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전면개방은 식량안보 포기다

2014. 7. 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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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 국민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결정

[미디어오늘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박근혜 정권이 내년부터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고 나섰다. 쌀시장은 WTO(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에 따라 20년에 걸쳐 소비수요의 8%가 개방되었다. 내년부터는 그 협정시한이 만료되어 현재처럼 부분개방을 유지하느냐, 전면개방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런데 박 정권이 수출국과 협상도 시도하지 않고 전면개방하겠다고 서둔다. 쌀은 주식이다.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을 국민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해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언론도 이 중대한 국가적 현안을 전혀 공론화하지 않는다. 농민들이 반발해 쌀을 지키겠다며 상경투쟁을 벌였지만 경찰의 물대포만 맞았고, 언론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쌀시장을 전면개방하더라도 현재의 의무수입량 40만9,000t을 그대로 수입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장도 추가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 정권은 관변단체-학자들을 내세워 이 같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400~500%의 관세를 붙이면 쌀시장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미국이 그 같은 고율의 관세를 수용해 스스로 수출 길을 막겠느냐는 점이다.

▲ 6월 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쌀 전면개방반대, 민영화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시국대회' 참석자들이 집회 후 종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FTA(자유무역협정)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무관세를 목표로 한다. 정부가 전방위 FTA와 TPP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WTO를 통해 고율의 관세를 보장받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식량은 해외에서 사서 먹는 게 싸다는 비교우위론자에 포획된 박 정권이 쌀시장 전면개방을 강행하고 있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니 식량주권을 식량대국에게 맡기겠다는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2008년 세계적인 식량파동으로 곡물가격이 폭동하자 30여개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수출국은 곡물을 전략상품(strategic commodity)로 지정하고 수출관세-할당-금지를 통해 수출을 통제했다. 중국은 모든 곡물의 수출을 금지했고 아르헨티나는 제한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은 쌀의 수출을 통제했다. 하지만 한국은 식량파동의 심각성을 모르고 살았다. 농민들이 경찰의 곤봉세례를 맞아가면서 시장개방을 반대하며 쌀 자립을 지킨 덕택이다.

지구촌에 곡물파동이 잦아지고 있다. 곡물파동이 7~10년 주기로 나타나더니 근년에 들어 이상기후 탓에 그 주기가 짧아지는 추세다. 환경오염과 물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또 사막화-산업화-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농지축소와 이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식물연료(biofuel)도 곡물파동의 한 원인이다. 인구대국인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가 소득향상에 따라 육류소비가 증가하면서 사료용 곡물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WTO와 FTA를 통해 세계의 가족농을 파괴하고 있다. 가족농은 식구끼리 농사를 지어 먹고 남아야 판다. 미국은 막대한 정부지원에 힘입은 초국적 기업농이 농업을 영위한다. 미국은 경작지가 세계에서 가장 넓어 비행기로 파종하고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한다. 한국은 가족농이라 값싼 미국산과는 경쟁을 할 수 없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이명박 정권은 농지축소를 감행했다. 2008년 6월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농지를 농업진흥지역으로 대체하도록 지정하는 제도를 없앴다. 2009년 11월 평균 경사율 15% 이상 농지를 비농업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11월에는 농업적 가치가 낮다는 명목을 내세워 6만5,000㏊ 규모의 절대농지를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어 2012년 9월 개별공시지가의 30%를 내는 농지보전부담금 감면대상에 경제자유구역-기업도시, 관광단지-관광시설용지, 체육시설을 추가하기로 했다. 농지감축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농지가 1990년에만 해도 210만9,000ha였는데 역대 정권이 농지감축 정책을 쓰는 바람에 2000년 188만9,000ha, 2011년 169만8,000ha로 20년간 20%나 줄었는데 여기에 추가해 또 농지축소를 단행한 것이다.

농지축소에다 이상기후가 겹쳐 쌀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00년에만도 529만t이었는데 10년 새 100t 가까이 줄었다. 2007년 27년만에 큰 흉년이 들어 생산량이 441만t으로 줄었다. 2008년 484만t으로 다소 회복되었다가 2010년 이후 내리 3년간 더 큰 흉년이 들었다. 생산량이 2010년 430만t, 2011년 422만t, 2012년 401만t으로 급감했는데 지난해는 423만t으로 다소 늘었다. 이에 따라 쌀 자급률이 80%대로 뚝 떨어졌다.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였지만 이제 수입해야만 먹고산다.

냉전체제하에서 소련은 집단농장의 실패로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렸다. 구조적인 식량난은 미국과의 대결국면에서도 서방세계에 구호의 손길은 내밀게 만들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곡물수출금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식량무기화로 소련의 목덜미를 죄였던 것이다. 결국 식량난은 세계의 절반을 둘러친 철의 장막을 일순간에 붕괴시켰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깨는 망치 소리를 시발로 동구에 이어 소련에서도 공산주의가 삽시간에 와해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중국이 식량증산에 나섰다. 산업화-도시화-사막화가 진행되면서 농지를 급속하게 잠식하고 있다. 여기에다 해마다 이농민이 1,500만명씩 발생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농지세를 2006년부터 아예 없애버렸다. 휴경지에 생산을 재개하고 이농민의 귀농을 독려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농촌의무교육을 무료화하고 의료혜택을 확대했다. 증산정책은 도시-농촌간의 소득격차를 완화하려는 사회-경제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2.6%에 불과하다. 쌀을 80% 이상 자급하니 그나마 유지된다. 미국의 값싼 밀에 밀려 이 땅에서 밀밭이 사라졌다. 쌀시장을 전면개방하면 밀의 전철을 밟을 것이 자명하다. 주곡인 쌀 생산기반이 붕괴되면 무기안보와 함께 식량안보도 미국의 손에 놓이게 된다. 식량안보를 지키려면 단순한 경제적 논리를 떠나 식량주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해서도 식량자립기반을 견지해야 한다. 한번 문을 열면 닫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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