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이제는 지진도 만드는구나

이종태 기자 2015. 6. 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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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정세가 불안해지면 석유 가격이 오른다. 최근까지의 역사적 패턴이다. 지난해 이라크, 리비아 등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은 거의 내전 상태였다. 다른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세계와 팽팽하게 맞서왔다. 이쯤 되면 유가 역시 폭등했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유가는 지난해 오히려 크게 내렸다. 올해 5월26일의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4달러였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2014년 5월30일 현재 109달러)보다 45달러나 내렸다. 최근 들어 다소 오름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4년 전인 2011년 4월 초(배럴당 120~ 130달러)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유가를 둘러싼 '역사적 패턴'이 역전된 것이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 혁신' 중 하나로 불리는 '셰일(shale) 에너지(석유와 가스)'의 생산량이 201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해온 덕분이다.

인류가 그동안 주로 사용해온 화석 에너지(석유·가스)는 지표면 아래 1~2㎞ 지점에 유전과 가스전 형태로 고여 있었다. 시추공을 박아서 빨아내면 된다. 이보다 더 깊은, 지하 3~4㎞ 지점에 셰일이라는 지층이 있다. 바위 무더기인 셰일층은 석유와 가스를 함유하고 있다. 여기서 에너지를 추출하려면, 시추공을 셰일층까지 수직으로 박아 내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시추공이 수평으로 셰일층을 헤집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수평시추). 그리고 적절한 지점에 이르면 물과 모래, 화학약품 등이 섞인 액체를 엄청난 압력으로 뿜어내어 셰일층을 파괴(수압파쇄)한 뒤 빨아올린다. 지상으로 올라온 '고체 섞인 액체'를 정제해서 셰일 에너지를 추출한다.

수평시추와 수압파쇄가 본격적으로 개발·적용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이다. 2010년 이후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2008년의 하루 500만 배럴에서 지난해에는 하루 1200만 배럴까지 6년여 만에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셰일 붐'이 일면서, 이 부문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다. 셰일 산업은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성장 동력이었다. 오는 2018~2019년쯤에는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하면서, 에너지 수출이 수입을 초과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절반이 에너지 수입 때문이었다.

온통 장밋빛으로 채색되었던 미국의 셰일 산업에 최근 찬바람이 불고 있다. 2009년 이후 미국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빈발하는 지진이 셰일 산업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어서다. 중남부 오클라호마 주는 역사적으로 '지진 안전지대'였다. 2009년까지만 해도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건 한 해 평균 1.5회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무려 584회가 발생했다(아래 표 참조). 올해는 941회로 예측된다. 이 외에도 앨라배마·텍사스·캔자스·아칸소·뉴멕시코·오하이오·콜로라도 등 셰일 업체들이 몰린 지역에서는 어김없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셰일퀘이크(shalequake:셰일 에너지 발굴로 인한 지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규모 3~3.9의 지진은, 인간이 땅의 진동을 감지할 수는 있으나 물리적 피해는 약한 수준의 재해다. 그러나 주민들의 불안감은 이미 엄청나게 높아졌다. 미국 언론들은 연일 오클라호마 현지 주택의 내외 벽에 발생한 균열을 촬영해 내보내고 있다. 한 주민은 미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5월6일)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오클라호마 주를 사실상 '전쟁 상황'에 비교했다. '폭탄이 투하되지 않았을 뿐 연일 지진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지진이 우리 집 곳곳을 갈라지게 하고 있다.' 더욱이 과학자들은, 셰일 산업 관련 지진의 규모와 위험성이 갈수록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11년 오클라호마 주의 작은 마을인 프라하에서는 5.6 규모의 강진이 발생해 주민 2명이 큰 부상을 입고 주택 14채를 파괴한 바 있다.

셰일 산업 업체들은 구조조정이 반갑다?

셰일 업계와 주 정부는 그동안 '미세한 지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거나 '셰일 에너지 채굴 때문에 지진이 일어난다는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버텨왔다. 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4월, 분위기가 반전된다. 권위 있는 공공 연구기관들이 사실상 셰일 산업과 지진 간의 상관관계를 확증했기 때문이다.

국립 연구기관인 미국 지질조사소(USGS)의 보고서는 '(셰일 에너지를 채굴할 때 발생한) 폐수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최근 빈발하는 지진 중 대다수가 유발되었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라고 썼다. 지역 경제 상황 때문에 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오클라호마 지질조사소까지 '폐수를 지하의 저장소(disposal wells)에 주입한 것이 최근 지진의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인류가 드디어 지진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다만 보고서들에 따르면, 셰일 에너지의 채굴법(수압파쇄) 자체가 지진의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지상으로 끌어올린 '고체 섞인 액체'로부터 에너지를 분리하고 남은 폐수를 폐기하는 방법이 문제다. 석유 1배럴당 10배럴 정도의 유독성 폐수가 생성된다. 오염 때문에 강이나 바다에 버릴 수는 없다. 셰일 업체들은 주로 지표면 밑에 별도로 굴착한 공간에다 이 폐수를 주입했다. 그런데 이 폐수가 주변의 불안한 단층(faultline)으로 침투해서 '미끄러짐(slippage) 현상'을 일으키는 바람에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태의 원인이 명확해졌으니 주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셰일 업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미 오클라호마·오하이오·아칸소 주 등에서는 △지하저장소의 위치 △지하로 주입할 수 있는 폐수의 양 등을 규제하기로 했다. 이처럼 폐수를 지하에 버리기 어렵게 되면 셰일 업체로서는 재처리(recycling)를 해야 한다. 재처리 비용은 엄청나다. 게다가 새로운 채굴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도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이런 규제 강화로 인해 상당수 업체가 퇴출되리라 전망된다. 한동안 맹렬하게 팽창해온 셰일 산업에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셰일 산업 전체로 볼 때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일 수도 있다. 미국 셰일 업체들은 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에 엄청난 압박을 받아왔다. 유가 하락을 유발한 것이 셰일 업체들인 만큼 '자업자득'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2월27일)에 따르면, 중동의 석유 업체들은 원유 시세가 배럴당 10달러까지 내려가도 버틸 수 있다. 미국의 셰일 업체들은 배럴당 30~90달러는 받아야 수익을 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브렌트유 시세가 배럴당 90달러 이하로 폭락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미 상당수의 셰일 업체가 '적정 수익률' 이하에서 허덕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셰일 산업의 구조조정은 글로벌 차원에서 석유 공급량을 줄여 유가를 다시 인상시킬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인류에게 수십, 수백 년(셰일 에너지 매장량에 대한 추정은 기관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동안의 에너지 공급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던 '기술혁신(수평시추와 수압파쇄)'의 운명이 더 중요하다. 미국 정부와 업계가 셰일퀘이크라는 '위험 요인'에 어떻게 대처할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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