독립출판'으로 출간했다는 점이었다.

▲독립출판은 출판사 주도의 유통 체계를 뒤바꾼 새로운 출판 시스템이다.

정씨는 일기장과 개인 홈페이지에 적어둔 기록들을 모았다. 동시에 미국 어도비(Adobe)사에서 나온 인디자인(Indesign)이라는 편집 프로그램을 독학했다. 충무로의 한 인쇄소를 찾아가 500부를 초판 인쇄하는 것도 직접 했다.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3개월 후, 정씨는 '의미 있는 20대를 보내게 해준 15권의 책'을 주제로 <머물러 있는 청춘>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별책부록을 비롯해 현재 11개의 독립출판 전문서점에서 정씨 책을 판매 중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책을 홍보한 결과, 고객들의 개별 주문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그는 SNS로 독자들의 서평을 실시간으로 받아보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존 유통관행 벗어난 1인 출판시대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독립출판'의 시대가 왔다. 독립출판이란 △책이 만들어지는 방식 △주제의 다양성 △출판 의도 △작가와 독자 간 관계라는 4가지 측면에서 대형출판사가 주도하는 기존 출판관행으로부터 벗어난 출판방식을 말한다.

제작 측면에서 독립출판은 1인 혹은 소수의 작가가 집필, 디자인, 인쇄, 출판, 유통, 판매, 홍보에 이르는 책 출판 과정 전체를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규모 출판'이나 '자가 출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맞춤형 소량 인쇄가 가능하기 때문에 책의 외형도 기존의 152×225 mm 직사각형 형태의 일률적인 책 모양과는 다르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재단을 하거나 다양한 질감의 종이를 사용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각 인쇄를 하는 등 원하는 대로 책을 찍어낼 수 있다.

또 독립출판물은 기성출판물에 비해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작가가 직접 출간하기 때문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독립출판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예를 들어, 독립출판 서적 <두 번째 퇴사>에는 퇴사를 잘 할 수 있는 노하우와 함께 퇴사 이후의 삶이 담겨 있다. 잡지 <66100>에서는 모델들은 날씬해야만 한다는 편견을 깨고, 여자는 66사이즈(Medium 사이즈) 이상, 남자는 100사이즈(Large 사이즈) 이상인 모델들의 화보식으로 빅사이즈 패션을 소개한다. <우주 우표 책>은 세계 각국의 우표 중 우주에 관련된 것만을 골라 만든 도감(圖鑑)이다. <그의 작은 고양이>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담은 만화다.

또 독립출판 방식으로 만들어진 여행서적에는 멋진 사진과 관광 명소, 입장료를 소개하는 평범한 내용만을 담고 있지 않다. 가령 <기타는 왜 들고 다녀?>에는 세계음악페스티벌 탐방기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버스킹(거리에서 연주나 노래를 하고 행인들에게 돈을 받는 일종의 거리 공연)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 또 <오픈 투 클로즈(OPEN TO CLOSE)>는 세계 각국의 창문 사진 모음집이다. <버스생각>은 서울에서 파란 버스를 타고 관광버스 못지않은 투어를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독립출판 방식의 책으로는 누구나 여행 플래너가 될 수 있다. 자신만 알고 있는 명소들이 포함된 여행코스를 실제 여행 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브로셔 사이즈로 인쇄할 수 있다.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 부르는 청춘들의 고뇌를 다룬 잡지에서부터 성소수자 이슈를 포함,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선 등 소재가 다양하다. 계간지나 월간지 등 정기적 간행물도 많다. 독립출판서점을 즐겨 찾는 미술전공생 최소희(25)씨는 "독립출판서점에 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책들을 읽게 된다"면서 "기존 책이나 교과서에서는 최신의 경향이 그때그때 반영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느껴졌던 것과 달리 독립출판물들은 굉장히 트렌디하고 개성이 강해 작품 활동에 큰 영감을 받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유럽 여행을 앞두고 독립출판서점을 찾은 이상윤(27)씨도 "기존 여행책자들이 천편일률적인 데 반해 독립출판 여행서에는 특별한 테마를 가진 여행기가 많다"고 말했다.

작가와 독자, 그리고 서점 간 소통이 자유롭게 이뤄진다는 점도 특징이다.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독립출판전문서점 헬로 인디북스에서는 독자들의 도서 추천 이유와 작가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책 위에 빼곡히 붙어 있다. 서점을 통해 작가와 독자 간의 즉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 상 활동에서도 두드러진다. 개인이 책 출판의 모든 과정을 직접 하기 때문에 따로 비용이 들지 않는 SNS를 통한 책 소개가 가장 기본적인 홍보 방식이다.

