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분배 기능 잃은 조세]'숨은 증세' 5년 세수 비중, 고소득층 줄고 중산·서민층 늘어

박병률 기자 2015. 5. 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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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금 부담 계층 간 모순

▲ 물가 연동 없는 세율구간 소득상위 10%, 81 →75.3%지난 5년간 5.7%P 낮아져 하위 90%, 19 →24.7% 늘어9분위 증가폭 2.6%P 최고…'자연 증세' 가장 큰 영향

5년 전 연봉 2900만원을 받던 길태수씨(36)는 올해 연봉 3000만원을 받는다. 지난 5년간 회사가 어려워져 경제성장과 물가상승분만 연봉에 반영됐고, 물가는 더 올라 임금인상을 체감하지 못했다. 5년 전 각종 공제를 받아 과표 1200만원으로 72만원의 세금을 냈지만 올해는 과표 1300만원에 87만원의 세금을 낸다. 임금이 100만원 올랐는데 세금은 15만원이나 오른 것이다. 세율이 6%로 유지됐다면 6만원 세금을 내지만 15%가 되면서 9만원을 더 내게 됐다. 길씨는 "지난 5년간 물가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살림의 여유는 더 없어졌는데도 내야 할 세금은 더 늘어났다"며 한숨지었다.

길씨의 세금이 대폭 오른 것은 적용된 세율이 6%에서 15%로 뛰었기 때문이다. 과표 120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6%, 그 이상은 1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이 같은 현상을 브래킷크리프 증세효과라고 부른다. 세율구간의 경계선인 과표 1200만원(연봉 3000만원 내외), 과표 4600만원(연봉 7000만원 내외)은 소득이 넘어설 경우 세율이 뛰기 때문에 특히 중산층과 서민의 세부담이 늘어난다. 임금보다 세금이 더 빨리 늘어나면서 가처분 소득은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 반면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과표 3억원 초과(연봉 3억5000만원 내외) 초고소득층은 소득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세율이 더 오르지 않기 때문에 세부담이 크게 늘어나지 않게 된다.

지난 5년간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서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고소득층의 비중은 줄고, 저소득층은 늘어났다. 브래킷크리프 증세효과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숨은 증세'라고 부른다. 브래킷크리프 증세가 중산층과 서민층에 더 부담을 지우면서 전체 소득계층이 부담하는 세금비중 구조도 바꾸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분석을 보면 2009~2013년 전체세수에서 차지하는 고소득층의 세금부담은 낮아진 반면 중산층·서민층은 높아졌다. 소득구간을 10개 분위로 나눠보면 소득상위 10%인 10분위의 세금부담은 2009년 81.0%, 2010년 80.2%, 2011년 78.9%, 2012년 76.6%, 2013년 75.3%로 매년 낮아졌다. 지난 5년간 비중이 5.7%포인트 낮아진 셈이다. 10분위는 연봉 6427만9000원 이상으로 이 구간 평균 연소득은 9709만원이다.

10분위 중에서도 상위 소득의 세부담 비중 감소가 두드러진다. 연봉 1억2269만원 이상인 소득상위 1% 이상 소득자가 낸 소득세가 전체 소득세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37.9%에서 2013년 32.9%로 5%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10분위 전체 비중 감소(5.7%포인트)보다 높다. 10분위 중에서도 연소득이 1억원 미만인 사람은 세금부담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슈퍼리치인 소득상위 0.01%(평균 연소득 18억3822만원)도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세부담 비중이 2009년 6.4%에서 2013년에는 4.7%로 1.7%포인트가 낮아졌다.

10분위의 세수 비중이 낮아진 만큼 1~9분위는 높아졌다. 1~9분위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9.0%에서 2013년 24.7%로 커졌다. 특히 9분위(평균 연소득 5384만원)의 세금비중이 같은 기간 3.5%포인트(11.9%→14.5%)가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이 구간은 세율이 15%에서 24%로 바뀌는 소득자가 많아 자연증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이어 8분위(평균 연소득 3920만원)는 1.2%포인트(4.2%→5.4%), 7분위(평균 연소득 3015만900원)는 1.1%포인트씩(1.6%에서 2.7%) 각각 확대됐다. 또 6분위(평균 연소득 2348만원)는 0.1%포인트(0.9%→1.0%), 5분위(평균 연소득 1851만원)는 0.2%포인트씩(0.4%→0.6%) 비중이 확대되는 등 저소득층도 미미하지만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에 따라 명목소득이 자연적으로 증가하면서 과표구간이 높은 세율로 이동해 세부담이 늘어나는 현상.

<시리즈 끝>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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