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항공사 코드셰어의 비밀

2014. 7.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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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항공사 티켓 샀는데 佛비행기가.. 당황하셨어요?

[동아일보]

아시아나항공은 오후 6시 1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후 9시 55분(현지 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하는 OZ-577편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운항한다. 돌아오는 OZ-578편은 당일 오후 11시 10분 알마티를 떠나 이튿날 오전 7시 50분 인천에 도착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A 부장이 갑작스러운 비즈니스미팅으로 꼭 월요일에 카자흐스탄으로 가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자니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를 쌓지 못하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A 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코드셰어(code share)' 덕분이다. 코드셰어란 두 항공사가 서로 상대 항공편의 일부 또는 전체 좌석을 대신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항공편 좌석 공유제다. A 부장은 월요일 오후 1시 인천을 출발하는 에어아스타나 KC-909편을 타면 된다.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지 않는 목요일과 토요일에도 원한다면 에어아스타나를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에어아스타나 홈페이지를 찾을 필요도 없다. 예약도 아시아나항공에서 하고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도 당연히 쌓인다.

A 부장은 원하는 일정대로 출장을 다녀올 수 있어 좋고, 항공사로서는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할 수 있어 이득을 보는 셈이다.

대세로 자리 잡은 코드셰어

코드셰어의 역사는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서양을 오가던 북미 항공사들과 유럽 항공사들이 자사 취항 노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좌석 좀 줄게, 너희 좌석 좀 다오"라며 손을 맞잡고부터다.

국내 항공사가 코드셰어 대열에 합류한 것은 1993년. 대한항공이 운항하고 있던 서울∼스위스 취리히∼이탈리아 로마 구간에 알리탈리아항공이 일부 좌석을 대신 판매하기 시작한 게 첫 사례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듬해 미국 노스웨스트항공과 첫 코드셰어를 맺었다.

항공사들은 2000년대부터 코드셰어 무한 확장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현재 29개 항공사와 324개 노선에 대해 코드셰어 협정을 맺고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27개 항공사와 242개 노선의 좌석을 공유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왜 코드셰어를 선호하는 것일까.

우선 개별 항공사가 취항할 수 있는 노선에 한계가 있다는 게 첫째 이유다. 주요 도시까지는 항공편을 운항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국내선까지 직접 챙길 수는 없는 노릇. 2012년 대한항공이 케냐 나이로비까지만 항공기를 띄우고, 아프리카 대륙 내 다른 노선은 케냐항공의 좌석을 활용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아시아나항공은 마카오에 대한 국내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인천∼마카오 노선을 신규 취항하는 대신 에어마카오와 코드셰어를 맺어 고객을 유치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또 지방 관광객들을 잡기 위해 에어부산의 부산발 국제선 4개(후쿠오카, 나리타, 오사카, 칭다오)의 좌석을 공동 판매하고 있다.

둘째는 A 부장 같은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마음 같아서야 모든 해외노선을 매일 한 차례 이상 운항하면 좋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아스타나와의 코드셰어를 통해 주 2회만 운항하면서 주 5회 운항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세계 각지를 잇는 넓은 네트워크와 편리한 스케줄"이라며 "코드셰어는 곧 네트워크 확대와 스케줄 다양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코드셰어 역이용하는 똑똑한 고객들

많은 고객들은 여전히 코드셰어를 잘 알지 못한다. 파리에 가려고 대한항공 티켓을 산 고객이 막상 탑승게이트에 도착하고 보니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대기하고 있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기내식에 비빔밥이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울화가 치밀 수도 있다.

사실 고객 입장에선 타당한 불만이다. 같은 돈을 주고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받는다는 게 내키는 일은 아니다. 각 항공사가 코드셰어 좌석을 판매할 때 의무적으로 운항편명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고객이 많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전에는 예약한 항공사와 다르다고 아예 탑승을 거부하는 사례까지 있었다"며 "국적기에 대한 국내 고객들의 충성도가 워낙 커 아직도 종종 불만이 나오곤 한다"고 전했다.

