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55년 만의 후속작 '파수꾼' 논란 전모

윤예나 기자 2015. 7. 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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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보물의 발견일까, 나이든 대작가의 유명세에 기댄 과욕이 빚은 무리수일까. 베스트셀러 '앵무새 죽이기'의 미국 작가 하퍼 리(Harper Lee, 89)가 55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파수꾼(Go Set a Watchman)'을 두고 갖가지 화제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는 1960년 출간한 자신의 첫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작가다. 1930년대 미국 남부 흑백 갈등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40여개국에서 번역돼 4000만부 이상 팔렸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위' '영국인들이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1위'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다. 출간 이듬해인 1961년엔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에도 번역돼 인기를 끌었다.

첫 작품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성공을 거둔 리는 그 뒤로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았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도 극구 피해왔다.

그런 그가 두 번째 책을 낸다는 지난 14일 소식은 전 세계 출판계와 독자들을 설레게 했다. 판권을 가진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신작 '파수꾼'을 미국에서만 초판을 200만부 찍었고, 아마존은 "'해리포터' 시리즈 이후 선(先)주문이 가장 많은 책"이라고 밝혔다. 국내에도 출판사 열린책들이 초판 10만부를 찍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의 아마존, 반스앤노블 등 대형 서점마다 판매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리의 신간 발표를 전후해 불거지기 시작한 의혹은 출간 후에 더욱 커지고 있다. 작품이 공개된 후 이에 대한 영미권 주요 언론과 평론가들의 리뷰도 대체로 싸늘하다. "전작 '앵무새 죽이기'의 미래 독자들까지 흥미를 떨어뜨리게 한 소설"이라며 "차라리 출간 되지 말았어야 할 책"이라는 탄식까지 나온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외신 보도를 토대로 그 전모를 짚어봤다.

◆하퍼 리 '55년 만의 신작 발표'...작가의 진심일까?

하퍼 리의 미발표 작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2월 3일 "작년 가을 1950년대 중반 리가 쓴 미발표 작품이 발견됐다"면서 "이를 7월에 출간하기로 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당시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작품의 원고를 발견한 사람은 하퍼 리의 개인 변호인이자 현재 언론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토냐 카터(Tonja B. Carter)였다.

출판사에 따르면 카터는 작년 가을, 리의 기록물을 보관해두는 곳에서 '앵무새 죽이기' 원본 원고와 함께 있던 '파수꾼' 원고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출판사를 통해 "이 원고를 처음 발견했을 때엔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주변의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 함께 살펴본 뒤 출판할 가치가 있다는 데에 확신을 얻었다"며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하퍼콜린스는 리의 법률 대리인인 카터와 이 책의 출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던 리도 이 계약을 지지했다고 카터는 전했다. 리는 카터를 통해 발표한 성명문에서 "나는 이 원고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내 소중한 친구이자 변호사인 카터가 이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너무나 깜짝 놀랐으며 기뻤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작가의 뒤늦은 후속작 출간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의혹이 불거졌다. 첫 작품의 성공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다른 작품을 내놓지 않았던 작가가 돌연 결심을 바꾼 배경을 두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더욱이 고령의 작가가 외부와는 차단된 채 대리인을 통해서만 의견이 전달되는 사실도 의구심을 키웠다.

2004년부터 리의 이웃이며 친구였다는 마자 밀스는 당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뇌졸중을 일으켜 시력과 청력이 온전치 못한 상태인 채 요양 시설에서 지내는 리가 출간 과정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신작 출간을 두고도 저자인 리가 자신의 의사표명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뤄진 결정이라는 내용의 고발장이 리의 고향인 앨라배마주 법원에 접수되기도 했다. 주정부는 지난 3월 조사관들이 리가 거주하는 요양 시설을 방문한 결과, 작가가 출간을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조사를 끝냈다.

◆'앵무새 죽이기'의 미숙한 초고…"출간 말았어야 할 책"

신작 '파수꾼'의 작품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무성하다. 1957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 집필의 기반이 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NYT 보도에 따르면 리는 1957년 2월 이 소설을 먼저 완성한 뒤 출판사에 보냈다. 그러나 '파수꾼'에서 스카웃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매료된 담당 편집자는 "시점을 과거로 돌려 다시 써보라"고 강력히 권했다. 그 권유에 따라 고쳐 쓰기 시작한 원고가 2년여 뒤에 완성됐고, 바로 이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 였다는 것.

공개된 '파수꾼'의 내용을 보면 원고 집필 시기는 앞서지만, 줄거리는 '앵무새 죽이기'의 속편 격이다.