작가들은 SNS를 통해 자신의 책을 알리고 독자들은 SNS를 통해 감상평을 전하는 등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립출판 서점 주인이 작가에게 먼저 제안해 출간하기도 한다. 영화 상영회, 독서 토론회, 독립출판 강좌 등 독립출판전문서점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서점 SNS를 통해 공지된다.

▲유어마인드에는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건축, 사진 관련 독립 서적이 많다.

SNS 통해 서점·작가·고객 소통작가가 책을 내는 의도 또한 기존 출판시장과는 사뭇 다르다. 일반 출판 시장에서는 소위 '시장에 팔릴 만한 콘텐츠'가 중요시되는 데 비해 독립출판 시장에서는 작가 본인의 '표현 욕구'가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업이 아닌 부업으로 책을 내고 있다는 것이 큰 이유다. 공급방식 역시 대형출판사로 대표되는 기존 서점의 유통망에서 벗어나 독립출판전문서점을 통해 나온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가 직접 자신이 출판한 책을 가지고 서점을 방문해 책을 배포할 수 있다.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는 "독립출판에서는 발간물을 통해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가 중요하다"며 "독립출판은 대형 출판사와 대량 생산체계가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작은 시스템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6~7년 전부터 시작된 국내 독립출판시장은 현재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든 상태다. 독립출판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독립출판전문서점은 전국적으로 40개 정도 된다. 서울에서는 대부분 홍대 인근과 이태원, 경복궁 등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작년과 올해 문을 열었다.

아직까지 국내 독립출판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라고 볼 수 있겠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확실한 자리 매김을 한 상태다. 국내에서도 조금씩 자리가 잡혀 나가고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지난 3월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이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독립출판물 특별전시를 열었다. 연계행사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강사로 나선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한국 독립출판시장은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1990년대 사회적 배경과 2000년대 들어 기성세대와는 다른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표현욕구가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다양한 편집 소프트웨어 등이 출시되면서 자체적으로 책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독립출판 시장이 성장한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정준민 전남대 교수는 "성장기를 맞은 독립출판이 앞으로도 하나의 문화영역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비주류라는 정체성에 맞게 지속적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현 퇴근길 책 한잔 대표도 "현재 독립출판 시장은 15년 전 서울 홍대에 처음 클럽이 생기고 기존 메이저 음악과 반대되는 모든 음악들이 '인디음악'으로 묶이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라면서 "아직은 정확히 독립출판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대형출판사들이 주도하던 경직된 출판시장에서 독립된 시장의 니즈(수요)가 존재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출판계에서는 독립출판이 '반짝 인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출판계에서 담아낼 수 없는 새롭고 혁신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각 독립출판전문서점들을 중심으로 누구나 쉽게 독립출판을 할 수 있도록 책 디자인부터 소량 인쇄 노하우까지 알려주는 맞춤형 강좌도 속속 열리고 있다. 과거 대형출판사의 편집 디자이너였지만 최근 서울시 노원구에 독립출판전문서점 반반북스를 열고 예비 독립출판 작가 지망생들에게 어도비 인디자인(Adobe Indesign)을 강의하고 있는 유지연 대표는 "점점 기성출판이 할 수 없는 부분들을 독립출판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문 서점에서 다양한 지원 서비스 벌여그렇다면 독립출판을 통해 책을 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쓰고 싶은 콘텐츠를 정한 뒤, 편집과 디자인을 거쳐 책의 크기, 표지와 내지로 쓰일 종이의 재질 등을 결정하면 된다. 최근 <머물러 있는 청춘>이라는 에세이를 펴낸 정인성 씨의 경우를 보자. 평범한 직장인인 정씨는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책을 출간했다. 주제를 정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데만 약 두 달이 소요됐다. 여기에 편집하는 데 약 2주, 인쇄에 약 2주가 걸리는 등 기획부터 출판까지 총 3개월이 걸렸다. 정씨는 파워포인트와 엑셀만을 간신히 다룰 줄 아는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지만, 독립출판을 위해 시중에 나온 인디자인 관련 도서로 독학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각 독립출판전문서점의 인디자인 강좌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책이 완성되면 서울 을지로와 경기도 파주 부근의 인쇄소에서 원하는 부수만큼 소량으로 인쇄를 맡길 수 있다. 사업자등록비용과 인쇄비 등 정씨가 책을 500부 출간하는 데 든 돈은 150만원 정도다. 유통방식도 기존 단행본 시장에 비교해 단조롭다. 대다수의 독립출판전문서점은 대개 독립출판 취지에 공감하는 책은 대부분 입점시켜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서점마다 한 번에 들여놓는 부수는 책 하나당 5~10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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