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혁신으로 시장 파괴한 넷플릭스

2015. 5. 1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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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산업 최강자 된 VOD 기업..자체 제작 드라마까지 '대박'

플랫폼 기업들의 성공은 사실 어제오늘만의 얘기는 아니다. 생산자가 직접 만들어 낸 소비재·서비스·콘텐츠 등을 중간 유통 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돼 온 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착된 비즈니스 구조다. 가령 의류와 가구를 생산해 낸 제조사가 있다면 이들 제품의 판매를 전담하는 백화점·양판점 같은 유통 기업도 있다. 다양한 재화를 한곳에 모아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유통 기업들은 물건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제조사와 고객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중간에서 이익을 챙긴다.

거대 유통 기업은 20세기적인 플랫폼의 성공 사례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급격한 발전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며 시장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는 비즈니스의 오랜 정석이 ICT의 파도를 타고 쓰나미가 돼 몰려들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2004년 100만 명에 불과했던 페이스북의 가입자는 현재 70억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매일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라는 단일 플랫폼에서 활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15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70조 원에 이른다. 이제 페이스북을 빼놓고는 광고·마케팅·홍보·판매·통신 등을 논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플랫폼 기업들의 성공 전략을 말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기업이 또 있다. 미국의 주문형 비디오(VOD) 스트리밍 기업인 넷플릭스(NETFLIX)다. 국내에선 관련 업계 사람이나 전문가들에게만 잘 알려진 기업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지역에선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틀을 바꿔 놓은 돌풍의 핵이다. 넷플릭스는 올 1분기에만 15억7000만 달러(1조7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구독자는 6230만 명에 육박한다.

페이스북 기업 가치 170조 원 달해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쿼츠는 "파괴적인 스트리밍 TV 서비스로 넷플릭스가 이미 CBS의 시장 가치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방송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 거대 미디어 그룹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북미 지역에 한한다면 넷플릭스는 이미 가장 영향력 있는 TV 방송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우리로 치면 곰TV가 KBS·MBC·tvN 같은 쟁쟁한 지상파 방송국이나 케이블 PP(Program Provider)를 제쳤다고 이해하면 쉽다.

넷플릭스는 2011년부터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남미 43개국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북유럽과 서유럽에 잇따라 진출했다. 2013년에는 네덜란드로 시장을 확장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는 이미 기존 미국 내 유료 방송 1위 사업자인 컴캐스트(Comcast)를 추월했다. 글로벌 가입자를 기준으로 하면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케이블(Time Warner Cable) 합병 기업의 가입자보다 많다. 1997년 DVD 대여 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스트리밍 콘텐츠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2007년부터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도 안 돼 기존의 강자들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제 남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전송하는 플랫폼 역할을 떠나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14일 트위터를 통해 "드디어 내일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2. 스포일러는 사양합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드라마다.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을 맡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자체 제작에 나선 지 3년 만에 이 작품으로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도 수상했다. 미국 콘텐츠 기업 1위라는 HBO도 수십 년 걸린 일을 불과 3년 만에 이룬 셈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편당 제작비가 81억 원이 넘는 대작이다. 넷플릭스만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지상파나 케이블에선 볼 수 없고 오직 넷플릭스에 가입해야만 즐길 수 있다. 실제로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인 2013년 3분기에만 가입자가 130만 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플랫폼과 콘텐츠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오른 기업은 미국 역사상 넷플릭스가 유일하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드라마는 TV 시청 패턴까지 바꿔 놓았다. 1편부터 마지막 회까지 순차적으로 방영됐던 기존 드라마와 달리 시리즈 전편이 한꺼번에 공개된 것이다. 이미 종영한 드라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명 '몰아보기(Binge Viewing)'가 가능해진 셈이다. 스포일러를 사양한다던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CBS·HBO·컴캐스트 같은 기존의 미디어·콘텐츠 강자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넷플릭스의 저력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극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이야 자체 제작 드라마를 선보일 정도가 됐지만 넷플릭스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다. 즉 기존에 제작된 비디오 콘텐츠들을 한곳에 모아 소비자(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이 바로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다만 기존의 플랫폼 기업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시장의 관행을 넘어선 파괴적 혁신이 넷플릭스의 성공을 가져 온 비결이다.

PC·모바일은 물론 게임기까지 플랫폼화

시작부터 그랬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은 1997년 넷플릭스란 이름으로 DVD 대여 업체를 창업했다. 당시 미국의 DVD 대여 업계는 전국 대리점망을 확보한 '블록버스터'가 꽉 쥐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오프라인 매장 대신 우편을 통한 DVD 대여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이용자가 홈페이지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면 반송용 봉투가 포함된 DVD를 우편으로 받아보는 서비스였다. 배송료는 물론 연체료·반송료와 파손 시 배상금도 없었다. 업계에서 '공룡'으로 통했던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2013년에는 마지막 매장이 문을 닫으며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넷플릭스가 등장한 지 불과 5~6년 만이었다.

2007년 들어선 본격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나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미국의 유료 방송 수신료는 월 8만~10만 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넷플릭스의 서비스는 한 달에 단돈 9.99달러, 우리 돈으로 1만 원이면 무제한으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국내 방송사의 다시 보기 서비스처럼 편당 시청료를 지불하거나 보기 싫은 광고를 억지로 볼 필요도 없었다.

확장된 플랫폼 기반도 넷플릭스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 왔다. 전 세계 최대 플랫폼이라는 페이스북도 PC와 모바일 기반인데 비해 넷플릭스는 PC·스마트폰 등 모바일은 물론이고 기존의 TV·셋톱박스를 비롯해 플레이스테이션·엑스박스·닌텐도 같은 콘솔 게임기까지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선 아직도 콘솔 게임의 영향력이 막강한데, 미국 내에 보급된 콘솔 게임기만 1억 대에 이른다. 실제로 넷플릭스 이용자 중 콘솔 게임기 접속 비중은 50%에 달한다.

운영체제 역시 완전히 개방돼 있다. 현재 넷플릭스 서비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나 애플의 맥OS·iOS와 리눅스·안드로이드·크롬 등 거의 대부분의 운영체제를 지원하고 있다. 스마트TV, 블루레이 플레이어, 콘솔 게임기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구글 크롬캐스트와의 제휴가 절묘했다는 평가다. TV 뒷면의 HDMI 단자에 크롬캐스트를 꽂으면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셋톱박스 없이도 넷플릭스를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은 리모컨으로 쓰면 된다.

넷플릭스는 현재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지난 4월 회사 관계자가 한국을 찾아 IPTV 등 국내 유료방송 사업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와 케이블로 양분된 한국의 미디어·콘텐츠 시장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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