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보다 비선 실세 연줄.. 부행장 인사까지 靑 개입"

2014. 12.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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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금융 논란 인사 난맥상
각본대로 돌아가는 공모
"후보선정 전날 20분 들러리 면접.. 검증절차 요식행위마저 없어져"
내부인사도 '윗선' 뜻대로
"특정 학맥이 금융계 자리 좌우, 줄대기 기승.. 기관장 令 안 서"

[동아일보]

"그때 면접 봤던 후보들도 다 자기가 들러리인 줄 알았을 겁니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본 것이죠."

올 하반기 한 금융공기업 사장직에 도전했던 A 씨는 면접 통보를 받을 때쯤 '모든 게 다 짜인 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경쟁 후보 B 씨가 현 정권 실세인 C 씨의 지원을 받아 사실상 차기 사장에 내정된 상태라는 소식을 여러 통로로 접했기 때문이다.

고지 받은 면접 일정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후보에게 주어진 인터뷰 시간은 고작 20분에 불과했다. 또 면접 바로 다음 날에 주주총회가 열려 사장 선임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사장직에 응모했던 또 다른 후보 D 씨는 "예전에는 면접 후에 복수의 후보를 올리고 주총 전에 검증절차도 따로 진행했는데 이번엔 그런 요식행위마저 없었다"며 "우리나라 금융이 퇴보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다 끝난 일을 이제 와서 어쩌겠나. 이번 정권에서 다른 자리에도 계속 도전해야 하니 내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 비선, 실세만 바라보는 금융계 인사

이번 우리은행장 인선 과정에서 청와대가 처음부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지며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 결과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이런 인사 개입은 현 정부 들어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공모에 지원한 경력이 있는 인사들은 "후보들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든 정치권 연줄을 찾고 이를 과시하기에 바쁘다"라고 입을 모은다.

인사 잡음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비선(秘線) 실세를 통한 사전 내정설이다. 우리은행장은 공식 선출기구가 미처 상견례도 하기 전에 차기 행장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밝혀졌고, 앞서 은행연합회장도 금융당국의 내정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올해 한 금융기관 CEO직에 응모했던 인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공모라는 게 제대로 진행된 적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엔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며 "특히 청와대에 줄을 못 대면 절대 안 된다는 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직을 놓고도 낙하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기관장뿐 아니라 부행장, 사외이사 인사에서도 '줄대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는 부행장 인사도 청와대가 챙기고 있다"며 "금융회사에서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권 인맥 확보는 필수조건이 됐다"고 말했다. KB금융의 한 사외이사는 "우리가 사퇴할 경우 생기는 빈자리를 노리고 당국의 눈치를 보는 인사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KB금융 회장과 대우증권 사장 선출 과정에서는 하마평에 오른 일부 후보들 간에 투서와 상호 비방이 난무하면서 '판'이 더욱 혼탁해졌다. 서강대, 연세대 등 특정 학맥이 부각되면서 실제 인사 결과를 좌우하고 있다는 의혹도 크다.

○ 은행장이 챙길 자회사 인사권마저 청와대 차지

금융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 인사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것은 인사권을 청와대가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시장의 예측을 뒤엎는 '정치 금융' 인사가 계속 배출되면서 예전 같으면 후보군에 포함되기 어려웠을 인사들까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예전 같으면 금융당국이 추천하는 대로 인사가 진행되는 게 관행이었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 인사권이 점점 청와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우리금융이나 기업은행처럼 정부 지분이 있는 금융회사들의 경우 유력 후보자가 청와대에서 뒤바뀌는 일이 현 정부 들어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한 금융그룹의 자회사 사장 인사에서도 금융당국이 1순위 후보로 올린 인사가 경북 포항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 때 위세를 부렸던 '영포 라인'으로 분류돼 탈락하고 2순위 후보가 예상을 깨고 사장직을 차지했다. 이처럼 청와대가 수많은 인사에 일일이 개입하다 보니 인사 검증이 늦어져 '수장 공백'이 생기는 사례도 많다.

이명박 정부 때 금융당국 수장을 지낸 한 인사는 "이전에 장관이나 은행장이 임명하던 자리까지 지금은 청와대에서 직접 스크린(검증)을 한다고 들었다"며 "장관이나 위원장한테 인사권을 줘야 '영(令)'이 서는데 현 정부는 금융계 인사를 '전리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송충현·유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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