1930년대 미국 남부가 배경인 '앵무새 죽이기'에서 여섯 살이던 주인공 스카웃이 26세 성인으로 자라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애티커스와 만난다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주인공 스카웃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에도 살인 누명을 쓴 흑인 소년을 변호한 영웅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파수꾼'에서 스카웃은 아버지가 원래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와 대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2006년 하퍼 리의 전기를 펴낸 작가 찰스 J 실즈는 "리가 출판사와 주고받았던 초기 서신에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했는데, 당시엔 이 두 개를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앵무새 죽이기'를 수정하기 전에 쓴 원본으로 생각했다"고 썼다. 그는 NYT에 "'파수꾼'의 많은 구절이 '앵무새 죽이기'에 다시 쓰였고, 아마 그 구절들은 최상의 부분들일 것"이라며 "이 소설이 얼마나 '진짜 작품'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온라인 매체인 쿼츠 등은 두 소설 속에서 유사하거나 심지어 단어까지 완전히 겹치는 문장들을 찾아 제시하며 신간의 '독자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인 가상의 마을 '메이콤(Maycomb)' 이름의 기원에 대한 설명, 알렉산드라 고모가 일요일에 입는 코르셋에 대한 묘사, 알렉산드라 고모의 성격에 대한 묘사, 이름이 같은 두 '커닝햄' 일가에 대한 일화 같은 대목에서는 설정 뿐만 아니라 문장과 단어 선택이 완전히 똑같다는 것이다. ►쿼츠 관련 기사

작품을 읽고 난 미국내 평론가들의 리뷰도 실망스럽다거나 전작 '앵무새 죽이기'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NYT의 평론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보여준 서정성이 없다"고 평했고, 평론가 마크 로슨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소설"이라는 평을 실었다. 영국 주간 더 스펙테이터는 "진부한 표현으로 가득 찬 습작"이라며 "출간되지 말았어야 할 책(should never have been published)"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신랄하게 비평했다.

◆접근불가 작가를 대리한 변호인을 둘러싼 의혹

이 작품을 처음 발견했다고 밝힌 카터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카터 변호사는 원래 출판사 간 연락을 담당하는 연락책이자 외부에 리의 입장을 전하는 대변인 역할을 맡아왔다. 법률적 후견인이었던 리의 친언니가 작년 가을 세상을 떠나면서 법률 대리인 역할까지 맡고 있다.

NYT는 앞서 '파수꾼' 출간 계획이 발표된 후 지난 2일 "카터가 작년에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리의 소설 '파수꾼'은 사실 2011년에 발견된 것"이라며 출간 경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경매회사 소더비의 희귀서적 전문가 저스틴 칼드웰이 2011년 10월, 당시 리의 저작권 업무를 맡고있던 사무엘 핑커스, 출판사와의 연락책이던 카터 변호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 원고를 봤다는 것.

당시 칼드웰은 이 원고의 첫 20쪽 정도를 읽으면서 '앵무새 죽이기'의 원고와 대조 작업을 벌였고, 이 자리 함께 있던 핑커스, 카터에게 "이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의 초기 버전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소더비는 공식 성명을 통해 "2011년 10월 12일 칼드웰이 핑커스의 요청에 따라 보험 계약 등 여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먼로빌을 방문했으며, 당시 핑커스, 카터와 함께 만났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카터는 이런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당시 그 자리에 간 것은 앨리스 리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NYT는 "카터가 작품을 발견한 시점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작년 가을'이라고 밝혔다가 최근엔 '8월'로 바꿔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수꾼'을 출간한 하퍼콜린스는 "카터가 2011년 소더비와의 만남에 대해선 언급한 적이 없으며, 작년 8월 원고를 처음 발견했다는 그의 주장을 믿는다"고 밝혔다.

◆논란 불구 "올해 최고 베스트셀러로 예상"

책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15일 경제전문지 포천은 대형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의 발표를 인용해 "'파수꾼'이 2015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에서는 이날 현재 '파수꾼'과 '앵무새 죽이기'가 나란히 베스트셀러 1, 2위에 올라 있다. 영국 북셀러 매거진은 이 작품의 영국판 공식 판매사인 펭귄랜덤하우스의 발표를 인용해 "첫날 영국에서만 10만5000부가 판매됐다"고 전했다.

교보문고 브랜드홍보팀의 진영균 대리는 "예약 판매를 합친 첫날 판매량이 600부 정도로 집계됐다"면서 "일주일 정도 지나봐야 정확한 반응을 알 수 있겠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하퍼 리(Harper Lee, 1926~)

1926년 4월 앨라배마 주 먼로빌에서 변호사이자 주의회 위원의 딸로 태어났다. 4남매 가운데 막내였던 그는 웬만한 사내아이보다 거칠게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헌팅턴 여자대학과 앨라배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1년 동안 수학하기도 했다.

학생 시절 짤막한 글을 발표하던 그는 이스턴 에어라인 등 항공사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56년부터는 항공사를 그만두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글쓰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57년 '파수꾼'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출판사에서는 이 작품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 뒤 2년여 개정 작업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 1960년 출간한 '앵무새 죽이기'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미국 전역에서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작에 선정됐다. 1962년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됐고, 애티커스 핀치로 분한 그레고리 팩은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언론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고 은둔 생활을 해 왔다. 2007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시력과 청력이 매우 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544쪽 | 1만2800원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주 가운데 하나인 앨라바마주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대공황으로 피폐했던 193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6살 소녀 스카웃의 순수한 눈으로 사회계층, 인종 간의 대립을 그려냈다. 젊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청년을 백인 변호사인 스카웃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변호하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흑인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미국 청소년의 필독서가 된 책이다.

◆파수꾼

하퍼 리 지음 |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424쪽 | 1만2800원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스카웃이 20대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흑인 인권 운동 움직임이 크게 일던 1950년대 중반이 배경이다. 뉴욕에 살던 스카웃이 고향으로 돌아와 과거를 돌아본다는 내용이다. 집으로 돌아온 스카웃은 어린 시절 흑인을 변호하며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 차별 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아버지와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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