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집어던지고 욕설·인신공격..영화같은 '막가파 오너'
◆ 기업 10敵 무소불위 기업오너 ◆
부친으로부터 대기업을 물려받은 40대 오너 3세인 손진호(정웅인 분)가 사무실과 룸살롱을 오가며 몽둥이를 들고 회사 임원들에게 무소불위로 폭력을 휘두른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룹의 홍보실장이자 고교시절 동창인 이상훈(유준상 분)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방패막이 희생양으로 삼는다. 2013년 4월 개봉한 영화 '전설의 주먹'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영화 속 가상장면이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 설정이 가능한 것은 우리 국민의 잠재 의식 속에 기업 오너 총수들은 무소불위로 황제경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견기업 A사의 김 모 대표는 유통업계에서 유명한 악덕 오너다. 평소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회사 내부에서는 직원들에게 온갖 언어폭력과 인신공격을 일삼는다. 남자 직원이라면 그가 던진 재떨이에 한 번쯤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A사에 한때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회의 시간에 직원이나 팀장급은 물론이고 임원들도 공개적으로 욕설을 듣거나 구타를 당했다"며 "경력직원 대부분이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갔고 심할 때는 연간 이직률이 60%를 넘은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기업 B사의 박 모 회장은 업계에서 원로 대우를 받는 경영인이지만 수행비서 입장에서 볼 때는 저승사자와 다름없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여지없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뒤통수를 맞거나 얼차려를 당한 적도 있을 정도다. 오너들의 이 같은 행태는 기본적으로 회사를 본인의 사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회사 돈=내 돈'이라는 고정관념으로 횡령 비리를 서슴지 않는 오너들도 적지 않다. 작년 말 한 중소기업 단체장은 공식 석상에서 정치권 진출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뭐하러 나서서 남들 눈치 보고 욕을 듣나. 이미 나는 왕인데"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작년 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현대판 봉건체제로 불리며 갑을 관계 핵심으로 떠오른 재벌 오너의 전횡과 대그룹의 조직적인 로열패밀리 육탄방어, 여기에 정부까지 포섭한 재벌의 로비력까지 더해지며 사회 전체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조 전 부사장 외에도 대한항공은 조현민 전무가 고비 때마다 SNS와 문자를 통해 고위 경영진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하면서 회사가치를 깎아먹었다. 조원태 부사장의 노인폭행 등 과거 이력까지 드러나면서 '오너 3세에게 회사를 맡길 수 있는가'라는 우려까지 터져나왔다.
선대가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들은 한진가 오너 3세뿐만이 아니다. 국내 건설면허 1호 업체 삼부토건도 지난해 7월부터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조남욱 삼부토건 회장(82)의 차남 조시연 삼부건설공업 대표(52)가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삼부토건 전무이자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조 대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회사를 지급보증 세우는 대가로 2008년 7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시행사로부터 12억250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 삼부토건은 중견 건설사로서 위상을 잃은 채 자금난에 빠져 현재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맨땅에서 기업을 일군 창업자들과 달리 부의 세습을 통해 큰 어려움 없이 기업을 물려받은 오너일가 3, 4세들은 무소불위 황제경영에 더 노출되기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장우 한국경영학회 회장은 "오너 2세만 해도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 아니었고, 부친과 함께 기업을 키워나간 경험이 있다"며 "반면 3, 4세는 태어날 때부터 일반인과 다른 환경에서 귀족처럼 자라 일반인과의 공감·소통능력이 떨어지고 스스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경험이 없다는 점도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돈만 있으면 된다"거나 "기업은 절대 양보 못한다"는 판단으로 형제는 물론 부모를 고소·고발하며 법정소송을 벌이는 오너일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검증 과정을 등한시한 채 경영권을 물려주기보다는 미국이나 일본 회사들처럼 지분과 경영권을 분리해 가장 능력 있는 인재에게 경영을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너의 자녀들을 잘 교육시켜 경영권을 맡기는 것보다 수천 명의 임직원과 외부 전문가 풀 중에서 최적의 인재를 찾는 게 더 경쟁력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지수 미국 변호사는 "기업의 경영권은 오너의 대물림 대상이 아니고 주주들이 위임하는 권한에 불과하다"며 "오너 자녀들이 당연히 회사를 경영한다는 고정관념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재벌에게도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범주 기자 / 정순우 기자 / 김세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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