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슨 길거리 돌맹이인가..' 젊다고 어리다고 이리저리 채이는 20·30대

2013. 9. 12.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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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점점 사라져가는 꿈

[쿠키 경제] 4년간 일하던 커피 전문점 카페베네에 지난달 사직서를 내고 다른 일자리를 찾던 김서현(가명·30·여)씨에게 지난 9일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는 카페베네 김선권 대표이사 명의로 돼 있었다. "위탁경영의 취지와 사정을 충분히 사전에 설명했어야 했는데, 운영에 미숙함이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직원들을 가슴 아프게 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사직서를 낼 때 그랬듯 김씨는 다시 세상의 냉정함에 주저앉았다.

청춘을 바친 직장이 김씨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짤막했다. 2009년부터 카페베네 서울시청 프레스센터지점에서 점장으로 일하던 김씨는 지난 7월 31일 예정에 없던 인사발령 통지를 받았다. 경기도 동두천 직영매장에서 관리직 업무를 수행하라는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동두천은 서울 집에서 출퇴근 왕복 4시간, 사실상의 해고 통지였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음에 감사하면서 뜨거운 에스프레소 기계에 부딪혀 화상을 입은 것도 모른 채 늘 웃으며 일하던 김씨였다.

카페베네는 경영난을 이유로 지난 7월 직영매장을 위탁매장으로 전환하면서 관리직 100여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계약이 해지된 이들은 대개 20·30대 초반 청년이었다. 시민단체들이 부당해고임을 주장하며 운동을 벌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씨는 오랜 시간을 '투쟁'에 투자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절박해 다른 일자리를 급히 구해야 하는 청년들은 김씨처럼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금융위기 이후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30' 청년층의 신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취업문을 뚫어도 손에 쥐는 돈은 쥐꼬리만하다. 겨우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어느새 무섭게 솟아오른 전·월세가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얇아진 지갑만큼 희망도 희미해진다.

각종 통계는 이들의 좌절을 증명한다. 11일 국세청과 통계청,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20대와 30대 취업자 감소 폭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하다. 2008년 말에 비해 지난달 20·30대 취업자 수는 각각 6.76%, 4.51% 줄었다. 40대(1.54%), 50대(31.28%) 취업자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국세청에 연말정산을 신청한 20대와 30대 근로소득자의 2011년 급여는 2007년과 비교해 각각 7.21%, 7.88%나 감소했다. 고령화에 민감한 기성세대는 50대 베이비부머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정작 향후 한국사회를 짊어질 2030세대의 신음에는 둔감하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지난달 청년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논란이 불거진 뒤 서울 청담동 카페베네 본사 앞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참여연대, 청년유니온과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피켓을 들고 "카페베네는 청년들의 꿈에 진실하라"고 외쳤다. 카페베네의 창업정신인 '꿈에 진실하라'를 아프게 꼬집은 것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베네(뱉네)"라는 피켓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에는 뭔가가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작 화를 내야 할, 카페베네에서 해고당한 김서현씨 등 피해 청년들은 이 자리에 참석해 해고의 부당함을 주장하지 않았다. 손님이 몰리면 서서 끼니를 때우고, 시간외 근로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일했던 그들이었지만 사실상의 해고에는 무감각했다. 한두 번 당한 해고가 아니었으며, 얼른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이 이롭다는 판단이었다.

청년유니온 관계자는 "해고를 해고라고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답답했다"며 "취업이 급한 젊은이들이 사회 속에서 이미 무력해진 상태라는 것을 체감했다"고 토로했다. 시민단체들 틈에서는 "청년들의 원래 근로조건이 좋지 않아서 굳이 열심히 싸우지 않으려 했다"는 말도 나왔다. 일부 청년들은 향후 취업에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결국 이들 시민단체가 얻어낸 것은 청년들의 재고용이 아닌, '본의가 아니었다'는 카페베네 대표 명의의 사과문 한 장뿐이었다.

카페베네처럼 편지라도 보내주는 기업은 그나마 양심적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해고 통보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음을 깨달은 청년들은 분노하기보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컸던 2008년 말 408만4000명이던 30세 미만 취업자 수는 지난 8월 말 380만8000명으로 6.76% 줄었다. 금융위기 이후 취업자 수가 줄어든 연령대는 20대와 30대뿐이다. 2008년 말 7.2%였던 15∼29세의 실업률은 지난달 7.6%로 오히려 상승했다. 30대의 실업률도 같은 기간 3.1%를 유지했다. 40대와 50대의 실업률만 0.1% 포인트씩 하락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팍팍한 경제 상황이 2030세대를 옥죄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앞당기겠다는 박근혜정부의 공약은 신설될 시간제 일자리의 개수만 적시하고 있을 뿐 실천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 청년유니온 관계자는 11일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방향만 있을 뿐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제외한 기업에서 어떻게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 어떤 일자리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인지도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전월세에 좌절하고…

