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맵·김기사에 밀려도 혈세 계속 쏟아부은 UTIS

김대영,윤원섭,정승환,원호섭,이경진 2015. 6.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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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무료배포로 기업 줄도산..민간영역 침범하는 정부

◆ 한국 SW강국으로 가자 ② / 1敵 잘못된 정책 ◆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 소규모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비좁은 사무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국내 SW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5가지 장애물은 뭘까.

매일경제는 최근 국내 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들과 경제연구소, IT벤처기업 CEO 등 SW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한국 SW 발전을 가로막는 5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미리 설문지를 보낸 후 기자가 전화를 걸어 보충 질문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행태, SW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관행, 협소한 시장과 성공모델이 나오기 어려운 생태계, 시대에 뒤진 SW교육, 하드웨어 중심인 기업문화가 5가지 적으로 꼽혔다.

소프트웨어(SW) 전문가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갑질 행태를 SW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적으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민간 SW업체 사업영역 침해 △저가 수주 정책 △개선되지 않는 하도급 문화 △SW를 이해하지 못한 예산 편성과 집행을 들었다. 이번 조사에서 전문가들이 언급한 정부가 잘못한 사례는 무려 34가지에 달했다.

감사원은 최근 경찰청 교통정보 수집용 단말기인 도시교통정보시스템(UTIS) 사업이 예산 3000억원을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철퇴를 내렸다. 경찰청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559억원을 들여 26개 도시에 구축한 UTIS 사업을 중단시킨 것이다. '티맵'이나 '김기사' 등 민간에서 만든 교통정보 앱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는 이유에서다. UTIS 누적 다운로드 건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5만8000건으로 민간 차량 소통정보 서비스앱 다운로드(4600만건) 대비 0.1%에 불과하다. 감사원은 UTIS 사업에서 이미 1500억원 손실이 발생했고 추가 투입될 1600억원 역시 낭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택시 등에 보급된 차량용 단말기 7만개는 티맵 등에 밀려 무용지물 상태며 단말기 보급이 안 돼 '정보 수집량 부족→정보 정확성 저하→활용률 저조'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정부가 민간 시장에 개입해 SW산업 발전을 저해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08년 행정자치부는 '온나라 시스템'을 개발해 100개가 넘는 공공기관에 무료로 배포했다. 정부가 전자문서 관리 시장에 개입하자 민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은 줄줄이 어려움에 빠졌다.

정부는 2009년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성인 사이트 등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SW인 '그린아이넷'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예산 90억원을 들여 SW를 만든 뒤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미 10여 개 벤처기업이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상태였으나 정부가 관련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시장 자체가 사라졌다.

정부 산하 연구소 연구원은 "SW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발상은 사회주의적 접근법"이라며 "이러한 정부 행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SW사업 발주 시 전부 하도급이 가능하고 하도급 단계에 제한이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2~3단계 하도급을 거친 최종 사업자는 저가임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을 맡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자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내년부터 하도급을 제한하는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자체 인력이 아닌 외주 인력을 활용한 사업 수주가 사실상 금지된다. 하지만 국내 SW기업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가 발주한 SW사업은 당해 연도 사업 종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춘궁기를 지나 4~5월에 발주되는 사업도 무조건 해당 연도에 끝마쳐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다 보면 결국 재하도급을 막는다 하더라도 여러 곳에서 문제가 터질 것이 뻔하다. 내년부터 하도급 금지 법안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SW 개발자가 겪고 있는 4D 삶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SW 개발자를 토목공사식 '맨파워'로 바라보는 발주 행태도 변하지 않았다. 김동호 아이디인큐 대표이사는 "건설업에 적용되는 것처럼 연차를 초·중·고급으로 나눠 시간에 따라 일당을 지급하는 것은 SW 고유한 특성인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낼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저가 낙찰 중심인 정부 발주 사업은 투입 인원과 기간, 가격 경쟁력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프로젝트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등 공공기관은 연평균 3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ICT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처럼 공공기관이 SW 개발·서비스에 나서면서 '무료 SW 배포→개발업체 도산→시장 위축'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민간 영역에 들어와 그들과 경쟁하겠다는 것은 시장을 망치는 일"이라며 "이는 시장 생태계만 왜곡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에 대해 공공사업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2013년부터 시행되면서 대기업에서 공공사업을 담당하던 직원 중에는 일자리를 잃고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람도 나왔다. 원래 정책 취지는 대기업에 대해 시장 진입을 억제해 중견·하도급 업체에 사업 기회가 확대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순)

고평석 스마튜에듀 이사, 김동호 아이디인큐 대표이사, 김성렬 건국대 교수, 김성조 중앙대 부총장, 김현걸 소리바다 부사장, 김현철 고려대 교수, 배두환 KAIST 교수, 서정연 서강대 교수,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이동희 국민대 교수, 최문기 KAIST 교수, 익명을 요청한 10명(정부 부처 간부 2명, 국책·민간 연구소 수석연구원급 6명, 4대 그룹 SW 관련 업무 담당 임원 2명)

[기획취재팀 : 김대영 차장(팀장) / 미국 = 윤원섭 기자 / 중국 = 정승환 기자 / 원호섭 기자 / 영국·핀란드 =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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