코드셰어에는 실제 항공기를 운항하는 운항사와 일부 좌석을 빌리는 판매사가 있다. 양사 간 협정이기 때문에 계약 내용이 천차만별이지만 매출액은 대개 판매사 쪽으로 잡힌다. 항공료도 일반적으로 판매사가 정한다.

이 때문에 코드셰어를 활용해 값싸게 항공권을 구입하는 알뜰족이 최근 알음알음 생겨나고 있다. 인천에서 프랑스 파리를 가려면 방법은 대략 이렇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경우 대개 국적기인 대한항공의 항공료가 에어프랑스보다 비싸다. 그러나 파리 출발편이라면 그 나라 국적기인 에어프랑스보다 대한항공 항공료가 더 싼 게 일반적이다. 알뜰족은 이 점을 노린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에어프랑스를 통해 항공권을 사되 대한항공의 항공기가 뜨는 스케줄로 예약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싼값에 대한항공을 타고 갈 수 있다. 파리에서 올 때는 반대다. 에어프랑스만 있는 시간대일 경우 외항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항공권을 구입하면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 물론 왕복이 아닌 편도 항공권을 살 때만 해당되는 얘기다.

항공사들로서는 이런 알뜰족의 출현을 반길 리 없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코드셰어가 크게 늘어나면서 싼 외항사 요금으로 국적기를 타려는 고객이 꽤 생기고 있다"며 "여행사로선 이런 부분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항공사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드러내놓고 하진 못한다"고 귀띔했다.

항공업계의 끝없는 진화

A 부장은 출장이 한 달만 빨랐더라도 코드셰어를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드셰어의 방식은 세 가지다. 계약된 숫자 내에서만 상대 항공편의 좌석을 판매할 수 있는 '블록시트(block seat)', 같은 수의 좌석을 정산 없이 서로 맞바꾸는 '시트스와프(seat swap)', 그리고 좌석 제한 없이 상대 항공편 좌석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프리세일(free sale)'이 그것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아스타나는 지난달까지 블록시트 방식의 코드셰어를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항공편마다 비즈니스 3석과 일반석 30석 등 33석만 상호 판매했다. A 부장이 항공권을 구하기 전에 아시아나항공에 배정된 33석은 일찌감치 매진됐을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아스타나는 1일부터 코드셰어를 프리세일 방식으로 전환했다. 아시아나항공의 OZ-577, OZ-588편은 비즈니스 30석, 이코노미 260석 등 290석, 에어아스타나의 KC-909, KC-910편은 비즈니스 30석, 이코노미 193석 등 223석이다. 지난달까지 아시아나항공은 매주 편도 기준으로 자사 항공기 580석(290×주 2회)과 에어아스타나 99석(33×주 3회) 등 679석을 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달부터는 에어아스타나의 669석(223×주 3회) 모두 판매가 가능해 팔 수 있는 좌석이 2배 가까운 1249석(580석+669석)으로 늘었다. 그 덕분에 급히 출장길에 오른 A 부장은 무사히 코드셰어로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코드셰어는 블록시트나 시트스와프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프리세일로 옮아가고 있다. 그만큼 항공사 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사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 양사 간 승무원을 맞교환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2007년 각각 중국난팡항공, 전일본공수와 승무원을 맞교환하는 서비스를 시행한 바 있다. 코드셰어를 통해 다른 항공편을 탄 자사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코드셰어를 선도했던 북미 및 유럽 항공사들은 최근 아예 특정 노선을 운항하기 위한 합작법인(JV)까지 만들고 있다. 2009년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가 대서양 노선을 위한 JV를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 항공사들도 적극적이다. 전일본공수는 유나이티드항공과, 일본항공은 아메리칸항공과 각각 JV를 세워 적극적인 협력에 나섰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 중에는 아직 타 항공사와 JV를 만든 곳은 없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항공노선도 거미줄처럼 복잡해지고 있다"며 "독자적인 능력으로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를 느낀 항공사들이 점차 코드셰어, JV 설립 등 네트워크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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