지방 출신으로 전문대를 졸업한 오석진(가명·26)씨는 지난해 2월 뿌듯한 마음으로 서울 신림동에 원룸 전셋집을 얻었다. 월세를 까먹고 살기보다 전세 보증금을 맡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오씨는 최근 8년간 모은 전 재산 4500만원을 털어 전세 계약을 했다. 소중한 재산인 만큼 등기부등본을 떼어 집주인의 채무 상황을 확인하는 절차도 잊지 않았다. 가압류 등 별다른 사항은 없었고, 집주인이 "건물의 30가구 중 5가구만 전세 계약이라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오씨의 주거지가 '깡통전세'로 판명되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세입자들이 모르는 사이 집주인의 채무는 급증했고, 오씨와 다른 청년들이 살던 다가구주택은 통째로 경매에 넘어갔다. 오씨는 집주인의 거짓말도 그때야 알아채게 됐다. 세입 30가구는 모두 전세였고, 그 와중에 오씨는 이들 중 가장 마지막 후순위 채권자였다.

오씨는 청년 시민단체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사연을 알리는 한편 민사상 전세보증금 반환청구 소송까지 펼치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집주인이 파산 신청을 하고 채무상환 능력이 없음이 증명되면 오씨의 후순위 채권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용 현장에서 치이는 2030세대는 전월세시장 앞에서 다시 좌절하고 있다. 전세난의 정점에 있는 서울의 가구 수 중 1·2인 가구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수도권 지역의 1·2인 가구 비중은 63.0%까지, 비수도권은 53.8%까지 늘어난다. 1·2인 가구에서 사는 이들은 대개 청년층과 고령층이다.

민달팽이유니온, 금융정의연대, 서울청년네트워크 등 청년 시민단체들은 박근혜정부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주거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주거 빈곤계층으로 편입되는 청년층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소득과 임대료의 격차를 줄이는 정상적인 전·월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고집한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청년층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찾는다. 저렴한 소형 주택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이에 따라 임대료 부담이 커진 청년들은 최저 주거 기준에도 미달된 고시원이나 지하 단칸방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전·월세대란의 대책은 사실상 매매에 대한 권유에 가깝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상태인 청년들은 "제발 빚을 강요해 집을 사라고 고집하지 말라"고 부르짖는다. 민달팽이유니온은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집주인과 기성세대만 있고 세입자와 청년은 없다"며 "청년들의 현실과 미래에 디딤돌이 될 진정한 주거안정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빚만 권하고… 변변한 저축상품 하나 없다

"젊은이를 위한 금융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장기주택마련저축 상품마저 사라진 지금, 청년들에게 희망을 갖게 할 만한 특화 저축상품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사회의 코너에 몰린 2030세대를 위한 금융 대책은 얼마나 마련돼 있을까.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11일 취업난과 전·월세난에 동시다발적으로 시달리는 2030세대를 위한 뾰족한 대책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청년과 대학생들에게 대출금리를 깎아주거나 창업 지원금을 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도움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려면 맞춤형 저축상품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사라진 상태라는 진단이다. 실제로 그간 사회 초년생들의 인기를 끌었던 장기주택마련저축 상품은 2010년 1월 소득공제 혜택이 폐지된 상태다. 청년·대학생 고금리 전환대출 사업은 애초 목표에 비해 실적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다.

금융 당국 다른 고위 관계자도 "재형저축 상품이 있다고 하지만 금리가 연 3.5% 근처 수준"이라며 "그것으로는 전월세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금융 당국과 금융투자업계는 장기 세제혜택 펀드를 새로운 청년금융 대책으로 추진해 왔다. 연소득 기준을 낮춰 자본시장에서 장기 투자 형태로 펀드를 굴리면 주가가 폭락하지 않는 한 소득공제 효과와 더불어 좋은 재산형성 수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여러 차례 조기 도입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금융상품은 국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아무리 청년층을 위한 대책이더라도 소득공제 금융상품을 늘리면 세수 확보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청년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기성세대가 사회 초년생 시절일 때에는 재형저축의 가입 기간도 짧았고, 연 12% 정도의 금리를 제공하면서 이자소득세까지 면제하는 '근로자우대저축'도 있어 사회 진출을 뒷받침했다"며 "국회가 하루빨리 정상화돼 사회 초년생의 목돈 마련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진삼열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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